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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본 고딕소설의 의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영국에서 유행한 소설,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된 성을 배경으로 유령, 살인 따위의 기괴한 사건을 주로 다루면서 신비감과 공포감을 나타낸다.”고 설명되어 있다.(N사 표준국어대사전)
성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유령이 등장하고 살인(사고)따위도 등장하는 고딕호러 소설이지만 공포보다는 남겨진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 먼저 읽혀진다.
진짜 존재했던 대불호텔과 작가의 전작인 “니콜라 유치원“을 쓰는 소설가의 등장은 아무리 “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잘 써지지 않는 소설 때문에 힘들어하던 작가인 ‘나’는 친구인 ‘진’을 따라 대불호텔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녹색재킷의 유령을 본다.
마침 대불호텔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화교인 뢰이한과 미국으로 이민 갈 계획을 품고 보증 서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연주, 그리고 고향인 월미도에서 좌우익의 대립으로 가족을 잃고 인천으로 나온 지영현과 글을 쓰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셜리 잭슨이 호텔에서 겪은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화교인 뢰이한이 당한 서러움은 현재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모습이 오버랩 된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연주는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고단함을 느끼게 하고 이념으로 갈라서 적이 되어버린 우리 모습은 지영현에게서 찾아진다.
여성, 외국인, 비주류, 이방인인 그들의 이야기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
소설은 으스스한 호텔의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단 한 문장이 가슴 절절한 연애소설로 선회하다.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p296)라는 글을 읽는 순간이었다.
정작 뢰이한과 박지운의 이야기는 대불호텔 속 사건에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한 문장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분명해진다.
‘진’과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진데 박지운이 가슴을 치며 내뱉은 말 같다.
나는 아들 둘을 낳고 살면서 남편과 아들들에게 얼마나 많이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는 말을 하고 살았을까?
물론 “네 덕분에, 당신 덕분에”라는 말도 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독기를 품고 가끔은 눈물을 글썽이며 ‘때문에“를 더 많이 외쳤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는 덕분에 보다는 때문에를 더 많이 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놈의 세상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노동자 때문에 페미니스트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면 악의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우리는 악다구니를 쓰며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살아가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뢰이한을 밀어내는 박지운처럼 살고 있다.
정작 자신과 주의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박지운. 남편이 떠난 후 억척스럽고 독하게 변해 버린 그녀.......그녀는 뢰이한을 너무나도 깊이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이도 살아가기 위해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가짜 마음을 만든다. 그러니 그녀가 품은 건 원한이 아니다, 그건 영원한 사랑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랑.(296~297P)
박지운이 벌떡이는 마음을 조금만 들여다보며 “덕분에”를 찾아본다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악의를 쏟고 있는 순간 잠깐만 덕분에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박지운이 마지막 눈 감는 순간 뢰이한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