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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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이 슬픈 이유는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자매도 얼굴을 안 보고 살기도 하고 나를 낳아준 부모와 척을 지고 살기도 한다.
안 보고 못 보는 것은 같지만 거기에 죽음이 자리 잡으면 ‘영원히’라는 사실이 끼어들면서 마음 아프고 안타깝고 그립고 슬프다.

3월의 어느 봄날
급행 열차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 127명의 승객 중 68명의 사망한다.
불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이 비탄에 빠져 슬퍼하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사고 역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가면 유령이 나타나 사고 당일 열차에 탑승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단 네 가지 규칙을 지켜야 된다는 조건이 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한 순간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남겨진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긴 시간을 건너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예비 신랑의 죽음, 자신의 삶이 힘들다는 핑계로 멀리 했던 아버지의 죽음, 여린 중학생의 가슴을 가득 채웠던 첫사랑 누나의 죽음, 그리고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고 울지도 못하는 사고 열차의 기관사의 죽음까지 모두 가슴 절절하다.

짐작되는 내용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인 ‘힘내라,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진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하는 말을 소설로 읽으니 진부한 대사가 진부하게 들리지않는 드라마를 한 편 본 느낌이다.
즐겨 봐 온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대목이 나오기도 하지만 유치하진 않다.
이 더운 여름 악인이 나오지 않는 순한 맛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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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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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물이 좋은 이유는 출간일이 언제든지 괴리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옛날 이야기인데 1996년에 쓴 작품을 26년이 지나 오늘 읽는다해도 아무 상관없으니 그게 시대물의 최대 장점이다.
만약 26년 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이제사 신간인 척 나왔는데 모르고 읽었다면 출판사에 대한 배신감은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미미여사님의 미야베월드2막은 언제 읽어도 좋으니 인내상자가 1996년 작품임을 알게 된 순간에도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다.

인내상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마음속에 단단히 봉인해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소설(p238)들이다.
물론 미미여사의 다른 책들처럼 재미있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는 게 필요 없을 만큼 [편집자 후기]가 논문급이다.
그래서 편집자님이 미처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 ‘스나무라 간척지’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 별것도 아닌 것에도 가슴이 찌르르 해 오는 데 엄마의 첫사랑을 이해하고 이치타로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지만 여전히 엄마에게는 아무말도 하지않는 오하루의 마음이 이해 되어 코가 갑자기 맹맹해졌다.

농담으로 아들에게 한 이야기중 하나가 엄마 죽기전에 미미여사의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미시마야 시리즈’가 완성되면 좋겠다고 해서 원성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작가님이 건강하셔서 시리즈를 완성해 주시고 나 역시 건강해서 완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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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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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문학상을 동시에 석권한 전대미문의 걸작”이라는 띠지를 보고 고른 책이다.
대만의 70년대를 살아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부잡하고 불량스럽기도 한 주인공이 고등학생인 70년 대에 부터 대만 주민의 중국 방문이 해금된 80년대 말까지의 이야기로 끝맺음된 소설이다.

대만의 역사는 우리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중국 본토의 공산당과 대만으로 내몰린 국민당의 전쟁이 있었다.

주인공 예치우성은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 온 대가족과 함께 사는 대만 태생 고등학생이다.
본토 공산당을 토벌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할아버지는 4명의 자식 중 양아들인 위우원을 특별히 아낀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 날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예치우성은 범인이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도통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소설은 추리/미스터리소설로 구분되어 있다.
할아버지의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어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와 손자 예치우성의 방황과 사랑을 다룬 성장소설의 두 축으로 진행된다.
그 시절의 껄렁한 삼춘과 불량스러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설익은 첫사랑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새롭거나 신기하지는 않다.
하지만 거기에 역사적 배경이 어울리면서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본토에서 내몰린 이주자들은 여전히 공산당을 저주하고 자신들이 전쟁 중 벌인 살인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무도 모르게 보관한 사진 한 장의 의미는 자신의 양아들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가장 사랑했던 것이 할아버지의 만의 반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1968년에 대만 태생인 작가는 다섯 살까지 타이베이에서 지낸후 아홉 살 때 일본으로 왔다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9살까지 산 어떤 일본 작가가 우리나라 남자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7~80년대의 이야기를 쓴다면 어떻게 읽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거기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북한과 싸우고 항일운동을 한 사람이었다면.
분명 재미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소설이지만 사건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던 일본의 잘못을 쏙 빼놓고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이야기로 풀어간 것 같아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싶다.
그래서 반성하지 않는 그들이 밉고 섭섭하기도 하다.


*다시 검색해 보니 작가는 일본에 오래 살았지만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여전히 타이완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작가가 일본에서 활동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으로 생각했다.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특히 할아버지가 산둥성 출신 항일 투시라고 한다.
작가를 일본인이라 착각하고 쓴 리뷰라 더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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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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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본 고딕소설의 의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영국에서 유행한 소설,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된 성을 배경으로 유령, 살인 따위의 기괴한 사건을 주로 다루면서 신비감과 공포감을 나타낸다.”고 설명되어 있다.(N사 표준국어대사전)

성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유령이 등장하고 살인(사고)따위도 등장하는 고딕호러 소설이지만 공포보다는 남겨진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 먼저 읽혀진다


진짜 존재했던 대불호텔과 작가의 전작인 니콜라 유치원을 쓰는 소설가의 등장은 아무리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잘 써지지 않는 소설 때문에 힘들어하던 작가인 는 친구인 을 따라 대불호텔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녹색재킷의 유령을 본다.

마침 대불호텔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화교인 뢰이한과 미국으로 이민 갈 계획을 품고 보증 서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연주, 그리고 고향인 월미도에서 좌우익의 대립으로 가족을 잃고 인천으로 나온 지영현과 글을 쓰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셜리 잭슨이 호텔에서 겪은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화교인 뢰이한이 당한 서러움은 현재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모습이 오버랩 된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연주는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고단함을 느끼게 하고 이념으로 갈라서 적이 되어버린 우리 모습은 지영현에게서 찾아진다.

여성, 외국인, 비주류, 이방인인 그들의 이야기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

 

소설은 으스스한 호텔의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단 한 문장이 가슴 절절한 연애소설로 선회하다.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p296)라는 글을 읽는 순간이었다.

정작 뢰이한과 박지운의 이야기는 대불호텔 속 사건에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한 문장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분명해진다.

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진데 박지운이 가슴을 치며 내뱉은 말 같다.

나는 아들 둘을 낳고 살면서 남편과 아들들에게 얼마나 많이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는 말을 하고 살았을까?

물론 네 덕분에, 당신 덕분에라는 말도 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독기를 품고 가끔은 눈물을 글썽이며 때문에를 더 많이 외쳤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는 덕분에 보다는 때문에를 더 많이 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놈의 세상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노동자 때문에 페미니스트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면 악의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우리는 악다구니를 쓰며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살아가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뢰이한을 밀어내는 박지운처럼 살고 있다.

정작 자신과 주의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박지운. 남편이 떠난 후 억척스럽고 독하게 변해 버린 그녀.......그녀는 뢰이한을 너무나도 깊이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이도 살아가기 위해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가짜 마음을 만든다. 그러니 그녀가 품은 건 원한이 아니다, 그건 영원한 사랑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랑.(296~297P)

박지운이 벌떡이는 마음을 조금만 들여다보며 덕분에를 찾아본다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악의를 쏟고 있는 순간 잠깐만 덕분에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박지운이 마지막 눈 감는 순간 뢰이한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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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글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책을 사고 읽었다.
변한게 있다면 이젠 돋보기를 써야 책 읽기가 편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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