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 김규나의 첫 번째 소설집입니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시, 섬세하고 치밀한 문장과 손에 잡힐 듯한 상황 묘사, 파격적인 설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가는 다양한 양상으로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상처받고 다시 치유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랑과 그 뒤꼍의 실존을 흥미롭고 예리하게 해부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이 책을 통해 리얼하게 펼쳐지는 통속과 관능, 그 너머의 실존과 고독한 사랑을 다룬 그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불타는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던 남녀가 시체와 부검의로 만나는 역설적인 상황과 비애를 그린 등단작 '칼'을 비롯하여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 친구에게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사랑마저 빼앗긴 한 외계인의 블랙코미디 '뿌따뽕빠리의 귀환', 모든 것을 가진 남자와 아무것도 갖지 않으려 하는 여자의 쓸쓸한 사랑을 그린 '내 남자의 꿈' 등 우리 시대 사랑에 담긴 낭만과 통속성을 담은 작품들입니다.


작가의 섬세한 문장과 문학성은 '달, 컴포지션(Composition) 7'과 '뿌따뽕빠리의 귀환', '코카스칵티를 위한 프롤로그'에서 빛을 발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애인에게 갓 낳은 아이마저 빼앗기고 연락조차 금지된 나는 지금 청탁받은 원고 때문에 고심 중인 소설가입니다. 신산하고 무기력한 삶에 서서히 손을 건네는 한 사진작가가 주는 영감, 그리고 칸딘스키의 구성에 대한 상념과 다채로운 심상이 펼쳐지는 단편 속 산문은 모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신인답지 않게 노련하고 치밀한 작가 김규나는 섣불리 가르치거나 대안을 제시하며 독자를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소설은 삶이라는 투쟁에 함께하는 동지인 독자를 위한 위로입니다. 문학과 예술의 기능이 알리고 가르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사로운 위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작가이며 뻣뻣하게 굳어져 갈라진 장기를 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내면에 가득했던 외로움과 절망을 이해했던 '칼'의 부검의보다 더 명민한 작가인 셈입니다. 사랑 이면의 고독, 절망에 고통받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래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김규나의 작품은 한국소설에 또 하나의 선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