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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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600만 부나 팔렸다는 베스트셀러 소설.

표지의 수국 일러스트가 눈을 사로잡았다. 조엘 디케르라는 작가의 이름이나 이 소설의 제목은 낯설었지만 표지를 보고 호기심이 들었다. 저자는 스위스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발표하는 소설들은 항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고 한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유명한 작가인 듯하다.

소설의 배경은 의외로 미국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주인공 마커스는 데뷔작으로 큰 성공을 거둔 소설가다. 하지만 차기작을 쓰지 못해 슬럼프에 빠져서 거액의 계약금을 물어줄 위기에 처한다. 결국 그는 대학시절 스승인 해리 쿼버트에게 도움을 얻으러 뉴햄프셔 오로라로 떠난다.

오랜만에 스승과 만난 마커스는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찾는다. 또 독신인 해리 쿼버트의 집에서 그의 오래전 실종된 연인 놀라의 존재를 알게된다. 해리가 놀라에게 영감을 받아 그의 대표작을 쓴 것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마커스는 새 작품을 쓰려고 하는데. 해리가 실종된 놀라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됐다는 뉴스를 보게되고 마커스는 스승을 구하기 위해 직접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한다. 또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차기작으로 쓰기로 한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33년 전의 사건이 양파 까지듯이 하나씩 밝혀진다. 의외에 의외를 거듭하여 역시나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난다. 미스터리 공식에 충실하다.

30대 남성인 해리가 열 다섯 살 소녀 놀라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편안하지는 않았다. 추리의 과정이 어느 순간부터는 장황하다고 생각되긴 했다. 1,2권을 합쳐 천 페이지가 넘지만 빠르게 읽히는 점은 장점이다.

각 챕터가 시작될 때 해리가 마커스에게 전해주는 작가의 자세라든가 덕목에 대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들이 의외로 기억에 남았고 후반에 이에 대한 반전도 놀라웠다. 반전을 터뜨리기까지의 설계는 꽤 괜찮았다.

프랑스에서는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는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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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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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을 통해 말하는 한국 사회의 권력.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오래전에 읽었지만 이번 4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윤흥길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무척 인상깊게 읽어서 당시 친한 남학우에게 선물했던 기억도 있다. (문제는 그 친구가 절대 책을 읽지 않을 부류라는 데 있다. 당시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애한테 책을 선물했을까?)

소설의 배경은1980년대 '이곡리'라는 시골 마을이다. 마을에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주인공 임종술은 한 마디로 그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낚시나 하는 한량이다. 저수지의 주인인 최사장과 그의 조카인 이곡리 이장 최익삼은 불법으로 사유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종술을 감시원으로 고용한다.

푼돈으로 일을 시켜먹으려는 것을 간파한 종술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완장'을 주겠다는 말에 종술은 바로 승락하는데. 그에게 완장이란 평생 가져보지 못한 권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동네 한량이던 종술이 완장을 차면서 권력의 주체가 된 것처럼 행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원래 '완장'은 일제 시대 때 생겨난 것으로 순사들이 주로 착용한 권력의 상징이었다. 종술의 아버지도 결국 그 완장 때문에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은 불길함을 느낀다.

겨우 완장 하나로 기고만장해진 종술은 오랫동안 연모하던 동네 주점의 부월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종술과 부월의 스토리 라인은 블랙 코미디 같았다. 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희망이 없는 바닥 인생들인데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80년대에 두 차례나 TV 드라마화된 작품이기도 했다. 한 번은 단막극으로 또 한 번은 8부작으로 제작되었다고. 8부작에서는 종술 역할에 조형기 배우, 운암댁은 김영옥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니 찰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진 전북 사투리의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또 '그녀'라는 말 대신 '그니'라는 말이 사용된 것도 흥미로웠다. 출간된지 40년이나 지났지만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가 주는 재미는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풍자적인 내용과 묵직한 주제는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작가인 나를 일개 미물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 거대 권력에 효과적으로 보복하는 길은 역시 작가의 펜을 무기 삼아 권력 그 자체를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으로 희화화함으로써 실컷 야유하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 P6

고단했던 생애를 통하여 직접으로 간접으로 인연을 맺어온 숱한 완장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종술의 뇌리를 스쳤다. 완장의 나라, 완장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완장의 역사가 너훌거리는 치맛자락의 한끝을 슬쩍 벌려 바야흐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종술의 가슴을 유혹하고 있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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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녹슬지 않는 위픽
이혁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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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결국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게으른 독자인 주제에 감사하게도 이혁진 작가의 신작을 일찍 일어볼 수 있었다. <단단하고 녹슬지 않는>은 자율주행 차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자율주행 차량에 관심이 많다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윤리적 이슈가 있다. 바로 '트롤리의 딜레마'라고도 하는 문제다. 만약 제동장치가 망가진 자율주행 자동차에게 두 갈래의 길이 있다고 치자. 한 쪽 길은 어린 아이가 있고 다른 쪽 길은 노인이 있을 때 과연 이 차는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느냐는 딜레마다.

이 소설은 이 문제를 풀어냈다. '슈마허'라는 자율주행 차량이 어린 아이와 할머니 중 할머니를 치었다. 사고 피해자인 '한영인' 학교재단 이사장은 슈마허의 제조사에 어떤 근거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따져 묻기도 하고 그 알고리즘을 요청한다.

슈마허의 기술을 개발한 재호, 회사의 대표 세희, 이윤만을 생각하는 테드, 모든 실무처리를 해야하는 매튜 등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과 생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 절정을 구가 중인 '무버'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 축도 흥미롭다. 무버는 휠체어와 같이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교육용 머신인데 이를 사용하는 아이들은 걸으려 하지 않고 학습된 고급 어휘로 말하는 기이함을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의 새로운 난제들을 잘 묘사 해냈다.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체 속에 말하고자하는 가치나 인류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픽 시리즈 책은 처음 읽었는데 일단 판형이 마음에 든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다. 가독성이 있었고 소재도 근미래지만 현실성 있는 내용이라 재미있었다.



기밀 클라우드에 올라가 있는 건 일종의 가격표였다. 사고 대상들에 대한 가격표. 세희는 재호를 봤다.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 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 P19

나는 봐야겠어요. 그래야 하는 게 있다는 걸. 원래, 누가 뭐라든 세상이 어떻고 세월이 어떻든 아무 사관 없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게 있다는 걸료.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걸 허무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라도, 단 하나라도 있다는 걸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正義)라는 말의 뜻입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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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 선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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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 3권.

1,2 권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도 소설 속에서 다뤄지는 사건이 연쇄살인이라 그랬던 것 같다. 열 살 무렵의 소녀들만 골라서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서 오는 긴장감이 있다.

첫 챕터부터 등장하는 '발코니에 선 남자'가 꽤 강렬하다. 스톡홀름의 주택가에 있는 발코니에 서서 지나가는 어린 소녀들을 눈으로 좇는 남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뭔지 모를 불편한 느낌이 소설 내내 이어진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소 우연이 잦은 것은 아쉽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를 비롯한 형사들의 어려움과 고단함이 느껴지는 부분들은 현실감 있었다. 또 세 살짜리 꼬마가 목격자로 파악되고 나서 베크가 그 아이를 통해 단서를 얻으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수사에 난관이 계속되자 마르틴 베크는 불현듯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에 힘 입어 결국 발코니의 남자를 찾아낸다. 우연에 기대지 않고 주인공답게 좀 더 극적인 발견을 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결국 범인이 밝혀지는 부분은 의외였다. 좀 허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역시나 헐리우드 같은 영웅주의 서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결말이었다.

3권의 서문은 '해리 홀레'시리즈로 유명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가 썼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현재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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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들
시노다 세츠코 지음, 안지나 옮김 / 이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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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은 <돌봄 살인>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 번역한 안지나 님의 다른 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안지나 님은 일본 노인 문학을 연구, 번역하며 국내에 알리고 있는 분이다.

책의 저자 시노다 세츠코는 1955년 생으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써온 일본의 중견 작가다. <여자들의 지하드>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제 본인이 20년 넘게 치매 어머니를 돌본 경험이 있어 고령사회의 돌봄, 가부장제 속의 여성을 주제로 작품을 쓰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장녀들>은 사회의 단면을 여리하게 포착하고 있으면서도 문학적인 재미와 깊이도 있었다.

총 3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모두 비혼여성들이 주인공이다. 또 노부모를 돌보거나 장녀로서의 의무를 강요 받는 현실로 힘들어한다.


1. <집 지키는 딸>

돌싱인 장녀 나오미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와 가족이 살던 낡은 집을 온전히 혼자 케어해야 한다.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는 노모에 대한 짜증과 돌봄의 고됨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혼해서 출가한 여동생은 노모의 입장만 생각한다. 그러던 중 노모가 다니는 병원에서 나오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싱글남을 만나게 된다.

- 흘끗 여동생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배려에는 아무런 타산도 없지만 어머니의 병에도. 간병에도, 어머니가 일으킨 중대한 사건에도 무엇 하나 책임은 지지 않은, 시집 가버린 이 집의 또 다른 딸. (136 페이지)

2. <퍼스트레이디>

당뇨를 심하게 앓고 있는 어머니 대신에 의사인 아버지의 사교, 대외 업무를 책임지는 딸 게이코. 건강에 심각한 위기가 와도 단 음식을 몰래 먹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엄마에게 게이코는 분노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은 각자의 생활만 챙기고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은 게이코 뿐이다.

3. <미션>

어머니의 투병 당시 담당의사의 헌신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요리코. 결국 어머니가 죽자 뒤늦게 의대에 입학해 집을 떠나려하지만 홀로 남은 아버지와 결혼해 따로 사는 오빠는 그런 요리코를 비난한다. 요리코가 죽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길 원해서다.

세 편 모두 재미있었고 현실적이었다. 굳이 '장녀'라고 한정짓지 않아도 딸이라면 누구나 소설 속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 가정과 초고령 사회에서 비혼 여성이 맞닥뜨릴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을 잘 끄집어 냈다. 소설로서의 재미도 있었다. 특히 '집 지키는 딸'은 미스터리적 재미가 있고 '미션'은 묘한 스릴이 있다.


전편을 아울러 노인과 돌봄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기도 한다. 갈수록 노인이 많아지고 오래 사는 사회에서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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