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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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픕니다. 이 책은.

별 생각없이 편안하게 집어들었다가 흠칫 놀라 바로 앉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이 아픔은, 시사와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함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이것이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이다라고 알고있던 사실과 지식이 한쪽 눈은 가린 편협한 시민계급의 이익에

기반한 것이다라는 자각에서 비롯됩니다('계급'이란 개념은 자본론의 기본용어인데 이것이

이렇게 낯설다는 것 자체가 계급구조에 함몰되어있다는 증거일까요). 그래서 그냥 아픈 게

아니라(한번 아프고 마는 '양심 주사'가 아니라), 이 책 이후에 앞으로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를 스스로 되물을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가치관의 재수립을 요구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일개 평범한 한 사람이 몇십년간 다져 온 자기 발 아래 땅이 사실은 비만 와도

푹 꺼지는 연약지반임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지금 현재의 노무현 정부를 만든 것은 흔히 시민의 힘, 시민 혁명의 힘, 개혁의 힘이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이 시민의 행동으로 나타나면 종종 촛불집회의 형식을 빌고,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여중생 사건 추모 집회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반대시위,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까지 시민의식, 시민행동이 사회 변화에

추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어깨을 섞으며 광장으로 몰려나왔던 시민들은-이 '계급'은, 동참하지 않는 자들의 자의식

박약을 비난하기도 했고 행동하지 않는 지성들의 무용성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그들의(혹은 저의) 행동은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이슈/사건일

때만 요란했습니다. 예컨대 미선이와 효순이의 참혹한 주검이 인터넷에 '떴을' 때-핫이슈가

되었을 때 그러했고, 2004년 말 밀양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이슈화되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 희생자들은 물론 위로받아 마땅한 우리의 혈육들이지만 언론의 초점과

사회적 이슈는 이렇듯 화제가 될 만한 사건/사고에만 포커스가 맞추어졌고 네티즌과 시민

들은 이렇듯 자극적이고 쉽게 분노할 수 있는 이슈에만 집중했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을 규탄한 바로 그 광장,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다 농업을 살려

내라 외치다 경찰의 방패에 찍혀 나간 노동자/하층계급의 상시적 투쟁(생계형)을 우리

(시민계급)는 우리의 문제로 '문제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시민계급)

몫이 아닌 것으로, 즉 울타리 밖의 일로 묻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규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존중한다. 그러나 광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가 분노가 적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사양한다. 분노가 적어서가 아니라 분노가

넘쳐서 광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촛불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광장에서 1년 내내 방패에 목이 찍혀 넘어가고 군화에 배를

차여 피를 싸대고 몸이 얼어붙는 날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적다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계급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만으로도 김규항의 이 책은 충분히 의미심장

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픔을 어디까지 체화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시이자 열매입니다.

My blog=http://blog.naver.com/well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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