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이 나는 언니와 동네 여자들을 상대로 불법 눈썹 문신을 하는 엄마, 그리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엄마의 조수를 자처하는 아버지를 가족으로 둔 ‘나‘는 중학교 평준화 시대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온조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꽤 좋은 성적이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왕따를 당했고, 중학생이 되면서 그때 왕따를 주도했던 달미와 단짝이 된다.스스로 치치림이라고 말하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이야기하는 열네 살 봄은 잔인하다.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자세히 모르고 읽기 시작한 탓에 2000년대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닌 여자의 회고담 정도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야기가 종반에 다다를 때쯤에는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슬프고 잔인한 경험은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부모는 그저 자신들의 알량한 사랑에만 가치를 두고 자식을 낳기만 하고 전혀 책임지거나 사랑하지 않는다.제대로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는 친절하게 다가오는 이에게 느닷없이 사랑을 느끼고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아이에게 제발 멈추라고 수없이 외치게 된다.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돌아와 읽으며 여전히 세상에는 아이들에게 치치림이라고 부르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아름답던 문장은 악마의 속삭임이 된다.여러 번 멈출 수밖에 없었던 치치림이 되는 순간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 문득 제대로 눈을 뜨고 보라고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고 눈 돌리고 외면하지 말라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기분이 들었다.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첫 번째 울타리는 가정이어야 하는데 대책 없는 부모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교육 현장과 사회가 수많은 치치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슬프고도 슬프다.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