시끌벅적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남자와 정적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여자, 정반대인 두 사람을 통해 일방통행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연인들의 고독과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사랑을 말해줘'는 기존의 세련된 도시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전작에 비해 보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작가적 변모를 느낄 수 있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입니다.


소음으로 가득 찬 대도시 도쿄를 무대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주인공 교코와 방송국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소리의 홍수 속에서 살아온 남주인공 슌페이가 사랑을 시작합니다. 너무 다른 상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에서 시작된 사랑은 서로가 극단적으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현실 속에서 쉽게 꽃피지 못합니다. 소리를 통한 대화가 불가능한 두 사람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필담으로는 하고자 하는 말의 뉘앙스까지 전달할 수 없으며 최소한의 단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슌페이는 지쳐갑니다.


전하고 싶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슌페이의 초조함은 비단 그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입니다. 의사소통에 서툰, 그래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답답하고 외롭기만 한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 상태를 작가는 슌페이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애소설을 엮어내면서도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파고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소리와 정적의 이원적 대립 구조를 통해 소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치달은 열정에서 깨어나 고요와 안정을 되찾고 정반대 지점으로 돌아설 줄 아는 작가의 과감함과 결단력, 연인을 감싸고 있는 공기마저 그려내는 듯한 영상적인 묘사, 대사와 장면이 주는 상징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소설은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요시다 슈이치의 탁월한 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없는데도, 신기하게 옆자리 여고생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주위는 시끄럽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텐데, 그녀와 함께 있을수록 주위의 소리는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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