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태도에 대하여."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멜라닌>은 차별과 혐오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주된 내용인데 현실에서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판타지를 더했다. 바로 파란 피부색이다.주인공 재일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파란색 피부로 태어났다. 파란색 피부는 소수지만 전세계적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낯선 인종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고 재일도 마찬가지였다.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아버지는 가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 이민을 결정한다. 먼저 재일과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엄마와 동생은 병중인 외할머니 때문에 베트남에 들렀다 입국하기로 한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연락을 끊은 채 미국으로 오지 않았다.아버지와 단둘이 미국에서 살게 된 재일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겪게된다. 실존했던 역사적 타임라인에 새로운 판타지를 더한 독특한 설정이다. 소설 속에서 박근혜는 탄핵되고 트럼프는 당선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도 이어진다. 미국에서 흑백 인종 차별과 아시안 차별은 이미 만연하다. 거기에 더불어 파란 피부색을 가진 소수의 존재들에 대한 새로운 차별이 생겨난다. 파란 피부는 혐오의 새로운 목표물이 된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의 차별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지점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그렇다고 이 소설이 딱딱하고 비판적인 것만은 아니다. 십대 주인공의 눈과 심리로 묘사되는 내용들에 따뜻함이 있다. 비극적인 상황들을 통해 성장해가는 내용도 좋았다. 통쾌한 전복의 묘미보다는 은근한 펀치처럼 느껴지는 결말도 좋았다.#멜라닌 #하승민 #한겨레출판 #한겨레문학상 #장편소설 #소설 #한국소설 #문학
<상실과 발견>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뉴오커 지의 필진인 캐서린 슐츠의 에세이다. 출판사의 피드에 소개된 이 책의 문장에서 무언가가 관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책에서 '상실'이란 저자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고 '발견'은 배우자인 C를 만난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주는 절망과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 경이로움.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벤트 중 서로 극단일 수 있는 이 두 가지를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저자는 경험하게 된다. '상실'과 '발견'이라는 말을 단순히 '죽음'과 '연애(혹은 결혼)'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이 단어의 소소한 의미나 에피소드부터 시작하지만 그 깊은 의미까지 연결시키는 과정이 놀라웠다. 이를테면 '상실'은 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결국 죽음으로 인해 저자가 겪는 상실감까지 이야기하는 식이다. 문장이 모두 매혹적이다. (원문과 비교할 만큼의 깜냥은 없지만 저자의 원문을 잘 번역한 한유주 작가의 공도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이 책과 관련해서 '고독한 문장방'이라는 오픈채팅 톡방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발견' 챕터에서 다루는 배우자 C와 저자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이슈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 동성결혼 커플들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으로 시끄러운 우리 나라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미국 동부의 이런 쿨함도 신선했다.경험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을 이렇게 깊은 통찰로도 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인생에서의 '업 앤 다운 up and down'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한다.
한 의식의 소멸이란 숨이 턱 막히는 일이다. 거리를 두고 보면, 역사의 여명 이후로 이런 상실은 날이면 날마다 매시간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 한 우주가 순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건 충격적이다. 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는 전부를 잃었다. - P100
나는 C의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분명히 밝힐 수 있었던 적이 없다. 그녀의 너무 많은 부분을 너무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나와 많이 다른 부분들을 발견할 때마다 종종 감사함과 위안을 받을 정도로 감동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거짓된 위로도 편리한 과장도 아니다. - P188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롭다. 우리 감각의 척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엄청나게 작은 데 비해 이 세상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바뀔지도 모른다. 발견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유일한 차이는 우리가 별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를 느낀다는 점이다. - P233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 인생을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돌봄을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 P301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열정의 헌사.1,2권을 정말 재미있게 봐서 3권도 기대했다. 3권이 완결일 줄은 몰랐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평생 만화를 사랑해서 만화 편집자가 된 '시오지마'는 자신이 담당한 만화 잡지가 판매 저조로 폐간되자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화 잡지를 만들기 위해 만화가들을 섭외하는 이야기다. 출판 만화라는 사그라드는 산업에 대한 서글픈 감성과 디테일이 끝내준다. 만화 산업을 잘 몰라도 아날로그 시대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시오지마는 과연 일어설 수 있을까? 돈 안되고 경쟁력 떨어지는 만화 잡지를 만드는 것이 허황된 것은 아닐까? 자꾸만 생겨나는 이 물음들에 대해 이 작품은 우직하게 전진할 뿐이다. 후반에 컬러로 되어 있는 4페이지가 이 작품이 하고자하는 말을 잘 담고 있다. 이미 작고한 만화가 타치바나와 시오지마의 대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분 좋은 판타지이자 위로이며 <동경일일> 전권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고통... 그 여정 속에야말로 진실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210 페이지)내가 이 만화에 왜 이렇게 감정이입하고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나이 들어서다. (쿨럭) 그리고 한 때 시오지마처럼 모든 것을 바쳐 좋아하는 영화일을 했고 이 산업이 점점 쇠퇴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서 인듯하다. 세상은 점점 삘리 변해가는데 나는 나이들고 쇠락해간다. 무척 서글프지만 그래도 뭐든 해봐야지. 시오지마처럼.#동경일일3 #마츠모토타이요 #문학동네 #만화 #동경일일 #만화가 #일본만화 #만화책 #책추천 #서평 #독서
소문은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고 진심은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는가.꽤나 충격적이었던 결말로 기억하는 <죽이고 싶은 아이>의 뒷이야기를 담았다. 그 동안 읽은 이꽃님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극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타 청소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장르적 재미가 장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극적 재미를 기대했다.전편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범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미스터리처럼 밝혀내는 이야기로 초반부터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의외로 진범이 쉽게 밝혀져서 그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했다. 소설은 '서은'의 사망 사건 이후 '지주연'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편견과 소문을 그려내고 있다. 큰 틀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여러 명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근데 대부분이 너무도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채로 남을 쉽게 평가한다. 그 속에서 '지주연'은 또다른 피해자가 된다. '지주연'이 고통 속에서 결국 서은 엄마를 통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해 가는 스토리다. 아름답고 바람직하지만 솔직히 판타지 같은 결말 같기도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갈등이 이렇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전편의 결말에서 느꼈던 찝찝함이 해결된 것은 다행이다. 가독성이 좋고 각 인물들의 입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의미있다. 함부로 소문을 통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어쩌다 증오의 사회가 되었을까.누군가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어떤 변명도 들어 주지 않은 채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어둡고 불쾌한 구덩이를 점점 더 크게 만들어 누군가를 파묻고 나면, 그렇게 하면 안식이 찾아오는 걸까. (10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