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내친구의서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명탐정의창자 와 #엘리펀트헤드 를 읽으며 시리이 도모유키라는 작가의 머릿속이 어떻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했다.특수 설정이지만 탄탄한 스토리 구성은 물론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기괴하고 불쾌하고 속까지 불편하게 하는 표현이 쉴 새 없이 등장하지만 한번 잡은 책을 덮을 수 없었던 작가의 매력에 빠져 그의 신간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단편집으로 돌아왔다.모든 소설을 읽고 나면 몸풀기 정도로 느껴지는 ‘최초의 사건’은 명탐정이 되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의 좌충우돌 탐정 놀이지만 등장인물이 어린이여서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지구에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도착하고 32일간 64명의 인간 샘플의 지능을 측정한 후 그들이 세운 기준에 닿지 않으면 한 지역을 몰살시키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사회 규범상 범죄자이자 악인이지만 ‘말로 상대의 방어벽을 허물고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희귀한 능력의 소유자 기미코가 인간 샘플로 차출되고 과연 그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지 ‘큰 손의 악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불쾌한 냄새까지 전해지는 듯한 가장 참혹했던 이야기 ‘나나코 안에서 죽은 남자’는 일본 유곽 안 여인들의 참혹한 삶과 독살 사건은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이야기의 화자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틸리언의 손목‘에서는 인간이든 외계인이든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천사와 괴물’은 누구보다 어린 양들을 돌보는 데 힘써야 하는 성직자의 타락과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돼야 했던 프릭쇼 단원들의 이야기다. 밀폐된 욕실에서 벌어진 살인이 2년 전 예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세 가지의 추리는 무릎을 딱 치게 하고 추리 소설의 결말이 이리 슬플 수 있나 싶게 한다.모두 5편의 단편이 실린 <나는 괴이 너는 괴물>은 바로 이 맛에 작가의 책을 읽는다고 못 박게 하는 이야기들이다.다섯 편의 단편을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한 작가의 작품이 아닌 괴이한 이야기 앤솔러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소재의 소설로 말 그대로 잘 고른 랜덤 선물 박스 같은 소설집이다.외계인이 등장하는 sf 미스터리에서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드러내고 살인 사건의 진실 뒤에는 약자들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읽게 하기도 한다.혹시나 작가의 특수 설정과 잔혹함에 그의 소설 읽기가 두려웠던 독자가 있다면 전작보다는 덜 광적이고 덜 불편한 단편집에 도전하길 권해 본다.“예언, 밀실, 독살, SF, 다중추리, 논리성, 천재성, 추악함, 미친 상상력…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된다.”라는 뒤표지 문구가 거짓이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 차이 나는 언니와 동네 여자들을 상대로 불법 눈썹 문신을 하는 엄마, 그리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엄마의 조수를 자처하는 아버지를 가족으로 둔 ‘나‘는 중학교 평준화 시대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온조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꽤 좋은 성적이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왕따를 당했고, 중학생이 되면서 그때 왕따를 주도했던 달미와 단짝이 된다.스스로 치치림이라고 말하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이야기하는 열네 살 봄은 잔인하다.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자세히 모르고 읽기 시작한 탓에 2000년대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닌 여자의 회고담 정도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야기가 종반에 다다를 때쯤에는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슬프고 잔인한 경험은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부모는 그저 자신들의 알량한 사랑에만 가치를 두고 자식을 낳기만 하고 전혀 책임지거나 사랑하지 않는다.제대로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는 친절하게 다가오는 이에게 느닷없이 사랑을 느끼고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아이에게 제발 멈추라고 수없이 외치게 된다.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돌아와 읽으며 여전히 세상에는 아이들에게 치치림이라고 부르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아름답던 문장은 악마의 속삭임이 된다.여러 번 멈출 수밖에 없었던 치치림이 되는 순간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 문득 제대로 눈을 뜨고 보라고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고 눈 돌리고 외면하지 말라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기분이 들었다.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첫 번째 울타리는 가정이어야 하는데 대책 없는 부모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교육 현장과 사회가 수많은 치치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슬프고도 슬프다.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홀로 사는 레미 할머니가 아끼는 작은 서랍장의 맨 아래 서랍에 딸이 선물한 작은 초콜릿 상자를 넣어둡니다.깜깜한 서랍 안에는 바삭바삭한 쿠키를 담았던 빈 쿠키 깡통, 과일 맛 사탕이 담겼던 둥그런 빈 병, 장미 꽃다발을 묶은 노란 리본, 빨간 털 뭉치 등이 들어 있어요.어느 봄날 할머니는 둥그런 빈 사탕 병을 꺼내더니 막 완성된 딸기잼을 가득 넣었습니다.여름이 되자 서랍 안의 긴 유리병을 꺼내 여름 채소로 만든 피클을 채웠습니다.리본도 털 풍치도 차례차례 서랍에서 꺼내져 필요한 곳에 사용되는 데 작은 초콜릿 상자만 여전히 서랍을 지키고 있습니다.어린 시절 동그란 깡통에 든 쿠키가 선물로 들어오면 쿠키보다는 깡통이 욕심이 나 언제 과자를 다 먹고 깡통을 가질 수 있을까 기다렸지요.만약 엄마가 반짇고리나 다른 용도로 쓸 요량을 보이면 몇 날 며칠을 졸라서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그 깡통 안에는 작은 실핀도 넣고 공깃돌도 넣고 종이 인형도 넣어 아주 소중히 갖고 다녔던 추억이 생각납니다.레미 할머니의 서랍 속 물건들도 꼭 맞은 곳에 재사용됩니다.사탕 병이 딸기잼 병이 되고 남은 털실은 소중한 사람의 모자가 되고 오랫동안 서랍을 지켰던 초콜릿 상자도 아름다운 곳에 사용됩니다.서랍 속 물건들의 재탄생을 보며 그 물건의 깃든 사연까지 떠오르게 합니다.단순한 재활용에 대한 그림책을 넘어 아름다운 인생의 한순간을 볼 수 있어 더없이 사랑스러운 그림책입니다.
‘첫눈이 내린 날, 첫눈으로 만든 눈사람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출근한 영지‘는 근무하는 도서관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 활동이 어려운 시절 서비스를 시작한 메타버스 플랫폼 미러라클의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한다.현재 담당인 이정아는 최선을 다해 미러라클 동그라미도서관을 운영했지만 기간제 사서로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영지가 담당하게 된다.하지만 이정아가 떠난 후에도 무슨 이유인지 이정아의 아바타인 동그리는 미러라클 도서관 안에 머무른다.짧은 소설은 점수에 맞춰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해 사서가 된 영지와사서가 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서교육원을 다녔던 기간제 이정아 이야기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염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사서 고생> 일지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기 때문인 것 같아슬퍼지기도 하는 이야기다.
<본 도서는 비채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호러의 귀재 기시 유스케가 10년에 걸쳐 그려낸 작품“(p356)인 비 시리즈의 첫 번 #가을비이야기 는 일본 설화문학의 진수로 꼽히는 에도시대의 고전 <우게쓰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야기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의 절망과 쓸쓸함을 맛볼 수 있었다.이번에 찾아온 #여름비이야기 는 전작과는 다르게 인간의 악의와 그에 따른 공포와 형벌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5월의 어둠>비 오는 어느 날 은퇴한 노 교사 사쿠타에게 중학교 때 하이쿠부에서 활동했다는 옛 제자가 찾아와 죽은 오빠가 유작으로 남긴 시집의 하이쿠를 해석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하이쿠 부의 지도 교사로 활동했던 사쿠타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지금은 많은 것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처지지만 웬일인지 옛 제자가 건넨 시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보쿠토 기담>1930년 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요시타케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나비가 그려진 유리그릇을 본 후 검은 나비 꿈꾸기 시작한다.다시 찾은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지저분한 수험자 복장의 사내를 만나게 되고 꿈속에 나타나는 나비가 지옥으로 이끌 것이라 경고한다.<버섯>공업 디자이너인 스기하라는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한적한 시골에 단독 주택을 구매 후 가족과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어느 날 아내는 부부 싸움 후 아들과 집을 나가고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사촌 형 쓰루다가 스기하라의 집을 찾았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버섯이 온 집안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하이쿠, 곤충, 버섯을 기반으로 쓴 소설은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비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선뜩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특히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를 소재로 한 <5월의 어둠>은 계절성을 나타내는 시어를 짚어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지만 신선하게 느껴진다.세 편의 소설은 공통점이 전혀 없는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인간의 추악함과 악의를 다루고 있고 범죄를 저질른 이들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걸 보게 한다.끊임없는 기억의 굴레에 빠진 남자와 향락에 빠져 죄를 저지른 남자, 그리고 재물에 눈이 먼 남자의 잔혹함의 끝은 그들이 저지른 죄의 크기만큼 죗값을 충분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늘은 무심하지 않다는 뜻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