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은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kbs 일요베스트에 방영된 것으로 문학성과 시의성이 모두 인정된 진귀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나는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친구의 아내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미 오래 전, 2천5백만 년 전에 스쳐간 운명입니다. 그리고 2천5백만 년이 지나 다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두 남녀는 서로 다른 곳에서 그 운명적 만남의 장소인 은비령을 향해 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단 하룻밤만 허락된 것입니다. 나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끝내 넘어서기 힘들었고 여자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은비령은 2천5백만 년 동안 기다려온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안타까운 이별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비령은 이제 강원도 설악의 자락에 신비를 간직한 땅으로 남자와 여자가 2억5천만 년 만에 해후하는 땅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우리의 가슴에 은라궁성의 성스러운 전설을 새겨놓았습니다. 은비령의 남자와 여자는 오래오래 후대 사람들에게 들려주어할 신비이고 잊어서는 안 될 시원의 무늬입니다. 멀지 않은 시간, 2천5백만 년 후에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해내고 은라궁성의 침실을 아스라이 올려다 볼 것입니다.


운명적 사랑의 리턴이 이루어지는 '은비령'은 시정어린 문체와 아름다운 비경 그리고 별들의 이야기가 두 남녀의 사랑과 잘 버무려져 한층 맛있고 건강하게 읽힙니다. 모두가 한번 쯤 꿈꾸지만 결코 만나기 쉽지 않은 은비령의 사랑은 가벼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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