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가 잘 가는 비공개 인터넷 싸이트에서 눈이 머무는 논의가 있어 옮겨옵니다.

 
본문(익명1)

1. 학교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중에 누구의 노동이 더 가치로운 것인가?

1-1. 만약 교수님의 노동이 더 가치롭다고 한다면 그것이 임금 차이가 그정도로 많이 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익 명2: 우선 무엇이 가치로운 것인가- 즉, '가치의 기준'을 설정해야 명확한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인간적인 답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임금차이는 현재의 위치에 있기까지 투입한 것들의 산출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현재까지 들인 시간, 노력, 돈 등이 모두 포함되겠죠. 추가로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포기했던 것들의 기회비용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구요.
물론 그것을 획득할 기회가 공평했는가- 는 해당 질문과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09.05.14 01:54) 

  
익 명1: '가치': 사회적 유용물의 창출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 유용물'은 사회내의 개인에게 유용성(쓸모)의 정도라고 규정할 수 있겠지요.
'사회 내의 개인'은 물론 그가 위치한 사회경제적 위치 또는 계급적 지위에 따라 종류가 갈린다고 할 수 있죠.
구체적으로 교수님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주는 유용성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노동이 학생에게 주는 유용성을 비교해볼 수 있겠지요. 물론 노동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교수님의 강의 활동은 학생들의 창발성을 키어주는 것, 아주머니의 노동은 현상의 유지. 이런 식으로요.)

한 번 생각해볼만한 것은 이러한 학술활동이라는 노동과 관리의 노동이 어느게 더 등급이 높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사회적인 연관관계속에서 누군가는 가르치는 일을 해야하고 누군가는 운전하는 일을 해야 하고 누구는 청소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러한 모든 일은 현 사회를 유지하는데 다 공.평.히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학술활동이 학문후속세대를 기르고 또한 그로 하여금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지적역량'을 키운다고 하더라도. 학생과 교수가 학술활동을 하는 데는 다른 수많은 노동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지 하는 점입니다. 곧 학술활동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많은 노동의 뒷받침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학술활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임금을 준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동일한 학술활동을 하는 전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임금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답변을 잘 들었습니다. 익명게시판인데도 이렇게 성의있는 답변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괄호안에 '비인간적인 답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다셨는데요. 저도 같은방식으로 대답해보겠습니다.
일단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노력이나 시간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효용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업이나 정부에서는 취업을 바라는 사람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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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5-14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노동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의 가치는, <익명 1>의 설명처럼 후세대 혹은 사회를 위한 학문과 지식 등을
전하여, 그것이 피라미드 혹은 방추사처럼 새로운 가치들이 재탄생 퍼져가기 때문에..
가령 예를 들면, 그 교수의 가르침이 '정치' 혹은 '사회'에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 밑에서 배운 학생 중 하나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실현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가정이 생기잖아요.

물론, 아주머니의 '사회에 있어 꼭 필요한 노동'의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값진
것이므로 논쟁의 주제에 오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히, 두 직업의 임금, 사회적 지위 등을 가지고 가치를 평할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 파생되는 각각의 진정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은..

이런, 또 '줒대없는' 절충형이군요.저는.(웃음)
어릴 때, '인간 복제의 찬.반론'에 대한 논술도 고집을 피워서 절충형으로 썼다가
잔소리 들은 적이 있는데..ㅋㅋ

푸하 2009-05-1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대답 감사해요. 배움과 가르침이 그러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으면 매우 좋을 것 같아요. 물론 힘들여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요. 노동의 가치를 임금으로만 평가하는 건 문제이긴 한데... 너무 차별이 심한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어떤 직업은 너무 귀한대접을 받고 다른 건 천시받고... 다 필요한 노동인데요.

절충형이라니요. 엘신님의 생각이신거죠. 엘신님의 생각을 그렇게 규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지네요. 그런 사람들의 얕은 고민이 담긴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흘려버리시구요.
음.... 인간 복제의 찬반론이라... 어떻게 쓰셨을까?하는 궁금하기도 해요.^^;

L.SHIN 2009-05-14 18:44   좋아요 0 | URL
음...지금 읽으면, '악,민망해!' 해버릴 정도의 유치한 논술입니다.
그 절충형 고집 때문에 '가작'이라는 낮은 상을 받았음에도 그 때는..
제 고집에 대해서 후회를 한 적이 없었죠.^^;
푸하님이 제 다리를 잡고 아무리 졸라댄다고 해도 절대 보여드릴 수 없을
정도로...지금은 참..창피하답니다. 10대의 수준이 그렇죠,뭐.(웃음)

푸하 2009-05-14 19:29   좋아요 0 | URL
아니... 가작을 받으셔놓고 창피하시다니... 자신의 글에 대한 창피함을 느낀다는 것은 글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으셔서 그러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상까지 받으셨다니.. 부러워요.><;

치니 2009-05-1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의 가치를 따지는 건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공산주의라면, 교수건 아주머니건 똑같이 노동하고 똑같이 분배 받는 것이겠고.
^-^ 역시 단순한 치니였습니다.

푸하 2009-05-14 17:10   좋아요 0 | URL
가치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점)에 따라 사물의 우열과 등급과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겠어요. 음... 이거 좀 비인간적이긴 한듯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