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아생트의 정원>은 프랑스 소설가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앞의 두 작품 <반바지 당나귀>와 <이아생트>에 대한 정보 없이 읽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잘은 모르지만 표지의 원제인 'Le jardin d'Hyacinthe'를 보니 '이아생트'가 '히야신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서사가 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러 챕터로 구분된 이야기 사이에서 큰 연결점이 보이지도 않는다. 초반부터 대체 '이아생트'는 언제 나오는지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다.

굳이 큰 줄기의 서사를 정리해 보면 '보리솔'이라는 마을에 사는 게르통 부부는 버려진 소녀를 맡아 키우게 된다. 그러면서 소설의 화자인 '메장'의 시선을 통해 소녀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여진다. (결국 이 소녀의 진짜 이름이 '이아생트'였다.)

대신 눈에 띈 것은 자연에 대산 작가의 묘사다. 저자인 앙리 보스코가 '위대한 몽상가'라는 타이틀이 있었는데 이런 능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정말이지, 평생 리귀제의 하늘이 그토록 맑은 걸 본 적이 없었다. 대지 아주 가까이 드리워져 손을 들어 올리면 손가락 사이에서 공기가 빠드득하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라일락빛 부드러운하늘이었다. 상쾌한 공기의 생기발랄한 빛으로만 어우러진 하늘이 벨벳처럼 감싸는 듯 뺨에 쾌적하게 느껴진 덕분에 기꺼운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61 페이지)

이런 문장들이 주는 편암함이 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저자의 관찰과 세계관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농촌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생함도 있었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곳곳에 많은 상징과 은유가 담겨 있는 것을 알았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로서는 쉽지 않은 독서였다.

프로방스의 풍경과 몽환적인 묘사가 담긴 문장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끌렸다. 괴담과 여성을 연관지었다고 생각하니 더 궁금했다. '괴력난신'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뜻과 유래는 몰랐지만 기이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들게 했다.

중국어 번역가이자 중국 문화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띄었는데 '어!' 싶은 부분이 있었다. 김이삭 작가는 에세이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를 쓴 사람이었다. 얼마 전 서점에서 눈에 띄어 훑어 본 책이었다. 탈북민과 결혼해 겪은 일들을 담은 에세이었는데 같은 작가라니. (곧 이 에세이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성주신, 학교 괴담, 늑대인간, 변강쇠전, 천주교 박해 등 우리의 역사와 고전문화에서 사용한 소재들이 인상적이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 중 <낭인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편만 얻었다하면 급사하는 청상 팔자인 옹녀가 늑대인간 '변강쇠'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다. 늑대인간과 변강쇠전을 결합시키다니 너무 신박하지 않은가.

그 밖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야자 중 XX 금지>도 좋았다. 오래된 건물을 사용하는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내용이다. 실제로 내가 다니던 여고의 운동장 한켠에 일제시대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있었다. 그 비석은 과거에 그 위치가 신사참배 장소임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가끔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으스스한 상상도 했던 것 같다.

전래 괴담이나 풍속 등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알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식민지 인도차이나의 소외된 세 인물들을 그린 소설.

제목 '부영사'의 뜻이 궁금했는데 '총영사' 다음의 직위인 '副영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크게 세 인물이 나온다. 임신한 캄보디아 소녀, '안 마리 스트레터'라는 프랑스 대사의 아내, 그리고 제목이기도 한 부영사다. 이들은 서로 사건이나 관계로 엮여있지는 않다. 오히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따로 보여진다.

처음에는 이 인물들과 첫문장에 나오는 '피터 모건' 등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만나고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를 찾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설은 서사가 도드라지는 작품이 아니다.

소설에서 스토리를 쫓는 경향이 강한 나 같은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난해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많아 독특했다.

안 마리 스트레터가 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라든가 '인디안 송' 등과 같이 청각적인 것이 묘사되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또 식민지라는 배경이 주는 특유의 이질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마그리트 뒤라스의 다른 작품은 읽은 적이 없고 영화 <연인>만 알고 있다. 그래도 작가의 독보적인 생애가 작품의 주된 세계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민치하의 인도차이나에서 가난한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성인이 될때까지 그곳에서 자란 작가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부영사>를 포함하여 최근들어 읽은 번역 소설에서 ' - 한다'와 같이 현재형의 문장을 많이 발견했다. 원문이 현재형이라 그렇게 번역한 것이겠지만 우리말로 쓰여진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문장이라 읽을 때마다 어색하다. 실제 서양어에서는 이렇게 현재형으로 문장을 쓰는 것이 흔한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먹고 마시고 요리하라 - 음식으로 배우는 통합 사회 나의 한 글자 3
강재호 지음, 이혜원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음식 이야기로 배우는 지리, 역사와 문화.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책보다 더 접근이 쉽고 빠른 정보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기획력과 재미있는 내용이 갖춰진 시리즈가 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먹고 마시고 요리하라>는 '나의 한 글자' 시리즈 중 세번째 '밥'편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꿈', '성', '쉼', '맘', '벗'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관련된 지식을 알기 쉽게 엮은 시리즈다.

이 책의 저자는 현직 교사로 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 맛집 탐방과 요리를 좋아한다고 쓰여있는데 이런 애정이 책의 곳곳에 드러나 있다.

총 11개 나라의 음식에 대한 역사나 지리, 문화 등이 소개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들도 있었지만 처음 알게된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게 된 이유 같은 것이다. 와인 생산지인 포도밭에서 포도의 성장을 방해하는 달팽이를 퇴치하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고.

또 튀르키에에서 케밥이 발달한 이유가 건조한 기후와 관계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고기를 통으로 굽지 않고 얇게 저며서 꼬챙이에 꽂아서 굽는 이유가 기후와 연관되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정보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각 나라별로 특정 음식이 발달한 이유를 지리적,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 잘 기술한 책이다.

교과 공부를 위해 읽는 딱딱한 학습서라기 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인문학적 지식을 얻을수 있어서 좋았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자료도 많고 일러스트도 풍부하다. 심지어 간단한 요리법도 있다.

여러모로 편집에 신경 쓴 책이라고 느꼈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 성인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시리즈의 다른 책도 찾아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붐뱁, 잉글리시, 트랩 네오픽션 ON시리즈 25
김준녕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다. 김준녕 작가의 전작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등과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다. 마치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작가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는 것을 확인했다.

영화로 치자면(실제로 소설에서도 영화를 예로 든 설명이 왕왕 나온다.) 장르 상업 영화를 잘 만든 감독이 차기작으로 발칙한 독립 예술 영화를 만든 느낌이다. 새로웠지만 다소 낯설기도 했다.

사회에서 도태된 남자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라이언'과 '준', '보타'가 주요 캐릭터다. 이들은 P시에 있는 영어 마을에 입소하여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한때는 번성했으나 이제는 망해가는 영어 마을.이곳에서 온전한 문장(full sentence)의 영어를 구사해야만 살아갈 수 있지만 이들은 안타깝게도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

'사회 부적응자들의 성장기' 혹은 '영어 마을 탈출기' 같은 단순한 내용 너머에 뭔가가 더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예상을 뛰어넘는다.

실제로 있는 파주 영어 마을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원어민이 아닌 러시아나 동유럽에서 온 외국인들이 어설픈 영어를 하는 풍경부터 기묘하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영어 마을'은 얼마나 기묘한 목적을 갖고 세워진 곳인가. 대체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뭐길래 오로지 영어만을 써야하는 가짜 사회를 만들었을까. 한때 이곳이 학생들의 필수 체험활동 코스였다는 것이 새삼 코미디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 여기서 영화 포스터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얼핏보면 외국 로케이션 같으니) 작가가 어떻게 영어마을을 소재로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영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잣대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 군상들의 다채로운 해프닝으로 읽혔다.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흥미로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