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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평점 :
경찰관으로서 느끼고 사유한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에 대해 깊이있게 쓴 글.
프롤로그만 읽고도 놀랐다. 우선은 너무나 잘 쓴 글이라서. 저자 원도 작가님은 지금까지 에세이를 여러 권 냈다는데 나는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게다가 저자의 본업이 전업 작가가 아닌 경찰관이라니 더 놀라웠다. 이 책은 단순히 경찰의 시선으로 쓴 글이 아니다. 그가 겪은 시간과 경험을 모두 녹여낸 글이다. 그래서 아주 특별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과학수사대에서 근무하며 마주한여러 죽음들에 대해 썼다. 투신자살, 고독사, 사후 부패된 변사자들 등 인터넷 기사에서 수없이 단신으로 등장하는 사건들. 이 책을 읽고서야 실제로 그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경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경찰이라는 직업의 업무와 책임 때문에 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 평균 34.8명이 자살하는 우리 나라에서 현장감식을 하는 경찰의 삶이란 고됨을 넘어 선 다른 차원의 고통이라는 것을 느꼈다.
책에 언급된 변사자들의 아픈 사연과 처참함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이 서로 엉킨 채 밀려 왔다 쓸려가는데 많은사람들은 이를 애써 덮어두고 모른 척 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또 이는 저자와 같은 경찰이라는 직업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과학수사관으로 겪은 변사자들 뿐만 아니라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경찰차를 주차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또 여성 경찰이 겪는 어려움이나 낮은 처우에 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경찰관이 아니었더라면 겪지 않았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이렇게 좋은 글로 나누어 주어서 감사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빨려들며 읽었다. 한 단어의 의미를 여러 뜻으로 해석하여 구성한 챕터도 좋았다.

- 경험상 달동네에서 접수된 변사 신고는 부패 변사일 가능성이 높다. (중략) 결국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부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 페이지)
- 물을 잔뜩 머금은 노인 변사자를 한강에서 인양한 뒤 검시하기 위해 안치실에서 짐을 풀어헤치다가 옷속 주머니란 주머니에 커다란 돌들이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토록 행동하게 만든 삶의 가혹함이여. (42 페이지)
- 코로나19 시국을 거치면서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마스크를 쓴 채 투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상상해보면, 마지막 비상을 앞둔 상태에서는 모든 걸 벗어던지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 (80 페이지)
- 당직 근무 때마다 누군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영향을끼친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환경이 때론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누군가‘가 되었을 뿐. (85 페이지)
- 경찰관은 주류 사회에서 섞일 수 없는 기름띠 같은 존재인가.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찰을 지탄하는 보도가 쏟아진다. 경찰관을 신뢰하지도 않고 신뢰할 수도 없는 사회. (중략) 대한민국에서 경찰관에게 허용된 자리는 몇 평일까. 주차장 한 칸도 허용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참 많이 외롭다. 무지 외롭다.(120 페이지)
-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쓸쓸한 죽음을 간과하는 것뿐이다. 그 덕에 여태껏 산다. 비참하고도 불쾌하게, 여전히 산다.(1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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