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스타 드라마 작가인 엄마 대신 대본을 써야하는 딸의 이야기.초반부터 몰입감이 대단한 소설이다. 일단 설정이 재미있었다. 수억대 집필료를 받는 스타 작가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다. 늘 엄마의 유명세에 눌려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던 '용호'는 엄마의 담당피디의 간곡한 부탁으로 대신 대본을 쓰게 된다. 이미 편성이 되어있고 위약금을 물어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한 때 사귀던 친구 장현을 끌어들인다.겨우 대본을 써내서 보내는 용호와 장현. 어라, 그런데 제작사와 플랫폼의 반응이 너무 좋다. 그 다음 대본도, 그 다음도 계속 한큐에 오케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현의 고백. '사실 일부러 말이 안되게 써서 보낸 부분이 있는데도 대본이 통과됐다'고. 무언가 수상하다. 그리고 사라진 엄마는 어디로 간걸까?문장이 착착 감기고 말맛이 뛰어나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주인공 용호가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광혜암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신선했다. 광혜암의 여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이유가 나오는데 그게 웃기면서도 먹먹하다. 따지고 보면 무척 아픈 이야기인데 새롭게 풀려고 하는 지점이 돋보였다.흡인력 있는 초반에 비해 결말은 다소 감상적이고 똑 떨어지는 느낌이 살짝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재기발랄하고 펄떡이는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여성들의 연대가 주는 훈훈함도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작가 후기 마저도 재미있었다. 심지어 내용 중에 작가가 플롯을 하나도 정하지 않고 쓴다는 부분이 있다. 이게 가능하구나. 설재인 작가는 타고난 스토리텔러구나 싶었다.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