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고교생 운동가’ 전성원 “그들은 ‘빛’이자 ‘빚’”
입력: 2007년 06월 10일 18:43:42
 
1980년 광주가 궁금했던 10살짜리 꼬마는 17살 고교생이 되어 1987년 6월항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고교생 운동가’에게 80년대는 그저 뜨거운 시대였다.

“지금 10대 친구들에게 스타크래프트가 일상이듯 제게는 그 시절 저항, 운동이 일상이었죠.”

당시 동북고 2학년이었던 전성원씨(37·사진). 독재정권 아래 정치적 고민을 하던 젊은 고교생들은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를 조직했다. 이들은 87년 12월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자 서울 명동성당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군부독재 정권의 뿌리와 다를 바 없는 노대통령의 당선, 13대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평온하기만 했다. 시민들이 또 한번 일어서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투쟁은 쓸쓸히 막을 내렸다.

전씨는 대학 진학보다 ‘현장 속의 운동’을 머릿속에 그렸다. 노동 현장 속에서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졸업 후 천안공단으로 갔다. 하지만 현장은 녹록지 않은 곳이었다. 몇개월 버티지 못하고 공단을 뛰쳐나온 그는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을 했다.

그러기를 3년. 전씨는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을 막노동꾼으로 살겠다’ 싶어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학창시절 꿈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는 92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엔 출판과 광고기획 일을 함께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한보그룹의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돈은 적당히 벌 수 있었다. 먹고 살 만도 했다. 하지만 한보그룹의 비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회사의 자금줄도 막혔다. 회사가 날아가면서 전씨의 자리도 날아갔다.

전씨는 “돈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진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떠난 뒤 전씨는 6개월 내내 쉬면서 담배만 태웠다. 그리곤 뭘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에게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인천지역 계간지 ‘황해문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장석남 시인이 학교 측에 추천을 의뢰했고, 전씨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 전씨는 96년 11월부터 황해문화에서 일을 시작했다. 10년 전 고교에서의 열정을 다시 태울 소중한 기회였다.

전씨의 마음 한구석은 늘 편치 않다. 함께 뜨거운 세월을 보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그들을 “내게 ‘빛’이자 ‘빚’인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특히 이찬진이란 친구는 영원한 마음의 빚이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서고련의 초창기 모임을 주도했던 인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노동운동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노동자로 사는 것은 고통이었다. 이씨는 어느 순간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생업을 위한 노동자가 돼버렸다. 몸담았던 조직은 깨졌고 노동운동 진영에서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 운동 진영에서도 활동경력, 학벌은 무시 못할 요소였다. 전씨와 함께 고교시절 운동을 했던 친구들 중 세속적으로 성공한 이는 없다. 내세울 학벌을 가진 친구도 없다. 하지만 그는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전 세대가 ‘민주화’에 억눌린 세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우리 세대는 그로부터 자유로웠어요. 세속적 성공으로부터도 자유로웠고요. 우린 어쩌면 ‘새로운 세대’예요.”

〈글 이고은·사진 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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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나는 96년 5월(11호)부터 일했고, 먼저 떠난 내 친구는 이찬진이 아니라 이창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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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6-1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바람구두님에 대해 좀 알겠군요. 늘 궁금했었는데...

마노아 2007-06-1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이자 빚인 존재... 뜨겁게 다가옵니다.

클리오 2007-06-1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광주의 몇몇 사람과도 비슷한 인생행로. ... 뭐라 참 덧붙이기도 ... 그런데, '전씨..'라고 부르니 어쩐지 다른 사람이 겹치는 것이... =3=3=3

프레이야 2007-06-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의 또다른 면모를 봤네요. 역시! 그랬구나, 싶습니다.
빛이자 빚이란 말이 참 절실하게 들립니다.

바람구두 2007-06-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새로울 것도 없잖아요. ^^
마노아님/ 그러게요.
클리오님/ 비슷한 시대 비슷한 삶을 산 많은 이들을 일컬어 세대라고 하지요.
혜경님/ 그러셨어요? 제게는 참 무거운 말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