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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지혜 - 삶을 관통하는 돈에 대한 사유와 통찰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평점 :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흐름출판, 2019.
프랑스 작가답게 글이 비상하다. 비유하자면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글 곳곳에 비유와 은유와 상상이 넘쳐난다. 소설가 답지 않은 깊이 있는 글이다. 만약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읽는다면 분명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고전의 인용도 많고, 소설가답게 다른 소설에서의 인용도 있다. 어떤 인용은 작가가 보기에 너무나 당연한 책의 인용으로 판단하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막힘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사전에도 검색이 안되는 ‘장세니즘’(77), ‘도락거리’(148) 같은 것은 설명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돈에 대한 철학 혹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몇몇 독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거북하지는 않을 정도다. 대부분의 글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모든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15)고 선언한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건 적건 간에 늘 돈을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고민은 늘 있다. 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에 우리는 돈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 고상하게 말하면 ‘철학’을 하게 된다. 인생관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이 바로 ‘돈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 방법,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저자는 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돈에서 확장하여 사랑, 결혼, 매춘에까지 연결지에 이야기를 한다. 정말 예상치 못하는 확산이라고 느껴진다.
소제목 중에 재미있는 몇 가지를 먼저 소개한다. 제1장 악마의 배설물, 제4장 미국의 영혼은 돈이다, 제7장 음흉한 계산속이 숭고한 사랑을 죽였나, 제9장 부는 죄가 아니요, 가난이 덕은 아니다. 소제목에서 풍기는 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어떨 때 돈은 정말 악마의 배설물 같다. 정말 구린내가 나는 돈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살리는 향기로운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는 죄가 아니요, 가난은 덕은 아니다.’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우리는 부자를 질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없는 것을,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마냥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는 죄가 아니다. 부를 추구하여 부자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길일뿐이다. 그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난을 이겨내고 이룬 부일 수 있다. 반대로 가난하다고 다 청빈한 것도 아니다. ‘가난은 극복해야 할 시험이지 덕으로 추앙받을 일은 못된다.(49) 여하튼 가난을 반길 사람은 없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이윤과 명예를 추구하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25)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란다.
하지만 지나친 게 문제다. 돈을 숭상하는 세상이 되었다. ‘돈은 신의 가장 중요한 경쟁자다.’(28) 신을 숭상하는 자가 돈도 숭상할 수 있는가? 모세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동족을 보고 십계명이 새겨진 율법의 판을 부숴버렸다.(20) 금송아지는 돈을 상징한다. 글 곳곳에 돈 장사하는 종교인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에 기독교나 불교도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재미있는 한마디 ‘신의 일을 하면 살이 찌는 모양이다.’(35) 뚱뚱한 성직자를 두고 한 소리다.
그렇다고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은 어떤가? 저자의 나라 프랑스는 차라리 ‘쾌락’을 숭배(58) 하고 돈을 비판하는 척(59) 한다고 말한다. 돈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데, 이렇게 돈을 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금송아지를 실컷 욕하면 기분전환’(67)은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돈을 ‘무조건 나쁘게만 말하면 돈은 부끄러운 욕망처럼 몰래몰래 등장하며 은밀한 비래를 펼 것이다.’(75)
미국 화폐에 적혀있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글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통해 미국인의 돈 철학을 읽어낸다. 한마디로 ‘달러를 진정한 영적 화폐로 만들었다.’(85)는 것이다. 돈과 종교를 일치시켰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달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달러의 영향 아래에 있지 않는가!
이 저자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뿐 아니라 교황 프란체스코까지 비꼬고 있다.(120) 이들이 자본주의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나! 자본주의도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세상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글에 보면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나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당한다.)
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모두가 부자이면 돈이 필요 없을까? 혹은 미래의 유토피아는 돈이 필요 없을까? 혹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면 돈이 없어질까? 아마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돈의 역사만큼 앞으로도 돈은 살아남을 것 같다. ‘돈은 보편적 부패고 광기다. 그러나 돈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더 큰 광기다.’(98) 다만 돈은 우리에게 전부는 아니다. ‘모든 체제, 모든 시대, 그야말로 도처에 돈이 존재하지만 돈은 인간 정념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을 뿐’(129)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돈에 치여 살 것이며, 현명한 사람은 돈을 이용하며 살 것이다. ‘모두가 자기 위만 바라보고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아직 갖지 못한 것을 헤아리기 바쁘다.’(166) 돈은 우리를 파멸의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금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204) 나도 로또를 산 적이 있지만 만약 당첨되었다면 행복해질 거라는 보장을 못 하겠다. 오히려 두려워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도 당첨되지 않았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결론(288)을 제시한다. 내 생각이지만 글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결론을 먼저 읽었으면 좋았겠다. 4쪽 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늘 돈을 추구했다. 현명하게 얻고 싶었고, 쓰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나름 좋은 지침을 내려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