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권리를 찾기 위한 안내서
김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경험 1. 주말에 우리 식구 모두 대학로에 갔다. 나와 아이는 공연을 보러 들어가고, 그동안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은 대학로에서 페미니즘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와서 만난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유를 물으니 집회를 하는 곳을 지나는데 집회 참여자 중 한 명이 남편에게 다짜고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를 외치면서 조롱하는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그 몸짓 자체도 기분이 나빴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소리친 단어 역시 아주 나쁜 듯을 담고 있는 그들의 은어라고 한다. 그걸 알게 된 남편은 더더욱 기분 나빠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찾는다면서 모든 남성을 향한 무조건적인 적대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경험 2.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가 된 트렌스젠더가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했다는 뉴스를 보고 '신선하게' 놀랐다. 우리나라 사회가 이제 많이 열렸고 다양해졌구나 반가웠다. 그런데 며칠 후 숙명여대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한다는 뉴스가 나와서 '의아하게' 놀랐다. 아니 왜? 여자가 여대에 들어간다는데 뭐가 문제지? '남대'는 따로 없는데 '여대'가 있는 이유는, 과거에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에게 교육 받을 권리를 평등하게 주기 위한 거 아니었나? 여대 입학이 특권인가? 왜 선을 긋고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는 거지? 그러면서 어떻게 평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찬성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거고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을 똑똑하게 반박해서 학내 여론이 바뀌고, 숙명여대는 트렌스젠더 학생이 들어온 최초의 사례로 자랑스러워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트렌스젠더 학생이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매우 안타깝고 씁쓸했다.

 

위의 두 가지 외에도 그런 경험은 많아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그냥 막연히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황들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생겨나는 의문에 대해 답을 주는 책이었어요.

우리 사회의 부조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겠죠.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고민할 새도 없이 나 역시 그 방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큰 흐름에 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 자식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갑하고요.

김지윤 박사님의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를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생각 못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1장에서는 여성이 어떻게 참정권을 갖게 되었는지, 그게 한국 사회는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말하고 계세요. 1장에서 정말 알게 된 게 많았어요. 아까 제가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경험 속 의문들이 많이 해결되었던 장이에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게 곧 성 대결의 양상으로 변하곤 하는데 그러면서 제기되는 게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만든 여러 법적 장치과 규제와 제도가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온다는 거예요. 남자보다 많이 누리고 있으면서 무슨 차별을 이야기하느냐는 건데... 개별 사례를 놓고 보면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법 개정이 많이 되고 새로운 제도가 생기긴 했으니까요.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젠 알겠어요. '중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여성이 기득권 집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는 것이(70쪽)'라는 좀 더 근본적인 평등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여성만의 특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요.

 


1장이 여성 인권 이야기였고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2장으로 이어지는데요.

 

역사적으로 많이 차별 받아 온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일 거예요. 2장에서 나는 약자인가 강자인가를 어떻게 규정짓는가를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모든 상황에서 과연 그러한가를 확언할 수 없게 되었어요. 저도 어떤 상황에선 상대적으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했어요. 다른 이의 처지를 알지 못하면  그 '무지' 또한 차별이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장애인 학교가 설립된다는 사실에 집값을 운운하며 폭언을 퍼붓는 사람들의 천박함은 교육의 부재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민낯인 셈이죠. '시민들의 의식 교육 또한 사회가 책임지고 해야 할 부분이다. 다시는 '너희들끼리 다른 곳에 가서 살아'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공공의 책임이 우리 사회에 있다(102쪽)'는 말씀에 정말 공감했어요. 제대로 알지 못하면 누구나 저런 저열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마찬가지인데, 제가 위에서 말한 숙명여대 사건이 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책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가치관의 이유로,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고 싫음의 선호도가 다른 이의 삶을 이등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118쪽)'고 하셨는데, 제가 궁금한 건 그 반대 상황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예요. 간혹 여성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장하다보면 역차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성소수자의 요구와 주장 중에는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 안 된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보거든요.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이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모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거든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성소수자들은 '우리를 향한 차별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우리를 싫어하지 말라'는 과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느껴질 때가 있어서요. 저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건지,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싶어요.

 

3장과 4장에서는 공동체와 민족주의, 사회적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현재 사회의 많은 현상들이 결국은 빈부 격차로 해석 가능하다는 데에서 서글펐어요. 아니 흑인 야구 선수가 줄어드는 데에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요즘의 코로나 사태와도 연관되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회적 계층이 높은 사람들은 개별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자가용 타고 다니니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밀집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 전염률도 떨어지겠죠. 좋은 직업은 재택 근무나 휴가 등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라도 일을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고요. 김혜진 소설가가 쓴 리뷰의 한 부분이 생각났어요. '불행은 누구에게 오는가. 불행은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온다.

하지만 김지윤 작가님 말씀은 저를 많이 반성하게 하셨는데요. 계급이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사회니까 나도 내 자식도 좀더 높은 계급이 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불행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데 작가님은 주류 사회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서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요(127쪽).

 


아직 희망이 있어 미래를 꿈꾼다고 맺음말을 하셨는데, 그것도 제게 용기를 주는 말이었어요.

사회가 우리에게 권리를 떠먹여주지는 않잖아요.

지금까지 역사를 봐도 그렇고요.

그러니 내가 내 권리를 알고, 권리 신장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그동안 저는 우리 사회가 과연 변할까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고 희망도 별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는 작가님이 미래의 희망을 말씀하시니 빈말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생겨요.

지금까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당당하게 말해야겠어요.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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