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수한 주름 장식과 엷은 색 리본 매듭이 달린 흰 모슬린 드레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지만 그 대신 자수를 놓은 테두리 장식이 달린 커다란 양산을 손에 받쳐 들고 있었다. 정말이지 눈이 부실 정도로 기가 막힌 미인이었다."


'데이지 밀러'는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는 헨리 제임스의 초기 대표작입니다. 1878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영국의 '콘힐 매거진'에 연재된 '데이지 밀러'는 헨리 제임스를 현대 문학계의 거물로 우뚝 서게 한 작품으로 묘비에 '대서양 양편의 한 세대를 해석해 낸 사람'이라는 비문이 새겨졌을 만큼 유럽으로 대표되는 구세계와 미국으로 대표되는 신세계의 문화적 충돌과 갈등을 천착한 헨리 제임스의 이른바 '국제적인 주제'를 섬세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의 불가사의하고 독립심 강한 미국인 여성의 초상을 창조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헨리 제임스는 이 작품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간결한 형식과 문체 속에 풍부한 의미를 담아 전함으로써 고전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시대를 초월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헨리 제임스는 작품속에서 풍속으로 인한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자신이 들은 일화를 엇갈린 사랑 이야기로 변형하여 극화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일화에서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한 미국인 아가씨를 끌어오고 그녀의 상대역으로 미국인이지만 오랜 유럽 생활로 유럽인에 더 가까운 뻣뻣한 청년을 창조합니다. 신세계의 자유를 상징하는 데이지 밀러의 매력에 빠져드는 청년 프레더릭 윈터본은 표면적으로 구세계의 풍속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지 밀러의 시선에서 그는 뻣뻣하게 경직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에 '불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 초월적 보편성에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지 밀러'는 분명 19세기의 풍속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작가가 공들여 형상화하는 것은 문화와 문화의 충돌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휩쓸린 인간의 심리와 태도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국제적인 주제를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지 밀러'를 헨리 제임스의 '국제적인 주제'라는 틀에서만 독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시적인 현상에 매몰되어 그 안에 담긴 본질, 즉 인간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헨리 제임스는 또한 현상을 묘사할 뿐 그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데이지 밀러'는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탁월함이 압축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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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데이지 밀러 (Daisy Miller)
    from 512 2012-01-09 19:16 
    매력적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 데이지 밀러.길에서 지나치면 누구나 한번 쯤 되돌아 볼 만큼 아름다운 아가씨. 도발적인 말투가 매력적인 그녀. 데이지 밀러. 쑥맥 프레드릭의 마음을 휘어 잡습니다. “프레드릭씨, 나랑 뱃놀이 할래요?” 별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에 속삭이는 여인의 말. 가뜩이나 이 아가씨한테 푹 빠져있던 프레드릭은 혼쾌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