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심리 스릴서 소설이라는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를 읽었어요.
제가 살인, 추리... 이런 거에 약한데 첫 장면부터...ㅠㅜ

 

레이첼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 노라.


언니의 집에 들어선 노라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언니가 키우던 개가 자신의 목줄에 매달려 죽어 있고 계단에는 빨간 손자국, 그리고 언니의 시신....

 

언니는 살해된 거죠.

 

노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지만 경찰은 왠지 범인을 잡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어 보여요.
노라는 직접 범인을 찾으려고 마을에 남아 언니 주변을 탐문하고 다니기 시작하는데요.

 

이 이후가 이제 본격적인 책의 내용에 해당돼요.

 

노라는 언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84쪽 뿌듯하다. 그 누구보다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 이후 언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너무 많아요.
언니가 키우던 개는 언니 말로는 입양해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방범용으로 훈련된 개였고 노라도 모르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심지어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노라의 전 남친의 상대가 바로 언니였죠.

 

사람이 타인을 '잘 안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레이첼과 노라는 부모님의 관심과 보호를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다른 자매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며 많은 것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완벽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었던 건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를 바라볼 때
그 범죄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시각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이었어요.

 

레이첼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또 15년 전에 모르는 남자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두 번이나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냐는 이유로 레이첼이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노라가 언니의 피해 현장 발견 당시 울지 않았다고 용의자로 지목받기도 해요.

 

15년 전의 폭행 사건 때 경찰은 레이첼이 술을 많이 마셨고 밤에 돌아다녔다고 해서,  레이첼이 사기를 치려고 했거나 몸을 팔려고 했다가 거절당한 거라고 여깁니다.

 

소설 아닌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죠.

 

얼마전 발생한, 온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N번방 사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가 된 여성들이 처음에 돈을 목적으로 가해자를 만났다고 비난했어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돈 받고 몸을 파는 여성은 성착취 대상이 되어도 되나요?
돈을 받기로 한 것이 합의라고 해도 성적 폭력을 해도 된다는 합의는 아니잖아요?
행실이 안 좋은 여성은 협박 받아 마땅하고 살해 당해도 되나요?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때 피해자를 '그럴 만한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건 또 다른 가해예요.
피해자와 주변인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도 그렇고요.

 

15년 전의 사건의 범인은 결국 찾지 못했고 레이첼과 노라는 그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 사건의 흔적은 남아 있었어요. 노라는 지금까지도 낯선 남자와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나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에 공포를 느낍니다.

 

한 번 겪고 나면 트라우마가 이토록 오래 가는데
피해자에게는 이토록 큰 사건이 수사 담당자에겐 '그럴 만한 사람에게 일어난 그럴 만한 일'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다는 건 너무 부당해요.

 

이 책에서도 노라는 결국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데, 그건 노라의 힘이었지 경찰의 힘이 아니었어요.

 

노라가 레이첼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애쓰면서
기억과 실제,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불러오는 노라의 개인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지만

개인이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현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는 사회적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 같았어요.

 

374쪽 나는 안다. 내가 괜찮을 거란 걸, 앞으로도 영원히 언니가 보고 싶을 거란 걸.

 

소설 속에서 노라는 언니의 부재를 인정하고 자신이 몰랐던 언니의 모습 때문에 생겨난 갈등을 극복했지만
사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제가 알게 된 건 바로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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