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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들
시노다 세츠코 지음, 안지나 옮김 / 이음 / 2020년 5월
평점 :
지난번에 읽은 <돌봄 살인>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 번역한 안지나 님의 다른 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안지나 님은 일본 노인 문학을 연구, 번역하며 국내에 알리고 있는 분이다.
책의 저자 시노다 세츠코는 1955년 생으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써온 일본의 중견 작가다. <여자들의 지하드>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제 본인이 20년 넘게 치매 어머니를 돌본 경험이 있어 고령사회의 돌봄, 가부장제 속의 여성을 주제로 작품을 쓰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장녀들>은 사회의 단면을 여리하게 포착하고 있으면서도 문학적인 재미와 깊이도 있었다.
총 3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모두 비혼여성들이 주인공이다. 또 노부모를 돌보거나 장녀로서의 의무를 강요 받는 현실로 힘들어한다.
1. <집 지키는 딸>
돌싱인 장녀 나오미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와 가족이 살던 낡은 집을 온전히 혼자 케어해야 한다.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는 노모에 대한 짜증과 돌봄의 고됨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혼해서 출가한 여동생은 노모의 입장만 생각한다. 그러던 중 노모가 다니는 병원에서 나오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싱글남을 만나게 된다.
- 흘끗 여동생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배려에는 아무런 타산도 없지만 어머니의 병에도. 간병에도, 어머니가 일으킨 중대한 사건에도 무엇 하나 책임은 지지 않은, 시집 가버린 이 집의 또 다른 딸. (136 페이지)
2. <퍼스트레이디>
당뇨를 심하게 앓고 있는 어머니 대신에 의사인 아버지의 사교, 대외 업무를 책임지는 딸 게이코. 건강에 심각한 위기가 와도 단 음식을 몰래 먹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엄마에게 게이코는 분노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은 각자의 생활만 챙기고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은 게이코 뿐이다.
3. <미션>
어머니의 투병 당시 담당의사의 헌신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요리코. 결국 어머니가 죽자 뒤늦게 의대에 입학해 집을 떠나려하지만 홀로 남은 아버지와 결혼해 따로 사는 오빠는 그런 요리코를 비난한다. 요리코가 죽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길 원해서다.
세 편 모두 재미있었고 현실적이었다. 굳이 '장녀'라고 한정짓지 않아도 딸이라면 누구나 소설 속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 가정과 초고령 사회에서 비혼 여성이 맞닥뜨릴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을 잘 끄집어 냈다. 소설로서의 재미도 있었다. 특히 '집 지키는 딸'은 미스터리적 재미가 있고 '미션'은 묘한 스릴이 있다.
전편을 아울러 노인과 돌봄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기도 한다. 갈수록 노인이 많아지고 오래 사는 사회에서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