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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평점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처음..ㅡㅡ;;) 마르크 레비의 <그녀, 클로이>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에요.
표지도 너무 상큼하고 예쁘잖아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건물의 안에서 밖을 보고 있는 여자와 건물 밖 1층에서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소설의 주요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건 그 두 명이에요.
뉴욕에 사는 클로이와 뭄바이에 사는 산지.
여느 로코와 다름없이 첫 만남, 거듭된 우연, 마주침, 오해, 화해의 과정을 거쳐 해피엔딩에 이르는데요.
그럼에도 이 소설이 여느 로코와는 다른 특별한 점은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약자의 위치에 있는 소수자라는 거예요.
클로이는 장애인이고 산지는 (백인의 관점에서) 유색인종이죠.
산지의 고모부는 사라져가는 직업인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이자 아내(산지의 고모)와 함께 고향을 탈출해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자고요.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39년 째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운전(?)하고 있는 디팍.
그 아파트 주민은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조금은 불편해도 오랜 전통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고
디팍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디팍과 함께 일하는 밤 근무 승무원이 다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 엘리베이터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데 근무자가 자리를 비우면 주민들은 불편해져요.
게다가 이 아파트 9층에 사는 클로이는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해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큰 이동제한이 생기죠.
아파트 관리자는 이 기회에 엘리베이터를 자동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 일이 생겨나자 디팍을 비롯 아파트 주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까요~~~? ^^
이 소설이 흥미로웠던 건 다양한 인물 개개인의 사연이 혼재하면서도 각각 의미있었다는 거예요.
디팍와 랄리는 인도에서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상류 계급인 랄라의 가족이 디팍을 살해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으로 도망쳐옵니다. 이들을 통해 전근대적 계급 사회의 불합리성과 비극을 보여주고요.
그러한 갑갑한 문화를 견딜 수 없었던 산지는 독자적인 행보로 전통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팍이 일하는 아파트에서 고가의 목걸이가 없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바로 도둑으로 오인 받아 경찰에 체포됩니다. 물론 경찰이나 주민들은 말로는 당시 정황상 그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만, 내재되어 있는 인종 차별을 보여준 셈이죠.
더 인상적인 설정은 클로이예요.
주인공 클로이는 아버지가 교수이고 본인은 배우였어요.
절대 사회적 약자일 수 없는 클로이는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돼요.
우리가 살면서 '나와는 다른' 타자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행동을 알게 모르게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그 지위라는 것이 영구 불변한 게 아니라는 걸 클로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거죠.
인종 차별, 편견, 계급 사회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하지 않아서 좋아요.
정말 딱 로코 영화 같은 느낌~!
앞표지도 예쁜데 뒷표지도 넘넘넘 예쁘고요~
중간중간 클로이가 쓴 일기로 클로이의 과거를 묘사하는 형식도 좋은데
에필로그까지 완벽!
아.... 이거 영화로 언제 나와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영화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책으로 먼저 보세요 ㅎㅎㅎ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영화가 지나갈 거예요.
153쪽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몇 년 후에도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직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라진 직업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그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의 긍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근면한 삶을 누가 기억해줄까?.... 중략... 그래서 내 조카가 인도로 돌아가서 수동식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당연히 내 생각이 나겠지. 조카가 나를 생각하는 한 나는 존재하는 거잖아. 바로 그게 내가 이러는 이유야.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서.
270쪽 질문이 잘못됐구나.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떠난 거야. 무릇 용기라 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삶을 끌어안을 때 쓰는 말이고. 용기는 희망이 있다는 거니까.
338쪽 나는 의심의 여지없는 한 가지를 알았다. 최악이라고 보이는 것에 이르렀을 때, 인생은 숨기고 있던 경이로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걸. 그 경이로움. 네가 바로 그 증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