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절벽의 신자들
조예은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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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맛보기로 읽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이후 ‘오연’은 단 한 사람, 친구 ‘제언’을 빼고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물론 얼굴이 왜곡되어 보인다.
그러던 중 교생으로 ‘주연’이 오고 그의 얼굴 역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제언은 주연에게 적대적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2015년 8월 8일’에 나타날 존재들이 궁금했고, 어디서부터 어디가 현재이고 어느 부분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인지, 또 어떤 부분이 환상이나 꿈인지 생각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비가 분명해 보이는 ‘녹색 절벽’이 기다리는 세상은 과연 올지, 신실한 그들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믿는 자로 보이는 오연의 변화와 믿음 따위는 없어 보이던 제언의 절실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서 내쫓기고 돌봄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는 청소년의 종착지를 보는 것 같아 괜히 뜨끔했다.
가장 절박한 순간, 누구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아이의 모습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범죄 집단이나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를 대입해도 그대로일 것 같아 두려워진다.

소설은 가정은 물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두 친구의 우정으로 읽을 수도 있고, 사이비 종교의 실체와 최후를 보여주는 이야기로도, 불우한 두 청소년의 성장기로도, 방향을 잃은 복수극으로도 읽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했고, 확실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이 오히려 공포스럽다.

딱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 더 매력적이고, 읽고 난 뒤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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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소기 - 듣지 말았어야 했다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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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이는 이야기 끝에서 과연 어떤 공포와 마주하게 될지, 미쓰다 신조가 선사할 서늘한 마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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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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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한 대작가의 신작은 사랑이야기다.
대학생 때의 짧은 인연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남녀는 5년 만의 재회에서 다시 가까워지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수천억대 자산가의 둘째 아들인 남자는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 집안의 가장이 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상속분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선물한다.
하지만 여자는 큰 병을 앓게 되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 주길 꿈꿨던 젊은 시절의 소망을 담은 이야기는 노작가의 손끝에서 철학과 미술을 더해 새롭게 태어난다.

철학도인 남자와 생계 때문에 순수미술을 이어갈 수 없었던 여자는 장흥 보림사와 반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삶과 반 고흐의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은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커다란 담론을 던지며 끝맺는다.

작가의 말에서 오랫동안 숙명처럼 함께해온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직도 이런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음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30년도 전에 《태백산맥》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소설을 꽤 오랜 시간 따라 읽었는데 이 소설이 작가의 마지막 장편이라는 말에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고루한 옛사랑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사랑이 아닌 긴 시간 마음에 품어온 사랑 이야기는 지나버린 젊은 날의 아련함을 선사한다.
부디 작가님이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장편은 아니더라도 짧은 소설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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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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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등장하는 갈릴레오 시리즈는 신간이 출간되면 꼭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시리즈의 열 번째 소설이 번역됐다.
도쿄 인근 바다에서 총상을 입은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고,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성을 실종 신고한 동거 여성이 사라진 사실이 밝혀진다.

수사 과정에서 동거 여성과 함께 사라진 여성이 있다는 게 밝혀지고 그 여성을 조사하던 중 ‘유카와 마나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구사나기와 우쓰미는 유카와를 찾아가 수사 협조를 구하지만 거절당하고 다른 방법으로 수사를 돕겠다고 한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나는 시리즈의 시작을 어떤 이야기로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도 나이가 들었고 각자의 위치도 달라졌지만, 한 번도 유카와 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투명한 나선> 속 유카와는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지만 여전히 수사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이제껏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 마침내 진짜 범인을 찾아낸다.

진범이 밝혀진 후에도 숨겨진 진실을 끝내 알지 못하는 범인을 위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을 밝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진실은 끝까지 모르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진실을 모른 채 죄까지 저지른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뒤엉켜 책장을 덮고도 입맛이 씁쓸해진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포털 검색으로 다시 확인했을 정도로 올해 가장 놀라고 황망한 소식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소설이 남아 있다고는 해도, 진짜 새로운 그의 이야기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지만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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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픽션 ㅣ 위픽
서장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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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는 위즈덤하우스와 위픽에서 진행한 위뷰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위픽 시리즈 백 세 번째 이야기는 작가의 현실을 소설 속 화자 ’정원‘의 일상에 투영시킨 ‘메타픽션’입니다.
서장원 작가의 소설은 문학상 수상작품집과 출판사 계간지에서 몇 편을 읽은 게 다라 작가의 이름이 오롯이 박힌 단독 소설을 만나는 것이 반갑고도 벅찼습니다.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너무 심약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정원‘은 같은 건물에 있는 격투기 체육관의 코치인 ‘조성’에게서 그 강인함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조성이 가진 비밀을 알게 되면서, 정원은 지금까지 자신이 혐오했던 이들에 대해 돌아보고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있잖아, 개소리하는 사람들만 걸리는 역병이 돌았으면 좋겠어.” (p40)

퀴어도 혐오하고, 여성도 혐오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사람들은 과연 나쁘기만 한 걸까요,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는 우리 역시 떳떳할 수 있을까요?
책과 영화를 볼 때면 늘 선과 악을 구분하며 보던 저에게는 누군가를 향한 혐오는 언제나 명백한 ’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혐오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가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설을 덮은 뒤에도 한참을 골몰하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고, 또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성과 정원이 없애고 싶은 인간들의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쉽게 선과 악으로 나누고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 나 역시 다른 누군가를 판단하고 배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사람도, 좋기만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 앞에 나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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