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령
한상언 그림, 김장성 글 / 여우고개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원스럽게 큼지막한 판형의 책은 표지그림부터 궁금증을 일으킨다.
뒷모습의 두 사람은 놀부 부부가 분명한데, 귀신도 도깨비도 아닌 것이 왕방울 눈에 두툼한 입술, 험상궂은 인상에 철퇴를 들고 박 속에서 연기와 함께 나타난 사내는 장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 대체 누구인지?
내가 알고 있는 흥부 놀부 이야기 어디에도 장수의 모습을 한 사람이 박 속에서 나온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장을 열어 보니 욕심 많고, 심술궂은 얼굴로 가여운 흥부의 발을 지긋이 밟고 있는 놀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흥부 놀부 이야기다.
과장되고 익살스럽게 그려진 그림과 판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글들이 잘 어울려 소리내어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다.
스물 네댓이나 되는 자식들과 형님 집에서 무일푼으로 쫓겨난 흥부 네는 게딱지만한 집에 살면서 추운 겨울을 나게 되는 데, 그 많은 흥부 자식들은 똑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다.
쪼그리고 우는 놈, 초가집 추녀에 달린 고드름이라도 따먹으려고 기를 쓰는 놈도 있고, 옷이 없어 네 녀석이 줄줄이 이불로 만들 옷을 입고 오줌을 누기도 한다.
다 쓰러지는 집 처마 밑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만으로도 추운 겨울 배고파 아우성치는 흥부네 집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러저러하여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달 같은 박 세 통이 열리고 박죽이라도 쑤어 끼니 이을 생각에 박을 타기 시작한다.
박 속에서는 쌀이며 옷가지며 세간 살이, 금은보화가 막 쏟아지고 고래등같은 기와집까지 얻게 된다.
흥부가 부자 되었다는 소식에 놀부도 그 길로 제비를 몰러 나간다.

  때는 이미 겨울이라 제비 볼 리 없건마는
  놀부란 놈 제비에 눈이 단단히 뒤집혀
  그저 날아다니는 건 죄다 제빈 줄로만 알고
  까막까치를 봐도 "내 제비!", 참새 콩새를 봐도 "내 제비!",
  두루미 황새를 봐도 "제비, 제비"하며 쏘다닌다.
  끼니는 삼시 세 때 수제비, 칼제비만 먹고,
  짐승을 말하자면 족제비만 사랑하고,
  꽃이라면 제비꽃, 재주라면 공중제비.
  그렇게 제비 타령으로 긴 겨울을 다 보내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놀부도 박씨를 얻게 된다.
합천 해인사 된장독 만한 박 네 통을 얻은 놀부도 박을 타는 데, '능천낭'을 들고 나타난 노인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병자들과 거지들이 떼로 나와 온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고 만다.
마지막 남은 박은 차마 못 타고 버리려고 하는 데 저절로 열린 박 속에서 드디어 표지 그림의 장수가 등장한다.
바로 제비와 같은 '비'자 돌림의 장비로 제비 사촌의 복수를 위해 나타난 것이다.
싹싹 빌고 빌어 목숨을 건진 놀부는 찾아 온 흥부와 얼싸 안고 울며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대 히트를 쳤던 CF가 먼저 생각이 났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동진 선생님이 나오셔서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멋들어지게 창을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떤 제품의 광고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우리 것의 소중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듯 소중한  문화유산중 하나인 우리의 판소리를 그림책으로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줄 만한 책이다.
마음씨 착한 흥부는 복을 받고, 마음씨 나쁜 놀부는 벌을 받는 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에 재미있는 그림과 소리내어 읽어야지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듣는 아이도 읽어주는 어른도 함께 흥이 난다.
전에는 가끔 이기는 했지만 TV에서 흥부가를 들을 수도 있었고, 꼭 책이 아니더라도 할머니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맨 처음으로 자리 잡은 흥부가도 책으로 읽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할머니가 들려줬던 게 분명하다.
더 이상 할머니에게 흥부가 듣기가 쉽지 않은 요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 되어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질퍽한 해학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설 2005-06-2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