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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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어떤 곳인가?' 질문하게 하는 책.

동네 이름이 들어간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망원동> (김민섭 저)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아무튼, 망원동>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추억하는 글이라면 <아무튼, 현수동>은 어른이 된 도시인의 관점으로 거주하길 바라는 동네의 모습에 대해 썼다.

'현수동'은 실재하지 않는 동네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꽤 여러번 등장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편인 '현수동 빵집 삼국지' 정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현수동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 '현수동'이 밑도 끝도 없이 공상만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 같은 곳은 아니다. 장강명 작가가 오래 거주한 광흥창, 현석동 일대를 토대로 구상된 곳이다.

실제로 작가가 조사한 동네의 역사, 인물 등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특히 밤섬에 대한 역사는 거의 평생을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한 번쯤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최근 몇 년 들어 나도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순전히 내 의지대로 거주할 곳을 정한 적이 없다. 그래서 여건이 주어진다면 어디에서 살지 가끔 파트너와 얘기하곤 한다.

이 때 나눈 조건의 많은 점이 장강명 작가의 생각과 겹쳐서 반가웠다. 특히 상권과 도서관, 걷기 좋은 길에 대한 내용에 공감한다. 여기에 굳이 나만의 조건을 더한다면 클래식 공연장과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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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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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라는 악기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100곡으로 소개하는 책.

저자인 수전 톰스는 영국의 피아니스트다. 유튜브에서 이 분을 찾아보니 꽤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서문에 나오듯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기간 동안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갇혀 있는 동안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디지털 피아노 가격이 상승했을 정도다. 이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집에 있는 동안 애들이 치다 방치해 둔 디지털 피아노를 30년 만에 다시 치게 되었다. 스스로의 어설픈 연주에 좌절하고 있지만 피아노 곡을 듣는 것은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피아노는 다른 클래식 악기들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다. 바흐의 말년에서야 피아노가 등장했지만 이 책은 바흐부터 시작한다. 그가 작곡한 건반악기 곡들의 영향력은 아직까지 절대적이라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첫곡으로 나온다.

이렇게 바흐부터 연대기 순으로 주요 피아노곡들이 소개되어 있다. 절대 빠질 수 없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 주요 클래식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도 많다. 이를테면 존 필드나 발라키레프, 야나체크, 그라나도스, 스크랴빈, 풀랑크 등과 같은 다소 생소한 곡들도 고르게 나와있다. 워낙 피아노 곡이 방대하기 때문에 저자도 어떤 곡을 넣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너무 유명한 곡들만 소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곡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이 중 생상스의 <피아노 3중주 2번>은 새로운 발견이다. 피아노 독주곡이나 협주곡이 아닌 실내악은 그 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다. 피아노의 역할이 현악기의 보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은 피아노와 현악기의 조합이 정말 좋았다. 이 책 덕분에 실내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모든 곡에 QR코드가 있어서 읽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작곡가 소개, 작곡 배경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실제 연주하면서 느꼈던 감상과 의견이 있어 더 특별하다.

요즘 시대 정신에 맞게 저자가 여성 작곡가들을 소개한 점이 눈에 띈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이 어떻게 남성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되고 폄하당했는지 알려준다. 처음 들어본 여성 작곡가 마리아 시마노프스카나 에이미 비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주디스 위어의 존재를 알게 해준 이 책이 고맙다.

현대 음악가들과 재즈도 나와 있어서 공부가 된다. 피아노는 과거의 악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덕분에 낯선 현대 음악 뿐만 아니라 클래식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재즈와 조금은 친숙해졌다.

저자가 직접 전망하는 피아노 곡의 미래에 대한 맺음글도 기억에 남는다. 피아노 곡이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계속 사랑받을 것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독자라면 이 책은 지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래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나 피아노 곡을 좀 알고 있다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 동안 피아노 곡과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해 산발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각 조각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 총정리된 것 같다.

곁에 두고 자주 펼쳐 볼 책이다. 물론 피아노 곡을 들으면서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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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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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정통 추리, 범죄,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영국 컴브리아 지역. 구글링을 해보니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고향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피터 래빗 관광 패키지 상품안내가 많더라.)

또 컴브리아는 '환상열석'이라는 돌로된 고대 유적이 많은 곳이다. 소설은 이곳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들은 컴브리아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남자 노인들로 모두 끔찍하게 거세되어 불탄 채로 환상열석 주위에서 발견된다.

영국 경찰 중범죄 수사국의 '틸리 브레드쇼'는 불탄 시체를 정밀 조사하던 과정에서 한 피해자의 가슴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한다. '워싱턴 포'. 불미스러운 일로 정직 중인 형사의 이름이었고 이 발견으로 인해 워싱턴 포는 복직하여 사건에 투입된다.

집요하고 냉정한 형사 워싱턴 포와 천재적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틸리 브레드쇼가 콤비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한다.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이 중 '틸리 브레드쇼'의 캐릭터가 새로웠다. 수학과 통계에 천재적이지만 눈치 없고 순진하며 직업 정신이 투철한 '여성'이라는 점이 돋보였다.

추리는 사건의 외곽에서 중심으로 서서히 파고드는 형식이다. 여러겹의 결이 차곡 차곡 쌓이는 것 처럼 단서가 하나씩 풀리고 종국에는 범인을 밝혀낸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 속 연쇄살인마의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 그리고 피해자 중 하나에 주인공의 이름을 새겼기 때문에 이 미스터리가 결말까지 긴장감을 준다. 범행의 동기는 조금씩 밝혀지는데 '대체 나는 왜 끌어들이는거지?' 이 질문이 주인공을 끝까지 파고들게 한다.

훌륭한 추리소설이 대개 그렇듯이 역시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범인이 밝혀지고 주인공은 살아나지만 끝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남겨 두는 영리함도 있다. 주인공이 안고 있던 트라우마도 일부 해소된다.(물론 충격적인 다른 사실도 알게 되지만) 한편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 때문에 진실이 묻히는 엔딩은 씁쓸했다.

<퍼핏 쇼>는 추리 소설의 전형적인 패턴과 클리셰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식상하다거나 거슬리지는 않는다. 익숙한 장치와 구성이지만 탄탄하게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의 장르적 특징을 완전히 꿰고 있고 잘 활용할 줄 아는 작가다.

이 작품 이후로 작가는 '워싱턴 포'와 '틸리 브레드쇼'의 캐릭터를 시리즈로 하여 벌써 5권까지 출판했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작가 M.W. 크레이븐의 이력을 보니 컴브리아 출신이고 보호감찰관, 군인 등으로 살다 전업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사에 디테일이 좋고 특히 사건의 공간이 되는 컴브리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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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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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바다로 변한 지구가 배경인 SF 소설이다.

총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록된 순서가 끝으로 갈수록 지구의 바다화, 인간의 해양 생물로의 진화가 더 가속화된 설정인 듯 하다.

이야기의 분위기가 심각하거나 어렵지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가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작품마다 상기 시킨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가 현재 진행형의 재앙이기 때문에 소설의 설정이 마냥 판타지라고 치부하게 되지는 않는다.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인데도 각 스토리마다 무자비한 인간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반면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선한 마음과 연대라는 것도 알게 해준다. 그래서 읽고 난 뒤 기분이 나아지는 그런 책이다.

'김청귤'이라는 잊지 못할 이름의 작가님의 등장이 반갑다. 수록된 단편 중 하나를 장편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파라다이스'를 장편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표제작인 '해저도시 타코야키'도 신선했다. 하고 많은 음식 중 왜 하필 '타코야키'일까 궁금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표지의 일러스트가 무척 돋보인다. '일러스트 최지수'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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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펑크 2077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김현재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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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한 9개의 브릿G 단편 모음집이다.

표제작인 '성리학 펑크 2077'이 단연 돋보였다. 조선이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성리학이 여전히 기본 이념인 2077년이 배경이다. 일제 식민 역사나 서구 문화의 헤게모니 장악도 없는 사회. 그렇기 때문에 언어나 복식, 사상 등이 조선 시대에 뿌리를 두고 계속된다는 세계관이 재미있고 신선했다.

예를 들어 경찰은 '포졸'이고 커피는 '가배'이며, 자동차는 '자동가마'로 불린다. 게다가 관상학이 나라의 중요한 학문이라니.

전체적인 스토리는 '포도대장' 강문수가 사이보그인 사필귀정이 벌이는 인질극을 해결하는 것이다. 근데 이 사이보그가 협박하는 내용에서 그야말로 뿜었다. 스포가 될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정말 기발하고 웃긴 장면이었다.

그 밖에 '상자의 주인', '살아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전 세계 지성인이 함께 보는 계간 역술', '잘 부탁드립니다', '협탐 - 고양이는 없다' 등 수록된 작품들이 재미있었다. 순문학이나 웹소설과는 또 다른 상상력과 유머가 있다.

작가들의 프로필을 보니 본업은 따로 있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새롭고 자유로웠다. 그러면서도 단편이라는 형식이 주는 임팩트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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