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자존심' 대신 '자존감'이란 말이 흔하게 쓰인다. 고등학생 무렵 내 여자 친구에게 처음 해주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 말을 내가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물론 이전에도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그 이전엔 어디에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글을 본 적이 없었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비슷한 말 같아도 사실은 많이 다른 말이다. 자존심이란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지만 '자존감'이란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실존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니까. 죽음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은 오로지 사람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한다. 동물학자들이나 동물애호가들로서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테지만 어쨌든 나는 그와 비슷하게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삶이 삶을 덮는 순간, 바람이 목덜미를 쓰다듬는 그 느낌이 정겹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