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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평점 :
위대한 걸작을 만들었지만 괴물인 예술가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한 번 쯤은 생각해 봤을 딜레마다. 저자인 클레어 데더러는 미국의 영화 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기자, 도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이 딜레마의 시작은 '로만 폴란스키'였다.
영화 <차이나타운>, <피아니스트>, <악마의 씨(원제: 로즈마리의 아기)> 등의 감독인 그는 1977년 3월 10일, 열 세살 서맨사 게일리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했다. (폴란스키는 유럽으로 도주했고 그 뒤로 나이 90이 넘은 지금까지 미국으로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내용이 이 책의 프롤로그 첫 페이지에 나온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텍스트로 읽으니 정말 역겨웠다.하지만 폴란스키가 이런 괴물일지언정 그의 작품은 걸작이다.
폴란스키 뿐만 아니다. 의붓 입양딸 순이 프레빈과 불륜을 저지르고 결혼한 우디 앨런도 같은 딜레마를 던진다. 그가 남긴 수많은 영화들이 다 매도되야 할까? 과연 괴물인 예술가에게서 탄생한 걸작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저자는 이 질문이 주는 복잡하고 답답한 점들을 찬찬히 짚는다.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부터 시작해서 성차별, 폭력, 약물 중독, 반유대주의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 괴물들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이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인간 사회의 다양한 편견과 권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조앤 롤링의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 피카소의 여성 학대, 헤밍웨이의 폭력, 바그너의 친 나치이력, 나보코프의 소아성애 등 다양한 사례들이 나온다.
그 중 버지니아 울프가 유대인인 자신의 남편을 "나의 유대인"으로 불렀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쯤되니 과연 온전히 올바른 예술가가 몇이나 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울프가 바그너와 달리 반유대주의자로 기억되지 않는지 설명된다.
책은 딜레마에 대한 정답을 내려주거나 괴물들을 옹호, 또는 매도하는 식의 치우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관점에서 예술가의 생애와 그 작품들을 바라보고 이 딜레마를 대할 것인지 풀어냈다. 매 챕터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저주었다.
몇 년전 제작된 다큐멘터리 <성덕>. 감독은 가수 정준영의 광팬이었는데, 어느날 성범죄자가 되면서 혼란을 겪고 이를 영화로 만든다. 책의 내용 중 다음 부분에서 이 작품이 생각났다. '예술 작품을 소비한다는 건 두 사람의 인생이 만나는 일이다. 예술가의 인생이 예술의 소비를 방해할 수도 있고 한 관객의 인생이 예술 감상의 경험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309 페이지)'
이 책은 표지의 제목을 잘 읽을 수 없다. 한참을 들여다 봐야 숨어있는 '괴물들'이 보인다. 마치 걸작이라는 작품 속에 숨겨진 괴물들처럼. 책의 내용에 걸맞게 아이디어 넘치는 디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