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준 것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문지혁 지음, 박선엽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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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가 sf소설도 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은 전부 자전적 이야기에 허구적 내용을 더한 ’오토픽션‘이었다.
박선엽 작가의 일러스트가 함께 한 <당신이 준 것>을 통해 문지혁 작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게 된다.

모두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에는 2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쓴 소설들로 채워졌다.
2007년 대학원 워크숍에서 쓴 가장 오래된 <KISS>를 시작으로 2024년 봄 문예지에 발표한 <멸종과 생존>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작가의 책 어디에도 담기지 못한 데뷔작 단편 <체이서>를 소개하고 있다.

잔인했던 어떤 사건이 떠오르는 <7초만 더>는 이유도 모른 채 7초만 더를 외치는 등장인물과 현실의 피해자들이 오버랩돼 마음이 아프다.
살다 보면 그때 그 순간을 잡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기에 <굿 나잇, 웨스트엔드>라는 짧은 이야기가 마음에 콕 박힌다.
작가의 오토픽션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홀 시커>를 읽으면서도 괜히 어떤 장면에 작가의 진짜 모습이 숨어 있지나 않을지 찾아보게 된다.

마지막 소설 <멸종과 생존>은 2020년 <초급 한국어>를 쓴 15년 후 초급, 중급, 실전, 상급, 실용을 거쳐 고급을 끝으로 마지막 종이책을 내는 소설가의 이야기다.
오로지 종이책만 읽고 작가의 초급, 중급 한국어를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고급 편이 나오길 기다리는 독자인 나는 작가의 한국어가 여러 편 출간될 수도 있겠다는 설렘 뒤에 종이책이 사라지는 근미래의 이야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장편소설이나 소설집은 저의 특정한 시절을 담은 결과물이지만, 어쩌면 이 책은 온전한 제 역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12편의 짧은 소설로 작가의 역사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지만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밟아온 작가의 길을 함께 걸어볼 수 있어 더없이 좋은 소설집이다.
이따금 등장하는 그림 역시 소설과 잘 어울려 좋았고 언제 어디서든 짬을 내 꺼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소설이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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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 -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치호 미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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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겸비한 소설에 주는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띠지 문구만 보고 고른 소설집이다.
6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속 이야기는 모두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호객 행위 중 만난 여자가 죽은 동급생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등장하고 첫눈에 반한 배달앱 기사를 만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앱을 이용하는 여자도 등장한다.
십오 년 전 호우로 죽은 소녀가 유령이 되어 나타나 자기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도 한다.

이웃 노인에게 음흉한 목적을 가지고 요리를 해주기 시작하는 남자도 있고 임신한 고등학생 딸은 대책 없이 아이를 낳겠다고 선포한다.
코로나로 삶의 의지가 꺾인 사람들은 자살클럽을 만들어 죽을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가정 폭력과 무엇엔가 중독된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방임을 비롯해 미성년자를 지켜줘야 할 위치의 어른에 의한 성폭력과 자살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암울하다.
그러나 미스터리, 범죄, 추리 등의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는 분명 어둡지만 재미있다.
사회 문제를 다룬 심각한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하기엔 적당치 않을지 모르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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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부인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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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먼저 번역 소개된 작품은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이지만 그 이전에 ’유리 린타로‘시리즈가 있었다.
작년에 출간된 유리 린타로 시리즈 <신주로>를 읽으며 잔혹함은 타고나기보다는 길러지는 게 아닌 가 생각했는데 시리즈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나비 부인’으로 예상 밖의 좋은 성적을 거둔 하라 사쿠라 오페라단은 사흘간의 도쿄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을 위해 오사카로 떠난다.
먼저 오사카에 도착한 매니저 쓰키야 교조는 하라 사쿠라의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가지 못한다.
기차역에서 사쿠라를 만나지 못한 쓰키야는 호텔로 찾아가지만 간발의 차로 사쿠라가 호텔을 나선 뒤라 공연 당일 리허설 현장에서 사쿠라를 기다린다.

리허설 시간이 다 되도록 사쿠라가 도착하지 않자 단원들은 걱정하기 시작하고 기차에 실은 콘트라베이스가 뒤늦게 도착해 단원들이 안으로 옮기려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콘트라베이스 무게에 케이스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 하라 사쿠라 사체가 드러난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사쿠라의 남편 부탁으로 유리 린타로와 기자인 미쓰기 슌스케가 사건 해결을 위해 오사카에 도착한다.

소설은 ’나비 부인’사건이 해결된 후 미쓰기 슌스케가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쓸 계획을 세운 후 유리 린타로를 찾아가 허락을 구하고 관련 서류 등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주인공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펼쳐지기 전 매니저인 쓰키야 교조의 일기를 그대로 차용해 그들이 보지못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범인이 일부러 흘린 듯한 암호 악보와 모두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촘촘하게 이어져 단원들은 물론 사쿠라의 남편까지 의심하게 된다.

오사카와 도쿄를 오가며 살해 현장을 찾아나서고 사건을 되집어 가는 과정은 범인과의 치열한 두뇌 싸움에 동참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특히 유리 린타로와 미쓰기 슌스케가 깊숙히 관련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단편 <거미와 백합> <장미와 율금향>은 탐미적이면서도 일본 특유의 색채가 짙어 짧지만 작가 특유의 퇴폐미가 느껴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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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ㅣ 비룡소 전래동화 39
배삼식 지음,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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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때 옛날이야기 해 달라고 조르면 토닥이며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해서 한 개만 듣고 잠들기 너무 아쉬워 또 해 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제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해 주셨지요.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은 그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처럼 자꾸자꾸 듣고 싶은 옛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몸뚱어리 머리 팔다리 다 말짱한 총각이 살았는데 단 하나 눈 하나가 ‘도라지꽃처럼, 청옥처럼, 가을 하늘처럼’ 새파아란 눈동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새파아란 총각의 눈동자를 보며 무서워하고 재수 없어 하고 징그러워했습니다.
왼뺨에 쥐가 나도록 왼눈을 질끈 감고 다녔지만, 사람들은 총각을 피했고 이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총각은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약초를 캐 본 적 없던 총각은 약초 구경도 못하고 도라지라도 캘 양으로 땅을 파다 지네에게 손가락을
물렸지만, 지네를 놓아주었습니다.

“너나 나나 같은 신세구나.
나는 징그러운 총각.
너는 징그러운 지네.
너는 다리가 빨개 땅 밑에 숨었고
나는 눈알이 파래 산속에 숨었구나.“

뒤에서 발소리가 나 돌아보니 각시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총각은 새파아란 눈동자를 숨기려 하지만 각시는 그 눈을 어여삐 보며 자신의 빨간 손을 쓱 내밀어 보입니다.
총각은 놀라기는 했지만,빨간 손을 예쁘게 봐 줍니다.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의 초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같이 살게 된 각시와 총각은 남녀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합니다.
밥을 잘 짓는 총각은 밥을 짓고 산속이라면 손바닥처럼 환하고 약초라면 모르는 게 없는 각시는 산에 가서 약초를 캡니다.

두 사람에게 고난이 찾아오지만, 타인의 말에 휘둘려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지도 않습니다.
거기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총각 덕분에 긴 세월 대대로 이어져 온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을 사라지게도 합니다.

소리 내 읽을 때 느껴지는 음률 감 있는 글과 단순한 형태의 표현과 흑과 백의 대비된 그림은 한국적 미가 느껴집니다.
특히 뚜렷하게 구분된 글과 그림을 온전히 감상할수 있도록 위로 여는 독특한 방식의 제본 형식이 돋보이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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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트레인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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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을 고를 때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등을 꼼꼼히 읽고 고르기도 하지만 작가나 출판사를 믿고 그냥 집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지혁’이라는 작가와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라니 더더욱 따질 것 없이 골랐다.

종이책만 읽는지라 고를 때 책의 물성도 중요한 데 받아본 책은 탄복할 만큼 아름다웠다.
거기다 이동 중 차 안에서 시작한 소설은 기차는 아니었지만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어딘가로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이사를 한다면서 본가에 있던 ‘나’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내온다.
그중 회색 종이봉투 속 사진을 보며 25년 전 호탤팩으로 떠났던 21일 동안의 유럽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O가 새 남자 친구를 사귀지만, 유럽 여행 후 ‘나’에게 은반지를 선물한다.
그녀를 잊지 못해 은반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던 ‘나’는 어느 날 극장에 갔다 새 남자 친구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O를 보게 되고 O가 반지를 산 빈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소설 대부분은 25년 전 유럽 여행의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유럽 여행지를 스케치하며 설명하기보다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중심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나’의 유럽 여행기는 기대만큼 들뜨지 않고 유럽의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만큼 평범하다.
물론 ‘나‘는 여행지에서 아프기도 하고 야간열차 안에서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곁에 건사할 가족이 없고 젊었기에 가능했던 여행이기에 지나온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
O와의 진짜 이별을 위한 애도 여행은 계획했던 빈의 대관람차 탑승까지는 가능했지만, 그 이후의 일은 계획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

인생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꼼꼼하게 짠 여행 계획도 현지에서는 어긋나기 일 수다.
젊은 ‘나‘의 여행기가 끝난 곳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남자의 모습은 현실에 안착한 듯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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