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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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을 통해 말하는 한국 사회의 권력.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오래전에 읽었지만 이번 4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윤흥길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무척 인상깊게 읽어서 당시 친한 남학우에게 선물했던 기억도 있다. (문제는 그 친구가 절대 책을 읽지 않을 부류라는 데 있다. 당시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애한테 책을 선물했을까?)

소설의 배경은1980년대 '이곡리'라는 시골 마을이다. 마을에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주인공 임종술은 한 마디로 그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낚시나 하는 한량이다. 저수지의 주인인 최사장과 그의 조카인 이곡리 이장 최익삼은 불법으로 사유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종술을 감시원으로 고용한다.

푼돈으로 일을 시켜먹으려는 것을 간파한 종술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완장'을 주겠다는 말에 종술은 바로 승락하는데. 그에게 완장이란 평생 가져보지 못한 권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동네 한량이던 종술이 완장을 차면서 권력의 주체가 된 것처럼 행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원래 '완장'은 일제 시대 때 생겨난 것으로 순사들이 주로 착용한 권력의 상징이었다. 종술의 아버지도 결국 그 완장 때문에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은 불길함을 느낀다.

겨우 완장 하나로 기고만장해진 종술은 오랫동안 연모하던 동네 주점의 부월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종술과 부월의 스토리 라인은 블랙 코미디 같았다. 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희망이 없는 바닥 인생들인데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80년대에 두 차례나 TV 드라마화된 작품이기도 했다. 한 번은 단막극으로 또 한 번은 8부작으로 제작되었다고. 8부작에서는 종술 역할에 조형기 배우, 운암댁은 김영옥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니 찰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진 전북 사투리의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또 '그녀'라는 말 대신 '그니'라는 말이 사용된 것도 흥미로웠다. 출간된지 40년이나 지났지만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가 주는 재미는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풍자적인 내용과 묵직한 주제는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작가인 나를 일개 미물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 거대 권력에 효과적으로 보복하는 길은 역시 작가의 펜을 무기 삼아 권력 그 자체를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으로 희화화함으로써 실컷 야유하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 P6

고단했던 생애를 통하여 직접으로 간접으로 인연을 맺어온 숱한 완장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종술의 뇌리를 스쳤다. 완장의 나라, 완장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완장의 역사가 너훌거리는 치맛자락의 한끝을 슬쩍 벌려 바야흐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종술의 가슴을 유혹하고 있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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