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이야기꾼으로 거듭난 작가 오현종의 두번째 창작집 '사과의 맛'에 실린 단편들은 동화나 대중서사, 설화들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옛날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현실로 차원이동시켜 오늘의 이야기로 만듭니다. 라푼젤의 이야기도, 수족관 속 연목 속 인어의 이야기도, 2040년 달에 살고 있는 로봇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화 속 그들은 모두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마녀를 이웃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마녀. 마녀에게 복수를 해야지, 나는 매일 밤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남편을 시켜 상추를 훔쳤다면, 마녀는 상추를 빌미로 남편을 훔쳤습니다.
두더지 같은 년. 나는 소박하게도 고작 상추 몇 바구니만을 원했을 뿐인데 말이에요.
나는 이웃집 여자에게서 아기를 빼앗을 작정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통쾌한 복수가 어디 있을까요?"


이 책은 기존의 구조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물들의 성격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을 일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동화속 라푼젤과 인어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참혹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첫번째로 실린 '상추, 라푼젤'은 '라푼젤'을 패러디하지만 낭만적인 동화의 외피는 제거됩니다. 불륜과 사생아, 혼전 임신, 찌질한 왕자 등이 차례로 등장해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를 깨버립니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와 '연못 속에는 인어가'도 마찬가지로 동화 혹은 신화의 일상화 전략을 취합니다. 동화와 신화는 현대로 공간 이동을 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합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어들은 후기자본주의의 엄혹한 현실 속에 끌려들어와 기형 취급을 받으며 가족들에게 외면당해 나이트클럽의 수족관에서 스트립댄서로 일하는가 하면 바다에서 납치 돼 어부의 집 마당에 있는 연못 속에서 끊임없이 시어머니의 욕망을 채워줄 베를 짜야 합니다. 이들의 주변에는 이들을 쥐어짜는 탐욕스럽고 속물적인 인간들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오현종 작가의 '사과의 맛'은 현실과 만난 동화들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동화 속에 담긴 가족애나 운명적 사랑이 때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지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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