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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웨잇...
제이슨 지음 / 새만화책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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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욘의 외침, “Hey, Wait..” 그러나 이미 비욘은 몸을 날렸고 그 다음 페이지 6개의 칠흑

같은 프레임이 욘의 경악, 고통, 절망, 그리고 어른으로 훌쩍 커버리는 한 어린 소년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이 책을 다 본 지금에서 그런 느낌의 의미심장함

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제이슨이란 가명을 쓰는 노르웨이 만화가 욘 아네 새테뢰이(John Arne SæterØy)가 그린

[헤이 웨잇(Hey, Wait)]은 이처럼 한 페이지 당 6칸의 프레임 형식을 고수하면서 그 6칸

으로 때로는 6분을, 때로는 6시간을, 또 때로는 6년 이상의 시간과 공간과 장면을 매우

간결한 모노톤과 라인을 통하여 압축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거의 대사가 없이 장면들

을 밀도 있게 눌러 담은 각 프레임들은 통상적인 경우, 그 함축성과 은유적 특성 때문에

독자의 자유 해석, 임의적인 상상을 유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제이슨의 6칸 프레임은

오히려 그런 서투른 상상의 고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상징도 없으며 직설적

고 적나라한 현실의 삶과 일상의 소소함들을 소재로 하여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어 마치 연극의 미장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고만고만한 가정에서 태어난 욘과 비욘은, 꿈 많고 행복

던 평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충동적인 내기에서 비롯된 한 아이의 죽음과 그 죽음을

결국 자신이 죽을 때까지 끝까지 벗어버리지 못했던 남겨진 아이의 삶의 흐름이 담담히

그려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 즐겁고 활기 찬 사건들이 묘사되는 책 전반부를 지나, 친구

의 죽음이 곧 자기 유년 시절의 끝장이자 꿈이 없는 무미건조한 어른으로 변화되는

포인트가 되는 책의 후반부는 나사를 깎는 일이 자기 업이 되어버린(어린 시절 그토록

되기 싫어했던), 사는 일에 지친 한 어른의 남은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책을 본 한 유명작가는 “조심하세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줄지도 모릅니다” 라고 했다는데, 아마도 어떤 상처와 추억과 상념들을 가진 ‘나’인가에

따라 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그림들을 보는 각각의 놀라움과 전율과 그리고 슬픔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좀더 나아가서는, 이 만화책을 품평하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 권해줄 수 있을 뿐, 더 이상의 제 감상을 적는 것은 좀 부질없을 것 같습니다.

그처럼 이 책은 이 책을 읽는 각 개인들에게 지극히 자신 만의 상념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 그 자체라고도 생각이 되는군요. 만화라는 표현 매체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일

지라도 가능하면 한번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나름대로 적지 않은 책과 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지식만화들을 두루 섭렵해왔다고 생각하는 데, 이 책은.. 글쎄요 좀 다르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일테면 지식만화를 먹기 좋게 잘 비벼낸 비빔밥이라 한다면,

이 만화책은 적절한 처방을 가진 한약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약은

에 쓰지만 우리 몸의 안좋은 구석을 치료해주듯 이 책을 그렇게 소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으로 만화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2002년 하비상(Harvey Award)을 수상했고

그 외에도 이그나츠상(Ignatz Award) 노미네이트, 2000년 노르웨이 만화상 수상 등,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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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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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 의해 지난 3월 14일 납치되었던 KBS 용태영 기자

님이 납치 하루 만인 3월 15일 풀려났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여 자식

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셨을 용기자님의 부모님들이 이제 제대로 숨을 쉬시겠군요.

(용기자님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납치사실을 알린 외신보도에 대해, 취재해야 할

사람이 되려 취재를 당했다고 송구스럽다고 하며, 풀려나자마자 바로 두바이로 향했

다는 군요.. 일생의 큰 사건이었을 텐데, 조금 쉬셔도 될 것을..).


이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외국인 납치 사건은 이미 잘 보도되었듯, 팔레스타인

관할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

가 석방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스라엘 정부군이 헬기와 탱크, 불도저를 동원해

기습한 사건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무력시위에 대항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외국인을 미끼로 전 세계에 이스라엘 공격의 부당성을 알리려 했던 것

인데,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경비원 2명이 죽고 2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지난 반세기 이상을 도저히 화해될 수 없는 극단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대치하고 있

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분쟁의 씨앗이 기원전 13세기 모세의 출애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시대의 지난한 문제 앞에, 해당 당사자도 아닌 동양의 한 인간으

로서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그 분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 아랍인들

에게 품는 연대감이 ‘남의 나라 일’을 남의 일로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조 사코Joe sacco’라는 미국인 만화가가 그린 [팔레스타인]은 바로 그런 팔레스타인

과 이스라엘의 종교/정치적 갈등 속에서, 여전히 빈곤하고 위태한 삶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는 현재 진행형의 팔레스타인 주민-그 평범한 사람 하나하나의 일상을 매우

적나라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만화책입니다.


처음에 이 만화책을 알게 되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조 사코가 실제 이 만화책을

그리게 된 것이 걸프전이 발발했던 즈음의 1991년 말, 두 달 간의 팔레스타인 경험

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사실 책 내용의 신뢰도에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고작 두 달을

살아보고’.. 라는 경험치에 대한 선입견 이었을 것인데, 책을 다 읽고는 그 두 달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두 달은 아마 최초의 팔레스타인 민중의 인티파

다(Intifada:민중봉기)가 일어났던 1987년 이후 현재까지 20여년간 이스라엘 정착촌

유대인과 군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했던 그 모든 억압이 그대로 농축되어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추측컨대, 일제 치하 식민속국이었던 우리나라의 과거 어두웠던 암흑기도, 이들 팔레

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의

인티파다 이후 오슬로 자치안이라는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1994년까지, 8여년에 걸쳐

약 14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해되었고, 그 중 어린아이가 400여명에 달합

니다. 1년에 170여명. 이틀에 한 명 꼴로 이스라엘 정착촌 유대인 혹은 군인들에게

속절없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강제 철거명령서를 앞세워 탱크로 집을 밀어버리는

군인들에게 욕을 했다든지, 하는 정도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총탄 세례를 받은 12

살짜리 어린애가 있는 바에야, 그 어디에서 그 무자비한 살육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

을까요. 가나안의 땅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명분은 ‘신의 약속’이라 하는 데, 그 지독

한 성스러움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역사적인 이/팔 분쟁의 원인과 동기 등을 굳이 분석하지 않더라도, 설령 그 어떤 성

스러운 동기가 있었다 할지라도(그런 것은 단연코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극렬 시오니즘의 주창자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

인 사람들에게 가했던, 그리고 지금도 가하고 있는 그 모든 억압과 통제, 폭력은 결

코 정당화될 수 없다. - 이것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당연하나 아주 손쉽게 잊혀

지는, 교훈입니다. 사회계급의 문제에서도 그렇듯, 국가간 힘의 계급 문제에서도 역시

아래에 처한 자의 자리에서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 보다 진실을 잘 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고, 이 책은 그런 세상 보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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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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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epolis란 고대 이란(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를 말합니다.

 이란 왕조의 후손인 저자가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은, 자신의 조국이 고대에 누렸던

 번성을 오늘에 되살린다는.. 국민헌장식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서구의 안전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록 너무나 위험하고 살기 어렵게 보이는 조국이지만,

 자기 나라에 대한 진한 애정은 여전히 공고함을 웅변하는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이 책을 덮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르잔 샤트라피는 저와 동 세대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란, 자기 조국에서 이슬람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10살 언저리에서 겪고 있을 때, 저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광주민주항쟁을 겪었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에게 그 '사건'들은, 맞은 편 집에 살던

 자기 친구와 그 가족들이 미사일 폭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말그대로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체감현실이었던 반면, 제게 80년대는 초등학교 옆에 앉은 짝꿍의 연필이나 탐내는,

 중세 시대'였다는 점입니다. 그 동 시간대에 광주에선 미사일 폭격과 다름없는 짓들이

 저질러지고 있었는 데 말입니다. 

 마르잔은 아트슈피겔만의 [쥐]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책-만화-을 썼다고 합니다.

 만화라는 것은 워낙 시각적 메세지 전달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을 활자로

 읽으면 50% 이해할 것을 그림으로 보면 120% 확대해석할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흑백의

 시종 담담한 그녀의 그림들은 어떤 곡해나 오판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흔히 '미국VS중동'에 대한 거대 담론-국가 간의 문제, 정치 혹은 경제적 패권, 테러리즘,

 종교 갈등-의 차원에서만, 그것도 잘 포장된 수구언론과 서구제국주의에 복무하는

 가공된 방송정보로만 접하게 되는 중동의 현실에 대해, 그 전쟁의 포화와 계급 갈등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야되는 한 인간의 일상과 목소리를 들여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간 이란,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에 대한 정치적 이슈들은

 지나치게 서구 열강들의 주목을 받아왔지만(그 관심이 석유자원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제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는 또 지나치게

 경시되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광주항쟁에서 보아왔던 그 폭력과 공포,

 갈등의 2배 이상은 될 법한 사회적 혼란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 곳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즐거움과 노여움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지금도 현재형인-이,  중동을

 바라보는 이 책 이전의 제 편향된 시선을 바로잡아 줍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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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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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수혜를 오랜 세월 동안 누린 서구의 한 젊은 학자가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자리한 토착마을에서 16년 간을 그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1975년부터 시작한 그녀의 라다크 생활은 1991년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끝났지만

그 다음 해 [Ancient Futures]라는, 이름도 의미심장한 한 권의 책을 발간하면서

전 세계 '정신'들이 라다크에 주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국내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제호로 번역출판된 이 책은 내용에 걸맞는 형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거려니와(재생용지를 사용합니다), 표지에 박혀있는 참으로

맑고 밝은 한 라다크 인의 웃는 얼굴이 또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명이고, 본문 중 간간이 등장하는

이 '라다크의 미소'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 한가지 효용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책에서 여러가지 뜻을 찾아가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제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규모와 속도'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많은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볼 수 있었습니다. 

- 규모와 속도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베이스는 '규모의 경제'입니다(이제는 자명한).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시스템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애기를 누군가가

했던 것 같은데, 브레이크가 설령 있더라도 '후진'이 없다고 첨언할 수

있겠습니다. 즉, '규모'라는 것은 작아지지 않는 것/계속 커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빅 사이즈 지향'의 단어입니다. 그것은 또 '속도'와 연결

되어있습니다. 더 커지기 위해 더 빨리 모든 것들이 돌아가야 합니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시간은 시 단위에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잘게 쪼개집니다.

현대(modern)에서 발명되고 이제 현대를 지탱하는 이 '시간'이란 재화는

곧 돈과 등가물이 된 지 오래인데, 역설적이게도 이 시간개념의 탄생은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등장한 그 많은 현대의

시간절약기계들을 이용하여 남게 된 시간들로 인간의 삶을 구하지 않고, 시간을

아껴 또 다른 시간을 버는, 즉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빨라진 삶의 속도와 크고 무한히 성장하는 경제를 선()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선 '느림'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속도의 경쟁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합니다. 규모의 경쟁 속에서

사람은 남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거나 자신들을 위한 시간이

적어진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면서, 이 삶-이 자본주의 하의 삶-에 뭔가 빠진 게 있다고

중얼거려보는 것의 실체입니다. 100세대 남짓한 라다크의 사람들은 우리의 중얼

거림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축지법과 다름없는 거리절약기계(차,비행기..)

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외치고 있으니 그것은 라다크인

들에게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선진국의 근로제도라 해도 주5일제 근무가 현재

까지 나온 고용조건 중 그나마 진보된 것이라 얘기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래봐야

1년에 9개월은 일하고 3개월을 쉬는 것입니다. 라다크 사람들의 근로조건은

그 반대입니다. 그들의 속담에도 있듯이 땅이 녹색일 때 쉬지않고 일하는 라다크

사람들의 '업무'시간은 3~4개월입니다. 나머지 8~9개월은 축제와 잔치를 벌이는

휴식과 충전의 시간입니다. 일은 모두 협업입니다. 가축을 최대한 이용하고

자연의 속도에 삶의 속도를 맞춥니다. 이들의 삶의 속도는 느슨하고 평안합니다.  

규모가 100여 세대 밖에 안되는 것은 전통적인 라다크의 일처다부제와 티벳승원

제도에 기인한 것입니다. 남여 비율이 반반인 라다크에서 일처다부제는, 결혼

하지 않는 여자 혹은 남자가 비구니 혹은 비구로 가는 경우의 수가 적지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티벳승원이 계속 유지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작은 세계-장소에서는 전체 상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전체 상의 이해란 것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지리적 특징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경제와 정치생활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 지, 그래서 그 시스템 속에서 나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

인지에 대해서 더 잘 알 수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해도

결국 잘게 잘게 쪼개어 최소화된 단위인 '팀'이라는 소수의 무리들로 분화되는

이유도, 그 작은 시스템 안에서라야만 자기 몫과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몫과 역할을 깨달을 때 자기 삶을 보다 능동적

으로 컨트롤하기 시작합니다. 능동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라다크

에서는 일곱살 난 아이도 자기 몫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의 일을 결정

합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또한 여성의 권한을 강화합니다. 작은 규모의 경제인 라다크

는 자급자족 경제이기 때문에 농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일은 마치 우리의

두레나 품앗이처럼 협동작업이고 그래서 서로서로가 갈등없이 잘 지내는 것이

'먹고 살기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중차대한 일입니다. 가족, 마을 공동체와 잘

지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라다크의 남자들은 가부장적 가장이 없습

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도시처럼 분화된 직종과 정치/경제의 공식적 활동

무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대소사는 비공식적 루트에 의해 이루어지며,

살림이나 아이를 키우는 지식, 땅과 가축들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여성들이

'main'입니다. 역사적 흐름에서 현대 도시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진 것은(그렇게

보이는 것은), 살림이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직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남성이 'main'이 되는 '공식적 부문'이 점차 확대되면서,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위축/축소되었습니다. '노인'이란 용어는 공식적 부문에서

밀려난 남자를 말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할머니에게 홀대받는 할아버지가

많아지는 것은, 노인들이 비공식적 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main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남성들 만의 독점적 사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다크에서는 남녀가 서로 조화롭게, 오히려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회-그 곳에서 남성은 불행할까요?

흰 이빨을 반짝이며 구김살이라곤 없이 소년처럼 웃는 라다크 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이 우문(愚問)을 무색하게 합니다. 

- 국민총생산 = 국민총행복 ? 

GNP(국민총생산)를 흔히 국부와 사회복지의 척도로 보는 게 경제학의 기본적

관점이지만, 이 관점으로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달아보긴 역부족입니다.

GNP라는 것은 돈이 사람 손을 건너갈 때마다 커지는 것이고, 그 커진 만큼

더 부유해졌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지구오존층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벌목행위도 국부를 키우는 행위

이고, TV나 귀중품을 훔치는 절도행위도 새로운 TV와 귀중품의 수요를 만든다

는 점에서 또 국부를 키우는 일이며, 물이 오염되어 생수를 사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도 역시 돈이 오가기 때문에 국부가 커지는 일이 되며, 심지어

경쟁만 있는 현대사회에서 얻는 정서불안과 스트레스도 그것을 치료하는 행위

자체가 돈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또 국부를 키운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GNP를 올립니다. 따라서 국민총생산은 곧 국민총행복과 등가물

이 될 수가 없습니다.

GNP가 미국 슬럼가 빈민층의 수준 이하임에도, 느끼는 삶의 충만감과 만족도는

-GNP로 따진다면-족히 3만불 이상일 라다크의 사람들에게, 삶의 행복이라는 근본적

인 감정이 메트로폴리탄의 사람들에게 결여되어있다는 것은 불가해한 일입니다. 

 

-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체링 돌마> 

 

서구사회에서는 나이가 차면 독립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소위 진정한 어른이

되는- 필수적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호지도 라다크

에 오기 전 이러한 서구적 가족관에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을 넘게

생활하고 관찰한 결과 그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가족과 친밀한 작은 공동체야 말로 성숙하고 균형 잡힌 개인을 만들어내는
보다 나은 기초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
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다" 

고립된 섬과 같은 도시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주변사람들과 끊임없는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체화되어있는

이 라다크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

의 아래와 같은 해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 

오늘 우리의 웰빙 바람,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 여성주권의 회복, 지속가능한

개발 등.. 마치 과거에는 없었던 가치인마냥 새로 산 운동화처럼 반짝반짝한

많은 현대의 트랜드들은, 이미 라다크에서는 '오래된 것'들에 불과하며

자연질서와 우리/우리 서로 간/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에 절대로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었음을 깨달아 주길-그것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얘기하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의 요청입니다.

그 요청에 기꺼이 그러나 거짓없이 응할 수 있게 되길.-라다크의 미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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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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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픕니다. 이 책은.

별 생각없이 편안하게 집어들었다가 흠칫 놀라 바로 앉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이 아픔은, 시사와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함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이것이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이다라고 알고있던 사실과 지식이 한쪽 눈은 가린 편협한 시민계급의 이익에

기반한 것이다라는 자각에서 비롯됩니다('계급'이란 개념은 자본론의 기본용어인데 이것이

이렇게 낯설다는 것 자체가 계급구조에 함몰되어있다는 증거일까요). 그래서 그냥 아픈 게

아니라(한번 아프고 마는 '양심 주사'가 아니라), 이 책 이후에 앞으로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를 스스로 되물을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가치관의 재수립을 요구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일개 평범한 한 사람이 몇십년간 다져 온 자기 발 아래 땅이 사실은 비만 와도

푹 꺼지는 연약지반임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지금 현재의 노무현 정부를 만든 것은 흔히 시민의 힘, 시민 혁명의 힘, 개혁의 힘이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이 시민의 행동으로 나타나면 종종 촛불집회의 형식을 빌고,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중생 사건 추모 집회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반대시위,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까지 시민의식, 시민행동이 사회 변화에

추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어깨을 섞으며 광장으로 몰려나왔던 시민들은-이 '계급'은, 동참하지 않는 자들의 자의식

박약을 비난하기도 했고 행동하지 않는 지성들의 무용성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그들의(혹은 저의) 행동은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이슈/사건일

때만 요란했습니다. 예컨대 미선이와 효순이의 참혹한 주검이 인터넷에 '떴을' 때-핫이슈가

되었을 때 그러했고, 2004년 말 밀양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이슈화되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 희생자들은 물론 위로받아 마땅한 우리의 혈육들이지만 언론의 초점과

사회적 이슈는 이렇듯 화제가 될 만한 사건/사고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졌고 네티즌과 시민

들은 이렇듯 자극적이고 쉽게 분노할 수 있는 이슈에만 집중했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을 규탄한 바로 그 광장,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다 농업을 살려

내라 외치다 경찰의 방패에 찍혀 나간 노동자/하층계급의 상시적 투쟁(생계형)을 우리

(시민계급)는 우리의 문제로 '문제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시민계급)

몫이 아닌 것으로, 즉 울타리 밖의 일로 묻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규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존중한다. 그러나 광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가 분노가 적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사양한다. 분노가 적어서가 아니라 분노가

넘쳐서 광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촛불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광장에서 1년 내내 방패에 목이 찍혀 넘어가고 군화에 배를

차여 피를 싸대고 몸이 얼어붙는 날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적다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계급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만으로도 김규항의 이 책은 충분히 의미심장

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픔을 어디까지 체화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시이자 열매입니다.

My blog=http://blog.naver.com/well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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