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 의해 지난 3월 14일 납치되었던 KBS 용태영 기자

님이 납치 하루 만인 3월 15일 풀려났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여 자식

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셨을 용기자님의 부모님들이 이제 제대로 숨을 쉬시겠군요.

(용기자님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납치사실을 알린 외신보도에 대해, 취재해야 할

사람이 되려 취재를 당했다고 송구스럽다고 하며, 풀려나자마자 바로 두바이로 향했

다는 군요.. 일생의 큰 사건이었을 텐데, 조금 쉬셔도 될 것을..).


이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외국인 납치 사건은 이미 잘 보도되었듯, 팔레스타인

관할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

가 석방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스라엘 정부군이 헬기와 탱크, 불도저를 동원해

기습한 사건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무력시위에 대항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외국인을 미끼로 전 세계에 이스라엘 공격의 부당성을 알리려 했던 것

인데,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경비원 2명이 죽고 2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지난 반세기 이상을 도저히 화해될 수 없는 극단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대치하고 있

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분쟁의 씨앗이 기원전 13세기 모세의 출애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시대의 지난한 문제 앞에, 해당 당사자도 아닌 동양의 한 인간으

로서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그 분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 아랍인들

에게 품는 연대감이 ‘남의 나라 일’을 남의 일로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조 사코Joe sacco’라는 미국인 만화가가 그린 [팔레스타인]은 바로 그런 팔레스타인

과 이스라엘의 종교/정치적 갈등 속에서, 여전히 빈곤하고 위태한 삶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는 현재 진행형의 팔레스타인 주민-그 평범한 사람 하나하나의 일상을 매우

적나라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만화책입니다.


처음에 이 만화책을 알게 되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조 사코가 실제 이 만화책을

그리게 된 것이 걸프전이 발발했던 즈음의 1991년 말, 두 달 간의 팔레스타인 경험

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사실 책 내용의 신뢰도에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고작 두 달을

살아보고’.. 라는 경험치에 대한 선입견 이었을 것인데, 책을 다 읽고는 그 두 달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두 달은 아마 최초의 팔레스타인 민중의 인티파

다(Intifada:민중봉기)가 일어났던 1987년 이후 현재까지 20여년간 이스라엘 정착촌

유대인과 군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했던 그 모든 억압이 그대로 농축되어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추측컨대, 일제 치하 식민속국이었던 우리나라의 과거 어두웠던 암흑기도, 이들 팔레

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의

인티파다 이후 오슬로 자치안이라는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1994년까지, 8여년에 걸쳐

약 1400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해되었고, 그 중 어린아이가 400여명에 달합

니다. 1년에 170여명. 이틀에 한 명 꼴로 이스라엘 정착촌 유대인 혹은 군인들에게

속절없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강제 철거명령서를 앞세워 탱크로 집을 밀어버리는

군인들에게 욕을 했다든지, 하는 정도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총탄 세례를 받은 12

살짜리 어린애가 있는 바에야, 그 어디에서 그 무자비한 살육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

을까요. 가나안의 땅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명분은 ‘신의 약속’이라 하는 데, 그 지독

한 성스러움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역사적인 이/팔 분쟁의 원인과 동기 등을 굳이 분석하지 않더라도, 설령 그 어떤 성

스러운 동기가 있었다 할지라도(그런 것은 단연코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극렬 시오니즘의 주창자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

인 사람들에게 가했던, 그리고 지금도 가하고 있는 그 모든 억압과 통제, 폭력은 결

코 정당화될 수 없다. - 이것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당연하나 아주 손쉽게 잊혀

지는, 교훈입니다. 사회계급의 문제에서도 그렇듯, 국가간 힘의 계급 문제에서도 역시

아래에 처한 자의 자리에서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 보다 진실을 잘 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고, 이 책은 그런 세상 보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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