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주는 본래 나의 휴가 기간이었다. 남들 다 가는 여름 휴가 한 번 제 때 못 가보는 것이 잡지쟁이의 숙명이라면 하는 수 없지만, 똘똘한 녀석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한 내 탓도 크다. 그런데 일이란 것이 암세포 같이 자가증식을 하는지 이번 여름에 내가 바쁜 건 꼭 잡지마감 때문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직장 내에서 비중이 제법 커졌다. 내가 유능해서라기 보다 한 직장에서 십몇년을 근속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내 머리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게다가 어제는 편집회의가 있어서 오후 9시에 일이 끝났는데, 집사람이 어제 처가집 식구들 여름 파티에 가야하는 바람에 집에 가자마자 다시 집사람과 처형을 태우고 부랴부랴 일산을 지나 저멀리 파주 근방까지 운전해서 가야 했다. 인천에서 부천으로 갔다가 다시 부천에서 파주 근방까지 가서 집사람과 처형을 내려주고, 나는 다시 출근을 하기 위해 부천으로 돌아왔는데, 집 근처에 거의 다 왔더니 본래 토요일까지 처가에 머물겠다던 집사람이 아무래도 조카들 때문에 정신산란하여 안 되겠으니 금요일인 오늘 자길 데리러 와달라는 거다. 

당장 이번 달말까지 <인물과사상> 원고를 마감해줘야 하는데, 회사에선 3일동안 하루 종일 은행 나가는 직장 상사의 기사 노릇을 해야 했고,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또 우리 대장의 개인적인 일거리(요즘 인천의 모 지역신문에 중국기행문을 연재하고 있다)까지 떠맡아서 교정에 사진 스캔에 별별 일에 다 시달리고 있다. 언젠가도 혼자 앉아서 내가 이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의 종수를 헤아려 보다가 숨이 막혀 돌아가실 뻔 한 적이 있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 왔는데, 오늘은 우리 대장의 말 한 마디가 그만 나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휴가도 안 가니까 다음달 말에 가게 될 역사기행에 쓰일 책자를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허걱, 내가 잡지 마감보다 당신 개인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휴가까지 보류한 사람이란 걸 알면 내게 이렇게 말하실 수는 없는 거다. 이런 순간에 당신은 그저 스크루지 영감보다 더 악독한 기업주가 된다. 웬수도 저런 웬수가 따로 없다. 하여간 당장 나는 다음주 월요일이 오기 전에 최소한 60매짜리 원고를 하나 써야 하고, 다음 주부터는 쫄따구가 휴가를 가기 때문에 혼자서 <황해문화> 원고독촉에 마감에 시달리게 생겼다.  

거기에 재단 홍보책자를 8월 안으로 마감해야 하고, 8월말에는 전남 해남, 강진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안내 책자를 만들어야 하고, 또 그 역사기행에 인솔자로 따라가야 하고, 8월말까지 다시 <인물과사상> 원고 마감해줘야 하고, 그 중간에 조찬강연모임인 <아침대화> 해야 하고, 8월 20일까지는 <황해문화> 발행해야 하고, 9월 중순에 하는 음악회 출연진 섭외에 공연팸플릿 만들어야 하고, 9월까지 다시 재단<뉴스레터> 만들어야 하고, 9월말엔 다시 <인물과사상> 마감해줘야 한다.  

음, 생각해보니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향신문> 칼럼을 빼먹었다. 그런데 <경향신문>에 게재되는 내 칼럼은 보내달라고 해서 보낸지가 거의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여태 안 나왔다. 아무리 단독칼럼이 아니라 필진칼럼이라도 좀 너무 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시의성 있는 칼럼을 쓰고자 하는 편인데, 벌써 그 3주 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여간 이렇게 글로라도 토해내니 머릿속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기는 하다. 에효, 일하자. 일, 일, 일, 일, 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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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1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1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7-3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바쁘다는 사람들의 푸념이 절 위로해주는군요.^^;

바람구두 2009-08-01 19:19   좋아요 0 | URL
제가 다른 건 로쟈님과 경쟁을 꿈도 꾸지 않지만
바쁜 걸로는 로쟈님이 제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ㅋㅋ

라주미힌 2009-07-3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구두님.. 노동강도가 지존이십니다 ;;;

바람구두 2009-08-01 09:13   좋아요 0 | URL
인천에 계시다는데도 한 번 뵙지를 못하네요.
언제 한 번 만나요. ^^

라주미힌 2009-08-02 00:50   좋아요 0 | URL
오늘 휘모리님하고 배다리 걷기 했었는데..
바람구두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크... 일 좀 덜어내시면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용..

바람구두 2009-08-03 09:56   좋아요 0 | URL
어케 휘모리님만 한 번 뵐 수 없으려나요? 흐흐
농담, 농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

가을산 2009-08-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그래서 대장님께 '폭발'하셨습니까?
이건 잘못된 것 같아요. 정말로.
바람구두님은 글 쓰는 것 이외의 것은 하지 않으셔도 되는 군번 아닌가요?
왜 스캔에 운전에..... 제가 다 화나네요 ㅡ,ㅡ
대장은 각성하라~~~!!!

바람구두 2009-08-01 13:20   좋아요 0 | URL
그게 또 평소 같으면 그 일들을 대신했을 만한 사람들은 죄다 휴가를 간지라서요. 항상 이런 건 아니지만 간혹 좀 그럴 때가 있죠. ^^
어쨌든 가을산님이 편들어주니 좋은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