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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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처음..ㅡㅡ;;) 마르크 레비의 <그녀, 클로이>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에요.

표지도 너무 상큼하고 예쁘잖아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건물의 안에서 밖을 보고 있는 여자와 건물 밖 1층에서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소설의 주요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건 그 두 명이에요.

뉴욕에 사는 클로이와 뭄바이에 사는 산지.

여느 로코와 다름없이 첫 만남, 거듭된 우연, 마주침, 오해, 화해의 과정을 거쳐 해피엔딩에 이르는데요.

그럼에도 이 소설이 여느 로코와는 다른 특별한 점은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약자의 위치에 있는 소수자라는 거예요.


클로이는 장애인이고 산지는 (백인의 관점에서) 유색인종이죠.

산지의 고모부는 사라져가는 직업인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이자 아내(산지의 고모)와 함께 고향을 탈출해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자고요.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39년 째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운전(?)하고 있는 디팍.

그 아파트 주민은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조금은 불편해도 오랜 전통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고

디팍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디팍과 함께 일하는 밤 근무 승무원이 다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 엘리베이터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데 근무자가 자리를 비우면 주민들은 불편해져요.

게다가 이 아파트 9층에 사는 클로이는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해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큰 이동제한이 생기죠.

아파트 관리자는 이 기회에 엘리베이터를 자동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 일이 생겨나자 디팍을 비롯 아파트 주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까요~~~? ^^

이 소설이 흥미로웠던 건 다양한 인물 개개인의 사연이 혼재하면서도 각각 의미있었다는 거예요.

디팍와 랄리는 인도에서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상류 계급인 랄라의 가족이 디팍을 살해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으로 도망쳐옵니다. 이들을 통해 전근대적 계급 사회의 불합리성과 비극을 보여주고요.


그러한 갑갑한 문화를 견딜 수 없었던 산지는 독자적인 행보로 전통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팍이 일하는 아파트에서 고가의 목걸이가 없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바로 도둑으로 오인 받아 경찰에 체포됩니다. 물론 경찰이나 주민들은 말로는 당시 정황상 그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만, 내재되어 있는 인종 차별을 보여준 셈이죠.


더 인상적인 설정은 클로이예요.

주인공 클로이는 아버지가 교수이고 본인은 배우였어요.

절대 사회적 약자일 수 없는 클로이는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돼요.


우리가 살면서 '나와는 다른' 타자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행동을 알게 모르게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그 지위라는 것이 영구 불변한 게 아니라는 걸 클로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거죠.

 
인종 차별, 편견, 계급 사회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하지 않아서 좋아요.

정말 딱 로코 영화 같은 느낌~!


앞표지도 예쁜데 뒷표지도 넘넘넘 예쁘고요~


중간중간 클로이가 쓴 일기로 클로이의 과거를 묘사하는 형식도 좋은데

에필로그까지 완벽!

 

아.... 이거 영화로 언제 나와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영화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책으로 먼저 보세요 ㅎㅎㅎ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영화가 지나갈 거예요.

 

153쪽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몇 년 후에도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직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라진 직업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그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의 긍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근면한 삶을 누가 기억해줄까?.... 중략... 그래서 내 조카가 인도로 돌아가서 수동식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당연히 내 생각이 나겠지. 조카가 나를 생각하는 한 나는 존재하는 거잖아. 바로 그게 내가 이러는 이유야.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서.

270쪽 질문이 잘못됐구나.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떠난 거야. 무릇 용기라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삶을 끌어안을 때 쓰는 말이고. 용기는 희망이 있다는 거니까.

338쪽 나는 의심의 여지없는 한 가지를 알았다. 최악이라고 보이는 것에 이르렀을 때, 인생은 숨기고 있던 경이로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걸. 그 경이로움. 네가 바로 그 증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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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책 읽어 드립니다 - 세상의 모든 책썸 남녀를 위하여
설민석 지음 / 단꿈아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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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책읽어드립니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제가 꼭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두 개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예요.
이 좋은 프로그램이 끝나서 넘 아쉬웠는데....ㅠㅜ

 

반가운 출간 소식을 들었어요.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의 일등공신 설민석 선생님이 방송에 소개된 책 중 다섯 권을 엄선하여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까지 더해 책으로 내셨다는 거예요.
바로 읽어 보았죠.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에서는 총 29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이 책에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사피엔스Sapiens》, 《페스트La Peste》, 《한중록閑中錄》,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 이렇게 다섯 권 소개되어 있어요.

 

 

왜 이 다섯 권일까 궁금했는데, 선정 이유를 책에서 밝혀주시네요.

독서의 장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교훈을 얻는 거라 생각해서 기준을 세우셨대요. 우리 성장의 토대인 땅, 그리고 서로가 그저 존재 자체로 더불어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땅과 사람'을 주제로 다섯 권을 뽑으셨답니다. (16쪽)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설민석 선생님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연이잖아요.

남녀노소 일인다역을 마다않는 명연기도 놀랍지만,
아니 설민석 선생님 되게 바쁘실 거 같은데, 저 긴 책을 어떻게 다 읽으시지?
저 길고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이렇게 요약을 잘 하시지?
저걸 어떻게 다 외워서 강독을 하시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궁금증은 저만 갖는 건 아니었는지, 서문을 대신한 장강명 작가님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질문해주십니다.

 

 긴 책을 다 읽고 요약하는 비법은!!!!!!!
 

열심히, 여러 번, 틈틈이 읽는 것밖에 없답니다. 하하하


강독도 그냥 대본처럼 써서 외우는 게 아니라 직원들 앞에서 리허설도 하고 수정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녹화를 하시는 거래요.
장강명 작가님도 설민석 선생님이 프롬프터도 보지 않고 줄줄줄 강독하신 것에 놀라움을 표현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방송을 보면서 굉장히 '합리적인 의심'을 해왔어요.
책을 선정할 때 설민석 선생님의 입김이 굉장히 많이 작용할 것이다라는 거였는데요.
(역사적 소재의 책이 많이 소개돼서요.)

 근데 방송되는 책은 철저하게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결정되고,
설민석 선생님과 이적 씨가 강력 추천해서 선정된 책은 의외로 역사책이 아니라 <노동의 종말>이었다고 하네요.

설민석 쌤~ 의심해서 죄송해요~ ^^;;

 

저는 이 책이 좋았던 건, '책'이라서요!
너무 시대에 뒤쳐진 말이겠지만 저는 영상보다는 글이 좋더라고요.
기록으로, 기억으로 남기기엔 글이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시청자 여러분들 책장에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종이책으로 만들어져 꽂힌다면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8쪽)'다는 설 샘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설민석 선생님은 이 책을 전시회 브로슈어에 비유하셨어요. 우리가 전시회 브로슈어만 읽고 전시회에 다녀왔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끝내지 말고 여기에 소개된 책을 직접 읽기를 바란다고요. 그래서 이 책이 직접 독서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방송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다시 설민석 선생님의 말로 적은 거라,
방송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와 현재 시점을 반영한 이야기까지 담겨서 좋아요.

 

89쪽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130쪽 하지만 현실의 영웅은 험난한 시련 속에서도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리유나 타루 같은 우리 주변의 이웃이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서도 환자를 보살피는 의료인, 자가 격리자에게 음식 박스를 배달해준 자원봉사자, 자신의 마스크를 기꺼이 다른 이에게 양보한 시민,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뛰어난 시민의식을 보인 국민, 이 모든 분들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영웅입니다.

 

 209쪽 그때에 이르러 자신의 꿈을 이룬 당신은 머리엔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이해하는 지식을, 가슴엔 더불어 잘 사는 것이 진정한 나의 이익이 된다는 똑똑한 이기심을 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책만 읽어도 기억하고픈 구절이 많은데,
책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책이 궁금하다면?

 

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게 당연하니 '독서체험노트'가 부록으로 함께 와요.

 

 

독서체험노트에는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에서 방송된 책 전권의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QR코드가 있어요.
QR코드 찍으면 바로 유튜브로 연결돼요.

 

 

영상 보며 메모도 가능하게 마련되어 있고
뒤쪽에 '지금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칸도 있는데....

 

아.... 이건 제 과제예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대한민국 평균 독서량을 훨씬 뛰어넘는,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독서량을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이게 내 인생책이다!!!!!!'하는 책은 아직 없어서요.

 

제가 대부분의 예술 장르를 좋아는 하는데 그 중에서 음악과 영화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별 관심이 없음에도 인생 노래와 인생 영화는 있거든요?
근데 아직 인생 책이 없단 말이죠.ㅠㅜ

 

그래서 저는 인생 책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습니다.

 설민석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에 나온 책을 읽고 나면
제 인생 책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요즘책방 #인문학 #설민석 #책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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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과테말라 (2020)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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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맛에 산미가 느껴지고 삼키면 고소한 맛 나요. 산미 강한 커피 안 좋아하는데 이건 부드럽네요! 맛이 튀지 않고 조화가 잘 되는 거 같아요. 맘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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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권리를 찾기 위한 안내서
김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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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1. 주말에 우리 식구 모두 대학로에 갔다. 나와 아이는 공연을 보러 들어가고, 그동안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은 대학로에서 페미니즘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와서 만난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유를 물으니 집회를 하는 곳을 지나는데 집회 참여자 중 한 명이 남편에게 다짜고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를 외치면서 조롱하는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그 몸짓 자체도 기분이 나빴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소리친 단어 역시 아주 나쁜 듯을 담고 있는 그들의 은어라고 한다. 그걸 알게 된 남편은 더더욱 기분 나빠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찾는다면서 모든 남성을 향한 무조건적인 적대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경험 2.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가 된 트렌스젠더가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했다는 뉴스를 보고 '신선하게' 놀랐다. 우리나라 사회가 이제 많이 열렸고 다양해졌구나 반가웠다. 그런데 며칠 후 숙명여대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한다는 뉴스가 나와서 '의아하게' 놀랐다. 아니 왜? 여자가 여대에 들어간다는데 뭐가 문제지? '남대'는 따로 없는데 '여대'가 있는 이유는, 과거에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에게 교육 받을 권리를 평등하게 주기 위한 거 아니었나? 여대 입학이 특권인가? 왜 선을 긋고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는 거지? 그러면서 어떻게 평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찬성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거고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을 똑똑하게 반박해서 학내 여론이 바뀌고, 숙명여대는 트렌스젠더 학생이 들어온 최초의 사례로 자랑스러워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트렌스젠더 학생이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매우 안타깝고 씁쓸했다.

 

위의 두 가지 외에도 그런 경험은 많아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그냥 막연히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황들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생겨나는 의문에 대해 답을 주는 책이었어요.

우리 사회의 부조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겠죠.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고민할 새도 없이 나 역시 그 방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큰 흐름에 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 자식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갑하고요.

김지윤 박사님의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를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생각 못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1장에서는 여성이 어떻게 참정권을 갖게 되었는지, 그게 한국 사회는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말하고 계세요. 1장에서 정말 알게 된 게 많았어요. 아까 제가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경험 속 의문들이 많이 해결되었던 장이에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게 곧 성 대결의 양상으로 변하곤 하는데 그러면서 제기되는 게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만든 여러 법적 장치과 규제와 제도가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온다는 거예요. 남자보다 많이 누리고 있으면서 무슨 차별을 이야기하느냐는 건데... 개별 사례를 놓고 보면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법 개정이 많이 되고 새로운 제도가 생기긴 했으니까요.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젠 알겠어요. '중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여성이 기득권 집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는 것이(70쪽)'라는 좀 더 근본적인 평등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여성만의 특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요.

 


1장이 여성 인권 이야기였고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2장으로 이어지는데요.

 

역사적으로 많이 차별 받아 온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일 거예요. 2장에서 나는 약자인가 강자인가를 어떻게 규정짓는가를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모든 상황에서 과연 그러한가를 확언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도 어떤 상황에선 상대적으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했어요. 다른 이의 처지를 알지 못하면  그 '무지' 또한 차별이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장애인 학교가 설립된다는 사실에 집값을 운운하며 폭언을 퍼붓는 사람들의 천박함은 교육의 부재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민낯인 셈이죠. '시민들의 의식 교육 또한 사회가 책임지고 해야 할 부분이다. 다시는 '너희들끼리 다른 곳에 가서 살아'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공공의 책임이 우리 사회에 있다(102쪽)'는 말씀에 정말 공감했어요. 제대로 알지 못하면 누구나 저런 저열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마찬가지인데, 제가 위에서 말한 숙명여대 사건이 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책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가치관의 이유로,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고 싫음의 선호도가 다른 이의 삶을 이등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118쪽)'고 하셨는데, 제가 궁금한 건 그 반대 상황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예요. 간혹 여성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장하다보면 역차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성소수자의 요구와 주장 중에는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 안 된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보거든요.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이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모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거든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성소수자들은 '우리를 향한 차별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우리를 싫어하지 말라'는 과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느껴질 때가 있어서요. 저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건지,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싶어요.

 

3장과 4장에서는 공동체와 민족주의, 사회적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현재 사회의 많은 현상들이 결국은 빈부 격차로 해석 가능하다는 데에서 서글펐어요. 아니 흑인 야구 선수가 줄어드는 데에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요즘의 코로나 사태와도 연관되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들은 개별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자가용 타고 다니니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밀집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 전염률도 떨어지겠죠. 좋은 직업은 재택 근무나 휴가 등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라도 일을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고요. 김혜진 소설가가 쓴 리뷰의 한 부분이 생각났어요. '불행은 누구에게 오는가. 불행은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온다.

하지만 김지윤 작가님 말씀은 저를 많이 반성하게 하셨는데요. 계급이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사회니까 나도 내 자식도 좀더 높은 계급이 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불행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데 작가님은 주류 사회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서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요(127쪽).

 


아직 희망이 있어 미래를 꿈꾼다고 맺음말을 하셨는데, 그것도 제게 용기를 주는 말이었어요.

사회가 우리에게 권리를 떠먹여주지는 않잖아요.

지금까지 역사를 봐도 그렇고요.

그러니 내가 내 권리를 알고, 권리 신장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그동안 저는 우리 사회가 과연 변할까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고 희망도 별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는 작가님이 미래의 희망을 말씀하시니 빈말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생겨요.

지금까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당당하게 말해야겠어요.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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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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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서 소설이라는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를 읽었어요.
제가 살인, 추리... 이런 거에 약한데 첫 장면부터...ㅠㅜ

 

레이첼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 노라.


언니의 집에 들어선 노라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언니가 키우던 개가 자신의 목줄에 매달려 죽어 있고 계단에는 빨간 손자국, 그리고 언니의 시신....

 

언니는 살해된 거죠.

 

노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지만 경찰은 왠지 범인을 잡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어 보여요.
노라는 직접 범인을 찾으려고 마을에 남아 언니 주변을 탐문하고 다니기 시작하는데요.

 

이 이후가 이제 본격적인 책의 내용에 해당돼요.

 

노라는 언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84쪽 뿌듯하다. 그 누구보다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 이후 언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너무 많아요.
언니가 키우던 개는 언니 말로는 입양해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방범용으로 훈련된 개였고 노라도 모르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심지어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노라의 전 남친의 상대가 바로 언니였죠.

 

사람이 타인을 '잘 안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레이첼과 노라는 부모님의 관심과 보호를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다른 자매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며 많은 것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완벽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었던 건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를 바라볼 때
그 범죄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시각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이었어요.

 

레이첼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또 15년 전에 모르는 남자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두 번이나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냐는 이유로 레이첼이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노라가 언니의 피해 현장 발견 당시 울지 않았다고 용의자로 지목받기도 해요.

 

15년 전의 폭행 사건 때 경찰은 레이첼이 술을 많이 마셨고 밤에 돌아다녔다고 해서,  레이첼이 사기를 치려고 했거나 몸을 팔려고 했다가 거절당한 거라고 여깁니다.

 

소설 아닌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죠.

 

얼마전 발생한, 온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N번방 사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가 된 여성들이 처음에 돈을 목적으로 가해자를 만났다고 비난했어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돈 받고 몸을 파는 여성은 성착취 대상이 되어도 되나요?
돈을 받기로 한 것이 합의라고 해도 성적 폭력을 해도 된다는 합의는 아니잖아요?
행실이 안 좋은 여성은 협박 받아 마땅하고 살해 당해도 되나요?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때 피해자를 '그럴 만한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건 또 다른 가해예요.
피해자와 주변인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도 그렇고요.

 

15년 전의 사건의 범인은 결국 찾지 못했고 레이첼과 노라는 그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 사건의 흔적은 남아 있었어요. 노라는 지금까지도 낯선 남자와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나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에 공포를 느낍니다.

 

한 번 겪고 나면 트라우마가 이토록 오래 가는데
피해자에게는 이토록 큰 사건이 수사 담당자에겐 '그럴 만한 사람에게 일어난 그럴 만한 일'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다는 건 너무 부당해요.

 

이 책에서도 노라는 결국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데, 그건 노라의 힘이었지 경찰의 힘이 아니었어요.

 

노라가 레이첼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애쓰면서
기억과 실제,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불러오는 노라의 개인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지만

개인이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현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는 사회적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 같았어요.

 

374쪽 나는 안다. 내가 괜찮을 거란 걸, 앞으로도 영원히 언니가 보고 싶을 거란 걸.

 

소설 속에서 노라는 언니의 부재를 인정하고 자신이 몰랐던 언니의 모습 때문에 생겨난 갈등을 극복했지만
사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제가 알게 된 건 바로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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