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스텝 ㅣ 위픽
박재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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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위픽 시리즈는 202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챠, 가챠>가 당선된 박재연 작가의 따끈따근한 신간 <히든 스텝>이다.
한때는 촉망받는 연습생이었지만, 지금은 가망 없는 가수 지망생으로 살아가는 해원의 이야기다.

해원은 좋아하는 가수의 모창 능력자를 뽑는 프로그램 ’히든 싱어‘에 섭외되고, 때마침 7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엄마에게서 다급한 연락을 받는다.
엄마는 한창 빠져있는 맨발 걷기를 하다 다리를 다쳤음에도 해원에게 맨발 산행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집을 뛰쳐나온 뒤 연락을 끊고 지내던 딸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희망마저 사그라져 갈 즈음, 엄마의 연락은 해원에게 또 다른 고민과 두려움을 안겨준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에게 어떤 고언조차 건네지 못하는 딸의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이지만 긴 세월 남보다 못하게 살아온 엄마. 그런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마음은 가족이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아픔일 것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낯선 모습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단 한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위픽 시리즈로 만난 신인 작가의 앞 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부디 엄마 순자 씨와 해원이 각자의 평안한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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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승호(고 가쓰히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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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호 작가의 소설은 제6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도덕의 시간>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후 출간된 소설들을 접할 기회도 분명 있었을 텐데, 어쩐지 인연이 닿지 않아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작가의 <Q>를 읽게 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아이, 로쿠와 하치 그리고 큐.
아이들의 엄마는 모두 싱글맘이었지만, 막대한 재력을 가진 한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기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는 이혼할 때마다 엄마들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은 뒤, 정작 자신이 키우지는 않고 자신의 부모에게 맡긴다.
아이들을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목적 따위는 없이 그저 아이들을 하나씩 빼앗아 모으는, 기이한 ‘수집‘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된 세 아이는 막내 큐를 중심으로 조부모의 손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큐의 생모가 아들이 춤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첫째 로쿠와 큐를 데려가면서 세 아이의 운명은 다시 갈라진다.
홀로 남겨진 하치는 무수한 폭력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소설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7년 전 벌어진 실종 사건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 소설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재능과 아름다움을 가진 소년을 향한 찬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가십성 짙은 소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양한 형태의 연민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나 하치의 곁에서 묵묵히 그녀와 함께 했던 아리요시의 입에서 “좋아해.”(p733)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 소설이 결국 연애소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8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덥석 집어 들었던 건, 책배와 책머리, 책꼬리에 화려하게 채운 아트 프린팅 때문이었다.
게다가 블루홀식스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100번째 책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지니, 평소보다 훨씬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였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안에는 왜 독자들이 오승호라는 작가에게 열광하는 지 온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도덕의 시간> 이후 오랜만에 만난 작가였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Q>를 읽고 나니 아직 읽지 않은 오승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고 앞으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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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시간 ㅣ 웅진 모두의 그림책 83
베르나데트 제르베 지음, 신유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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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웅진주니어 정기 서평단 자격으로 제공받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글과 네 컷의 그림으로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그림책이 바로 <네 번의 시간>입니다.

어떤 사물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저마다 다릅니다.
동물들이 일정한 거리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과 날렵한 고양이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도착하는 시간, 그리고 산토끼가 깡충 뛰어 도착하는 시간의 길이는 모두 다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1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사과꽃이 피고 작은 열매가 맺혀 햇빛을 받아 탐스러운 사과로 익어 가는 데에도 여러 날이 걸립니다.
하지만 비가 갠 뒤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는 찰나의 순간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세상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어떤 변화에 도달하기까지는 각자의 속도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개념을 설명하고, 사물이 변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이를 이해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사물들을 간결한 글과 짧은 문장으로 보여 주며,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에 직관적인 네 컷의 그림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인지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간이 만들어 내는 변화와 아름다움까지 자연스럽게 전해 줍니다.

민들레는 꽃을 피우고 씨앗을 세상에 퍼뜨리며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푸른 나뭇잎은 단풍이 들고 잎을 떨군 뒤 다시 봄을 기다립니다.
흐르면서도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 역시 성장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여러 번 펼쳐 볼수록 깊은 진가를 느끼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시간의 숨결과 흐름을 느껴 보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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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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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가 준비한 초판이 현장에서 완판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는 말을 듣고 앞뒤 재지 않고 집어 든 소설이<빵충 사육 준수 사항>이다.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함께 음악을 하던 밴드 친구들과도 멀어진 트럼펫 연주자 정한은 준비도 없이 청년 귀농 프로그램에 참여해 3억 원의 대출을 받아 딸기 농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경험도 기반도 없는 농사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그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에 빠진다.

우연히 이장이 건넨 ‘청년 스마트팜 신개발 유용 곤충 육성 분양 지원 사업’ 안내문을 보고 지원한 정한은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다.
맛과 영양을 두루 갖춘 식용 곤충 ‘빵충’은 사육 방법도 어렵지 않아 초보 농부인 그에게 마지막 희망처럼 다가온다.

갓 구운 소금빵과 꼭 닮은 맛과 모양의 빵충은 정한에게 성공의 맛과 함께 새로운 인간관계까지 안겨 준다.
그러나 빵충 사육 농가가 급격히 늘어나고 로열티 문제까지 겹치면서 사업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동료들은 어떤 경우에도 어겨서는 안 되는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깨고 번데기를 성충으로 변태시키려는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초반부에서 소설은 실패한 귀농 청년의 절망을 충분히 보여 주기 때문에, 정한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에도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계속 감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후반부에 이르러 거대한 공포로 폭발한다.
성충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뒤의 장면은 너무 선명해서, 냄새까지 상상될 정도였다.

읽는 동안 계속 정한 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떠올리며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이어 붙여 보게 된다.
특히 후반부에 사건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먹고살기 위해 끝까지 몰린 사람들의 절박함을 담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한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청년 농부의 실패담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서스펜스로 변하고, 다시 크리처물과 사회풍자극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 변화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의 속도를 끝까지 끌고 간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니 이 작품은 영상으로 옮겨져도 충분히 강렬하겠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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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ㅣ HiP 시리즈
정보라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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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텍스티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텍스티 출판사가 새롭게 시작한 HIP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정보라 작가의 미출간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세 편의 짧은 단편이 실린 얇은 소설집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라 외출할 때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다.

‘내 이름을 불러줘’의 세계는 15년간의 혁명이 끝난 뒤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사회다.
여성은 결혼이 아니라 국가가 배정한 남성과 아이를 낳아야 하고, 태어난 아이마저 국가의 소유가 된다.
’바늘 자국‘의 마을에서는 20년마다 요물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표제작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에서는 길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비춘다.

나는 정보라의 작품을 좋아한다.
말로만 투쟁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 직접 부딪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SF와 호러, 괴담의 외피를 쓰고 있어도 결국 세상에서 상처받고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작품의 중심에는 모두 여성 혹은 암컷이 있다.
‘내 이름을 불러줘’의 여성은 가족과 분리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혁명이 끝난 후에도 달라진 것 없는 세상에서 이름조차 잃은 채 사랑 없는 관계 속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마저 빼앗긴다.
‘바늘 자국’의 소녀 역시 부잣집에 입양되어 부족함 없이 자라지만 결국 친딸을 대신할 제물로 선택된다.
길고양이 귀야옹 씨도 거리에서 낳은 여섯 마리 새끼를 모두 잃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끝내 붙들어 주는 존재들이다.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채 빼앗긴 아이들,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온 소녀를 끝까지 돌본 몸종 애련처럼, 정보라의 세계에서는 거창한 영웅보다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꽤 오래전에 쓰였다고 하지만, 읽고 있으면 지금의 정보라 소설이 이미 이 안에 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은 미래이기도 하고 먼 과거이기도 하며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어딘가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렀어도 약한 존재들이 겪는 고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에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얇은 소설집의 뒷맛이 유난히 씁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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