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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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발표된 북유럽 범죄소설의 시조라는 작품.

솔직히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스웨덴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수십년 간 전세계에서 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로재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스웨덴의 관광지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배경은 1960년대,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부터 어려운 시절이다. 스톡홀름의 마르틴 베크 형사는 현지 형사들과 공조하여 이를 추적하는데 '로재나'라는 미국 여성으로 밝혀진다.

소설은 누가, 왜, 어떻게 이 외국인 여성을 살해했는지 밝히는데 이 과정이 그저 순차적으로 보여질 뿐이다. 마르틴 베크라는 인물이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이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저 동료들과 협력하여 성실하게 수사할 뿐. 셜록 홈즈 같은 천재적 두뇌나 걸출한 능력은 딱히 안보이는 매우 사실적인 캐릭터라 인상적이었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반전이나 트릭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적인 질감의 묘사와 톤, 그리고 간결한 문체가 가독성이 높다. 잘 알지 못하는 1960년대 스웨덴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저자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연인인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10년간 열 작품을 쓰고 히트시켰는지 궁금했는데 책 뒷부분에 그에 대한 내용이 잘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엄청난 자료조사를 거친 뒤 에피소드와 디테일을 모두 결정하고 집필에 들어갔다고. 이 과정만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정작 집필은 한 달에서 석 달이 걸렸다고 한다. 대단한 팀웍이다.

시리즈 중 <웃는 경찰>이 가장 압권이라고 평가받는다는데 앞으로 계속 달려 보겠다. <로재나>로 시작된 마르틴 베크의 캐릭터가 이후 시리즈를 통해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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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키의 액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4
로버트 맥키.바심 엘-와킬 지음, 방진이 옮김 / 민음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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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상업영화 작법의 충실한 가이드.

얼마 전 시나리오나 드라마 극본을 습작 중인 지망생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글이 올라왔다. 만약 단 한 권의 작법서만 남겨야 한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 역시 오랫동안 영화 마케팅, 기획과 관련된 일을 하고 또 최근 들어 드라마 대본을 습작 중인 지망생으로서 이에 동의한다.

로버트 맥키의 작법 시리즈는 솔직히 초심자가 읽기에 진입 장벽이 있다. 특히 가장 유명한 전체 시리즈의 첫번째인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는 두께와 글밥에 압도당한다. 등장하는 래퍼런스도 오래된 헐리우드 클래식 영화들이라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진입 장벽을 넘어서는 순간 로버트 맥키를 집필의 구원자로 여길 것이다.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의 규칙을 이렇게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알려주는 글을 읽는 데 전율마저 느낄 정도였다.

이번 <로버트 맥키의 액션>은 액션 영화에 특화된 작법을 추려 놓았다. 2022년에 출간된 책이라 등장하는 참고 영화들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 최근작들이 많다. 또 이해를 돕기 위한 도록들이 수록되어 있고 편집도 가독성이 좋다.

이 책에서 다루는 '액션 영화'는 단순히 액션 씬이 위주가 되는 영화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책의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액션 장르는 인류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끝없이 치러 내야 하는 모든 투쟁에 관한 은유'로 정의한다.

그래서 목표와 능력, 그리고 결핍을 가진 주인공(영웅)이 목표의 방해자(악당)로부터 피해자를 구해야 하는 이야기. 이 구조를 가진 스토리를 '액션 장르'로 보았다.

책에 다양한 래퍼런스가 등장하지만 <해리포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등도 액션 장르로 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또 영웅과 악당을 어떤 특징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건을 설계해야 효과적인지 매우 자세하게 풀어 놓았다. (여기서 명작 <다이하드>를 사진 자료와 함께 분석했다.)

마지막 챕터인 '액션의 부속장르'에서는 4개의 액션 부속장르(재앙, 괴물, 종말, 미궁)와 여기서 파생된 하위 장르에 대해 설명했다. 웬만한 액션 장르의 스토리 구조를 모두 다루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작법과정에서 많이 참고될 것 같다. 보고 난 뒤에 어딘가 아쉽고 뒷맛이 찝찝한 액션장르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액션 장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를 넘어 수만 년 전 구전 운율 서사까지 거슬러 간다고 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나와있다.) 그 만큼 잘 팔리는 스토리라는 의미다. 액션 장르에 특화된 작법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액션 장르 아이템으로 습작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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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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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으로서 느끼고 사유한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에 대해 깊이있게 쓴 글.

프롤로그만 읽고도 놀랐다. 우선은 너무나 잘 쓴 글이라서. 저자 원도 작가님은 지금까지 에세이를 여러 권 냈다는데 나는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게다가 저자의 본업이 전업 작가가 아닌 경찰관이라니 더 놀라웠다. 이 책은 단순히 경찰의 시선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가 겪은 시간과 경험을 모두 녹여낸 글이다. 그래서 아주 특별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과학수사대에서 근무하며 마주한여러 죽음들에 대해 썼다. 투신자살, 고독사, 사후 부패된 변사자들 등 인터넷 기사에서 수없이 단신으로 등장하는 사건들. 이 책을 읽고서야 실제로 그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경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경찰이라는 직업의 업무와 책임 때문에 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 평균 34.8명이 자살하는 우리 나라에서 현장감식을 하는 경찰의 삶이란 고됨을 넘어 선 다른 차원의 고통이라는 것을 느꼈다.

책에 언급된 변사자들의 아픈 사연과 처참함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이 서로 엉킨 채 밀려 왔다 쓸려가는데 많은사람들은 이를 애써 덮어두고 모른 척 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또 이는 저자와 같은 경찰이라는 직업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과학수사관으로 겪은 변사자들 뿐만 아니라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경찰차를 주차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또 여성 경찰이 겪는 어려움이나 낮은 처우에 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경찰관이 아니었더라면 겪지 않았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이렇게 좋은 글로 나누어 주어서 감사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빨려들며 읽었다. 한 단어의 의미를 여러 뜻으로 해석하여 구성한 챕터도 좋았다.











- 경험상 달동네에서 접수된 변사 신고는 부패 변사일 가능성이 높다. (중략) 결국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부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 페이지)


- 물을 잔뜩 머금은 노인 변사자를 한강에서 인양한 뒤 검시하기 위해 안치실에서 짐을 풀어헤치다가 옷속 주머니란 주머니에 커다란 돌들이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토록 행동하게 만든 삶의 가혹함이여. (42 페이지)


- 코로나19 시국을 거치면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마스크를 쓴 채 투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상상해보면, 마지막 비상을 앞둔 상태에서는 모든 걸 벗어던지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 (80 페이지)

- 당직 근무 때마다 누군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영향을끼친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환경이 때론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누군가‘가 되었을 뿐. (85 페이지)

- 경찰관은 주류 사회에서 섞일 수 없는 기름띠 같은 존재인가.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찰을 지탄하는 보도가 쏟아진다. 경찰관을 신뢰하지도 않고 신뢰할 수도 없는 사회. (중략) 대한민국에서 경찰관에게 허용된 자리는 몇 평일까. 주차장 한 칸도 허용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참 많이 외롭다. 무지 외롭다.(120 페이지)

-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쓸쓸한 죽음을 간과하는 것뿐이다. 그 덕에 여태껏 산다. 비참하고도 불쾌하게, 여전히 산다.(1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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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창창 - 2024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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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스타 드라마 작가인 엄마 대신 대본을 써야하는 딸의 이야기.

초반부터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다. 일단 설정이 재미있었다. 수억대 집필료를 받는 스타 작가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다. 늘 엄마의 유명세에 눌려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던 '용호'는 엄마의 담당피디의 간곡한 부탁으로 대신 대본을 쓰게 된다. 이미 편성이 되어있고 위약금을 물어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한 때 사귀던 친구 장현을 끌어들인다.

겨우 대본을 써내서 보내는 용호와 장현. 어라, 그런데 제작사와 플랫폼의 반응이 너무 좋다. 그 다음 대본도, 그 다음도 계속 한큐에 오케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현의 고백. '사실 일부러 말이 안되게 써서 보낸 부분이 있는데도 대본이 통과됐다'고. 무언가 수상하다. 그리고 사라진 엄마는 어디로 간걸까?

문장이 착착 감기고 말맛이 뛰어나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주인공 용호가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광혜암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신선했다. 광혜암의 여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이유가 나오는데 그게 웃기면서도 먹먹하다. 따지고 보면 무척 아픈 이야기인데 새롭게 풀려고 하는 지점이 돋보였다.

흡인력 있는 초반에 비해 결말은 다소 감상적이고 똑 떨어지는 느낌이 살짝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재기발랄하고 펄떡이는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여성들의 연대가 주는 훈훈함도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작가 후기 마저도 재미있었다. 심지어 내용 중에 작가가 플롯을 하나도 정하지 않고 쓴다는 부분이 있다. 이게 가능하구나. 설재인 작가는 타고난 스토리텔러구나 싶었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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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지음, 이도우 옮김 / 수박설탕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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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의 감성을 키워 준 엘리너 파전의 동화집을 다시 만났다.

어릴 때 나는 주로 언니들이 읽던 동화 전집을 물려받아 읽곤 했다. 그 중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는 특히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로 구성된 꽤 근사한 전집이었다. 이 시리즈는 원작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실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집 수십 권의 책 중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제목의 동화집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엘리너 파전의 동화집이었다. 수록된 이야기 중 '작은 재봉사'를 특히 좋아했다.

내가 이런 추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 언니가 이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은 새롭게 출간된 엘리너 파전의 동화들을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된 것이다. 어릴 때 보던 책의 일러스트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 멋진 삽화들이 많다.

최애인 '작은 재봉사'도 있었다. 신붓감을 구하는 왕자님이 무도회를 여는데 그곳에 초대된 귀족 아가씨들의 드레스를 만드는 재봉사의 이야기다.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그것을 살짝 비트는 결말이 지금 다시 읽어도 참 좋았다.

번역자 이도우 작가의 역자후기가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은 엘리너 파전의 책이 국내에서 절판된 것을 알고 독립출판사를 세우자마자 판권을 알아보고 2년 간 번역했다고 한다. 이 분의 대단한 열정이 나 같은 독자의 추억까지 소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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