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의 호시절
이강 지음 / 북드림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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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예술은 무겁거나 진지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것이다. 서랍, 이불장,찬장, 신발장,……소리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고 하찮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삶의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함께하던 일상들이 나에게는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p10)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의 호시절이 언제였던가 생각하게 된다.
10리나 떨어진 국민학교는 비오는 날을 빼고는 걸어서 다녔고 주전부리라고 해야 고구마, 감자, 옥수수가 다던 시절이였지만 생각해 보면 근심걱정없이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이 나의 호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너무 오래전이라 다 잊고 있던 어린시절이 작가의 글과 그림을 보는 순간 어제의 일처럼 펼쳐진다.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오곡리 할머니 댁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나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라 나를 ‘금강리’ 우리 마을, 우리 집, 우리 할머니 곁으로 데려다 준다.
이른 새벽이면 작두로 썬 짚에 콩 꼬투리랑 쌀뜨물을 넣고 쌀겨를 뿌려 소 죽을 끓이던 아버지의 모습은 물론 특유의 냄새까지 기억하게 해 준다.

지금 이맘때면 마당에 내려앉던 참새를 잡기위해 큰 소쿠리로 덫을 만들어 놀았고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서 입이 새까매진 줄도 모르고 군고구마를 먹었다.
설이 얼마남지 않으면 엄마는 추운 것도 불사하고 이불 빨래를 했고 저녁에는 할머니랑 마주 앉아 다듬이질을 할때면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엿을 고고, 유과를 만들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아버지까지 합세해 가래떡을 썰면 진짜 설이 얼마남지 않은게 실감나고 엄마가 장날에 어떤 옷을 사다줄까 오빠, 언니가 서울에서 뭘 사올까 기대하곤 했다.

여전히 시골집은 그대로지만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은 엄마만 남겨두고 모두 떠났다.
명절이 다가와도 그 왁자지껄함이나 설레는 기대감이 없고 더 이상 즐겁지가 않고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는 외갓집도 도시 우리집과 별 다를 것 없는 곳이 되버렸다.
그래도 언제나 그리운 곳이 바로 내 고향집, 우리집이다.
의자가 필요없는 낮은 책상과 아버지가 만들어 준 작은 책꽂이,벽에 걸어둔 옷을 가렸던 색색의 꽃이 수 놓아진 광목 광목 천까지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내 방이 더욱 그리워진다.

내 호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누군가와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작가의 색동이불 그림을 들여다보고 엄마의 밥상 그림을 들여다볼 것이다.
할머니의 자손들이 할머니를 찾아오던 우리집이 그리울 때면 작가의 할머니집의 추억을 읽을 생각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다 준 작가님게 감사드린다.

🎁좋은 책 읽게 해 주신 북드림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아 읽은 책이지만 솔직한 느낌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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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1-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추억여행으로 안내하는 그림책이군요?^^
 
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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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추천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전라도 입말의 정겨움과 사상가가 아닌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콧날이 찡해졌던 소설이다.

이번에 읽은 “자본주의의 적”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보다 앞서 나온 단편집으로 기존에 발표된 작품을 한데 묶은 작품집이다.
전라도 입말과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결이 비슷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포함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자본주의의 적은 무기력하게 보이는 방현남의 이야기에서 미친듯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살아도 큰일나지 않음으로 일러준다.
자꾸만 발뒤꿈치를 보게 되는 계급의 완성은 평생을 을로 산 주인공의 모습이 자꾸만 가슴에 박혀 훌쩍거렸다.
문학박사정지아의집 과 검은방 우리는어디까지알까 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여러 말을 쓰려다 자꾸 지우게 된다.
나의 어떤 글도 소설 뒤에 실린 정홍수 님의 해설 “빛과 어둠의 원무 너머”를 당연히 넘어 설수 없기에 이만 멈추려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일독하시기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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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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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러가지로 멋진 책이다.
보통 띠지는 가로로 책 표지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여자들의 왕’의 띠지는 세로에 끼워져 있고 문구 또한 앗쌀하다.

전통적 상상의 중심이동,
화끈한 여자들의 권력투쟁!
정보라 작가의 여성주의 소설집

3편의 연작 소설과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은 여성들이 사건에 중심에 서 있고 그 사건의 주인공은 여성들이다.
자발적으로 성에 들어간 여성은 용감하고 불을 뿜는 용은 악명에 어울리지않는 심성을 갖고 있다.

언제나 장군이 남성에게 통용되는 호칭이었다면 소설 속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은 여성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좌하고 여자는 왕이 되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밟고 일어선다.
남성의 성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는 심박하게 여성들의 업적으로 그려진다.

정보라 작가 특유의 그로데스크한 설정에 거부감이 없다면 대단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소설이다.
어쩌다보니 구입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읽게 됐다.
더 빨리 읽었더라면 여름,가을을 더 용감한 여성으로 살았을텐데 지금이라도 용감해지자!

📚이 책은 나오기도 전부터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 이야기”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는데,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읽어주시면 좋겠다.여자들도 상상의 주인공이자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그리고 전통적인 상상의 중심을 여성으로 옮기면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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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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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추리 소설의 좋은 점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이야기가 짧다보니 엉킨 실타래처럼 사건이 꼬이지않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지않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다 매 이야기마다 반전이 등장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소설 “백광”으로 적잖은 충격을 준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은 단편 미스터리 소설의 장점을 다 갖고 있는 책이다.
이미 작가의 다른 단편집 회귀천 정사와 저녁 싸리 정사를 읽은터라 어떤 느낌에 이야기가 펼쳐질지짐작했지만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9편의 작품 모두 매운 맛의 반전을 선사하고 있다.

분명히 내가 죽여서 아무도 모르게 처리한 아내의 시체가 엉뚱한 장소인 호텔에서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는 남자 이야기(두 개의 얼굴)를 시작으로 아동 유괴 사건에 숨겨진 비밀을 알려주는 경찰관(과거에서 온 목소리),장애를 가진 소녀의 목숨을 빼앗아가려는 누군가의 이야기(화석의 열쇠)는 예측가능한 반전이지만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남편과 아내의 의뢰를 받아 두 사람을 동시에 미행하는 흥신소 직원 이야기(기묘한 의뢰)와 어느 부분을 착각했나 다시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밤이여, 쥐들을 위해)도 있다.
사랑과 배신으로 얽힌 막장 아침드라마 급 이야기(이중생활)와 유명 배우가 자신과 꼭 닮은 남자와 얽히며 벌어진 이야기(대역)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영화 ‘다찌마와 Lee’에 등장인물처럼 대사를 읊조릴 것 같은 이야기(베이 시티에서 죽다)와 살인 현장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행동하는 초짜 선생님의 이야기(열린 어둠)는 작품이 쓰인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세상에 그런 멋이 있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보통의 인간 관계가 아닌 비상식적인 인간 관계를 다룬 소설에 일가견이 있다.
읽고나면 시원하고 개운하지는 않지만 사회 속 어딘가에 실제존재할 수도 있는 인물들일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출판사에서는 충격적인 반전에 소름 돋지 않았다면 100%로 환불해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나는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제공 받아 읽은 책이지만 구입했더라도 환불하지 않겠다.
반전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의 인간들이 나를 힘들게 할때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며 그래도 오늘 내가 만난 인간들은 양반이다고 스스로 위로하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제공 받아 읽은 책입니다.
재미있게 읽고 자유롭게 느낌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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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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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현대물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시대물인 미야베 월드 제2막을 더 좋아한다.
그 중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의 흑백의 방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흑백의 방에서 풀어놓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방을 나서는 등장인물들의 보며 세상 별 것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미시마야 시리즈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자는 단순한 청자가 될 수 밖에 없다보니 작가의 특기인 탐정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곤 했다.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새로운 “기타기타 사건부” 시리즈가 출간되었고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다.
모시던 오캇피기 센키치 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거리로 내몰린 처지가 된 기타이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장의 ‘붉은 술 문고’를 이어받게 된다.

기타이치는 문고를 팔기위해 시정을 돌아다니다 아이를 점지해 주는 효험이 있다는 그림을 받아 어렵게 낳은 아이가 죽고 그림 속 변재천님이 사라졌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받은 이들은 그림을 그린 술 도매상을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과연 기타이치는 그림에 얽힌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지.

📚거짓말이란 건 말이다, 기타이치. 십중팔구는 ‘이랬으면 좋겠는데’라는 바람이 언어로 들어간 것일 뿐이야. (p130)

어느 날 도시락 가게인 모모이에서 부부와 어린 딸이 독극물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 해결을 위해 도신을 비롯해 검시의 달인인 구리야마 슈고로가 사건을 파헤쳐가고 기타이치도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기타이치는 특별히 뛰어나거나 대단한 청년이 아니다.
주위에 함께 사는 이들을 살피고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어려운 이웃을 최선을 다해 돕고 모시던 주인의 뜻을 이어받고자 노력할 뿐이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탐정 소설이 아니라 기타이치라는 젊은 소년의 성장소설이다.
겸손한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그를 응원하는 센키치 대장의 아내인 마쓰바가 있고 중요한 순간에 등장해 도움을 주는 친구 기타지가 있다.
그의 심성을 아는 많은 이들은 그를 위해 크게 작게 돕는 모습은 혈혈단신인 그에게 내려진 축복처럼 느껴진다.

에도 시대 거리의 모습은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에서 기타이치는 얼마나 더 성장하고 공중목욕탕에서 불 피우는 일을 하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기타지가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된다.
뛰어나지 않아 더 매력적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기타이치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기타기타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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