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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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아무래도 N번방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거니와 

N번방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람의 숫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사실 아직도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감이 오진 않아요. 


서울에서 운행중인 택시 숫자와 비슷하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밖에 나가면 흔하게 택시를 볼 수 있는 것만큼 우리 주위에도 N번방에 가입한 남자가 있을 거라고요.

누군지 알 수 없고 전혀 아닌 것 같아도.


최근 검찰이 N번방 박사방 운영자였던 문형욱과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실제 선고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범죄 행위가 알려졌다는 것, 검거되었다는 것도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처벌이 약한 우리나라에서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고, 이들의 범죄가 매우 악질이고 위중하다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놀라울 만한 성과예요.


그리고 이 모든 성과가 두 '학생'의 잠입 취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너무 놀라웠어요.


추적단 불꽃.


이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그 끔찍한 범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었을 거예요.

(지금도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어딘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겠지만.ㅠㅜ)


이 책 추적단 불꽃이 어떻게 N번방에 들어가게 됐는지 어떻게 그들을 신고하게 됐는지, 그후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에요.


리뷰를 통해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저는 이 사건의 최초 보도자와 신고자가 N번방을 잠입 취재한 대학생 두 명이라는 뉴스를 보고 그 두 대학생이 '남자'일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굳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여겼던 거 같아요. 추적단 불꽃이 여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지? 무섭지 않았을까? 정말 힘들었겠다. 남자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래, 여자니까 신고했겠지.'라고 수긍이 되었고 그 수긍에 뒤따라 슬픔과 분노가 이어졌어요. N번방에 가입한 그 수많은 남자들은 그걸 보고도 아무도 신고할 생각을 안 했단 말인가? 단 한 명도???? 설령 호기심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목격했는데 아무도 신고를 안 하고 즐겼단 말이지. 그 많은 남자들이!!!!!


그 충격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요...ㅠㅜ


그래서 더 추적단 불꽃의 용기에 감사하게 됐어요.


책을 읽어보니, 이들도 당연히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다고 해요. 어떻게 멀쩡하겠어요.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것이 어떻게 괜찮겠어요.

그 괴로움을 견디고,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밝혀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추적단 불꽃 덕분에 우리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일지 몰라도 조금은 나아졌고 더 많이 나아질 가능성이 생겼으니까요.


남편에게 이 책을 권하니 읽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제가 정치 얘기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이런 얘길 들을수록 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고요.


저도 처음엔 읽고 싶지 않았어요. 책을 통해 알게될 실상을 접하고 싶지 않아서요.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니까..ㅠㅜ 하지만 추적단 불꽃의 용기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서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알아야 공감하고 공감해야 지지하고 지지해야 함께하게 될 테니까요.


아주 다행히도 책에서 범죄의 구체적 행태는 많이 묘사되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저는 책 읽기가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추적단 불꽃은 역시나 사려깊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런 자극적인 묘사 또한 2차 가해가 될 거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 피해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보여졌어요. 


그런 배려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추적단 불꽃이 될 수 있었겠죠. N번방에서 사건을 목격하면서도 낄낄대며 즐기는 그들은 공감 능력이 없는 인간들이기에 범죄자이고요. (그걸 보는 사람 역시 공범입니다.)


책을 읽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알게 되었지만 절망에 빠지진 않았어요.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조금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몇 만 명의 범죄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신고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두 명이 있고, 그 두 명은 불꽃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불을 지피니까요.


이 용기있고 대견한 두 명에게, 조금 더 오래 산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이 나라에 같이 사는 여성으로서 딸아이의 엄마로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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