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추리소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추리소설도 골라서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영천 하우미스터리 운영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박현주 번역가, 임지호 북스피어 편집장, 구본준 <한겨레> 대중문화팀장 등 추리소설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올해 출간된 추리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머니의 피살'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물부터 한국 철거 현장을 배경으로 한 법정스릴러까지 10개 작품을 추천받았습니다.

 

 

 

 

'명탐정의 규칙'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눈물겨운 자학이자 진지한 성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 단편의 제목은 추리소설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클리셰로 이뤄져 있으며 너무나도 전형적인 명탐정과 경찰이 등장해 텍스트 안팎을 오갑니다. 신나는 조롱과 신랄한 유머 감각 그리고 단편 추리소설로서의 완결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유다의 창'은 등장인물들이 밀실의 성립 여부라든지 다른 불가능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카의 작품 중에서도 희귀한 예에 속합니다. 탐정 역의 헨리 메리베일 경이 피고 앤스웰의 무죄를 증명하는 구성이어서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흥미진진한 법정소설로도 읽히는 작품입니다.

 

 

 

 

'가다라의 돼지'의 무대는 아프리카 케냐로 여전히 저주가 존재한다고 믿는, 아니 실재하는 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곳에서 딸을 잃었던 민족학 교수 오우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초능력 청년, 소림사 무술을 배운 제자 등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사악한 대주술사 바키리와 맞서게 됩니다. 호러, 코미디, 모험소설, 가족 드라마, 사소설 등을 종횡무진 섭렵하며 내달리는 '가다라의 돼지'는 미스터리의 영역을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확장시킵니다.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은 제임스 엘로이가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그의 심연에 무엇이 들끓고 있었는지,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폭력적으로 웅변한 작품입니다. 1958년 그가 열살이었을 때 엄마인 진 엘로이가 살해당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 어둠의 근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파괴적으로 치달았던 엘로이의 지독한 성장의 기록입니다. 술, 마약, 노출증과 스토킹, 사소한 범죄와 구치소 생활 등 백인 쓰레기처럼 살았던 엘로이는 서른이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비극적 실화에 투영하여 재구성한 '블랙 달리아'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에도 시대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시리즈에 속하는 '얼간이'는 에도 시대의 풍속을 꼼꼼하게 묘사합니다. 첫머리를 읽을 때는 뎃핀 나가야라는 주상복합형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슬프고도 정다운 사연을 다룬 옴니버스 구성인가 싶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하나의 수수께끼로 모아지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벌어지는 음모에 얽힌 미스터리는 물론 공동체를 중심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따뜻함까지도 모두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소소하고 평범하기에 더더욱 우리네 삶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소수의견'은  소설의 모태가 된 '용산 참사'에 상상력을 보탠 작품입니다. 실제로 참사 이후 철거민 유족들과 국가 간의 법적 공방은 1년여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쳐 중간에 합의를 보게 되었지만 '소수의견'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미해결로 남은 낙원구 행복동의 실상과 각종 법규로 업그레이드된 국가 권력의 실체, 그리고 개인과 조직의 허구적인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작가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여 인간성과 진정성이 사라진 세상과 '공평과 정의'라는 단어로 포장된 법체계의 허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도쿄 경시청 수사 1과 7계의 사건 추적 기록을 담은 '마크스의 산'은 표면상으로 경찰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건의 해결보다는 사건에 얽힌 인물과 그들의 사연에 더욱 집착합니다. 지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조차 이야기에 꼭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인물의 성격과 심리, 경찰이라는 조직의 생리와 수사 과정의 갈등 사건의 시작과 끝에서 다카무라 가오루는 건조하지만 치밀한 문체로 이야기를 쌓아올립니다. 쉽사리 읽히지도 않고 어쩌면 고통스럽기까지 한 독서 경험이지만 기회를 놓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가운데서도 범죄를 가볍고 경쾌하게 다루는 '케이퍼 소설'이라는 장르의 '뉴욕을 털어라'는 왁자지껄 대소동이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걸작 미스터리입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들 속에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들은 마치 입담 좋은 개그맨의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것만큼이나 즐겁고 짧은 사건들이 빠른 템포로 벌어졌다가 마무리되기를 여러 번, 그러면서도 장편으로서의 일관성을 잃지 않아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대단한 반전이나 깜짝 놀랄 마무리는 없지만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에 맞닥뜨린 인물들이 보여 주는 모습에서 보이는 작가의 유머 감각은 한 번 올라간 입꼬리를 내려오게 할 줄 모릅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는 서술 방식을 새롭게 하거나 비트는 구성때문에 재미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속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편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오래전 친구가 참변을 당하는 범죄 장면을 목격한 네 친구들이 쓴 편지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사건의 놀라운 진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납니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독백 형식 문체는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깊이 있게 해줍니다. 연쇄적인 비극 속에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면서 긴장감은 극도에 달하고 사건의 진상은 대담하고 충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아마 이 작품을 통해 미나토 카나에의 치밀한 이야기 전개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더미'는 국산 과학스릴러입니다.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속에 담긴 무서운 진실 이야기가 여름철 서늘함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책 디자인이 좀 '키치적'이란 점이 망설이게 할 수도 있지만 빠른 이야기 전개와 깔끔한 묘사가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이 책이 뛰어난 점은 과학적 사실을 맛깔나게 쓴다는 데 있습니다. 단백질, 바이러스, 각종 화학물질이 어떤 경제적 목적에 의해 개발되어 우리를 병들게 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출처:한겨레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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