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가벼운 여행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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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쏜살문고 여성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인 토베 얀손의 <두 손 가벼운 여행>. 맞다, ‘무민 시리즈‘의 작가 토베 얀손! 함께 출간된 경장편 <여름의 책>도 함께 예약해두었는데, 단편집 <두 손 가벼운 여행>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쯤 되면 쏜살문고 시리즈를 한 권씩 격파하는 중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계속 보니 표지도 디자인도 크기도 너무 사랑스럽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작고 얇은 책은 별로라고 했던 사람..저..)



<두 손 가벼운 여행>은 표제작을 비롯해 열 두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제각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들로 ‘편지 교환‘과 ‘팔순 생일‘, ‘두 손 가벼운 여행‘ 세 편이 특히 인상깊었다. 읽는 동안 내 머릿속 순하고 무해한 무민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야기가 어딘가 불안하고 짖궃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음사 블로그에서 김용언 작가의 리뷰를 읽고서야 그 생각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평대로 소설가로서의 토베 얀손은 셜리 잭슨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계보를 잇는 듯하다. 어딘가 씁쓸하고 냉소적이야! 주인공들이 전부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니까, 혼자 있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혹은 여행을 떠나면서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



북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녀가 나고 자란 핀란드가 더욱 궁금해졌다. 트위터의 ‘오세요 핀란드‘ 계정이 생각나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면 오세요 핀란드‘라는 멘션이 마음에 길게 남았었다. 긴 밤을 견디기위해 사람들은 자꾸 술을 마신다던 그 나라. 계정주님 잘 계신지..)



어쨌든, 우리가 흔히 무민의 작가로만 알고있는 토베 얀손은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큰 성과를 이뤘다. 더 나아가 무대미술, 소설, 시, 일러스트 등 여러 분야을 자유롭게 오고갔던 예술가였다고. 쏜살문고 시리즈를 시작으로 더 많은 그녀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읽게 될 <여름의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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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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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구매한 책들 중 기대했던 작품. 과연 대단했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올해의 책들 중 하나로 선정한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엄격한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를 둔 타라는 전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ACT(대학입학시험)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간다. 그녀는 이후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완료하게 된다. 혹자는 명문 학교의 이름에 혹해서 ‘홈스쿨링을 통한 명문대 입학기‘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으나,이 책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책은 타라라는 여성이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타라가 대학에 입학해서 마주한 세계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정부와 현대의학을 불신하는 부모님 곁에서 그 신념을 고스란히 믿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으니 보편적으로 상식이라고 통하는 것들도 타라에게는 전부 생경한 것이었다. 마치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타라는 모든 것을 다시 배워나간다. 그렇게 타라는 이전과 다른 모습,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문제는 과거와의 간극이다. 온전히 미워할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부모님, 아이다호에 여전히 존재하는 그녀의 과거 말이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악마가 씌였다고 말하며 회개하고 단죄하라고 한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온‘ 타라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될 수 없다.



500여페이지에 이르는 내내 타라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거의 타라와 현재의 타라는 양립할 수 있는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배움은, 교육은, 타라로 하여금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진정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들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라는 말! 타라는 결국 자기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그 지난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타라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자아를 찾는 과정을 글로 써낸 용기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용기에, 자기 자신이 되기를 멈추지 않는 그 용기에 큰 힘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용기를 얻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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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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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의 새 소설 <0 영 ZERO 영>! 0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제목이라니. 심호흡을 하고 집어든 이 책은 1인칭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자기고백으로 이루어져있다. 주인공은 세계를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양육강식의 논리로 이해한다. 그녀는 교묘하게 주변 사람들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다. 소설 속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독자에게로 돌아와서는 검은 속내를 있는 그대로 그러낸다.



이 소설의 무서운 점은 주인공의 고백을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왠지 그녀의 편에 서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정말 세계는 잡아먹는 이와 잡아먹히는 이로 이루어져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잡아먹는 쪽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주인공은 은근하고 교묘하게 자신의 쪽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파괴하는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말이다.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인공. 그녀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 남자친구, 제자 등 주변인물들을 타락시킨다. 이러한 속마음은 절규가 되어 터지는 ‘죽어! 죽어! 죽어!‘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에서야 드러난다. 그녀에게 식인 세계관이 생겨난 원인은 어린시절 독일에서 포식자 크리스티나를 만났던 경험과 세계를 공허함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선도 악도 교훈도 없는 세계‘, 그러니까 그녀는 제로의 세계에서는 역설적으로 파괴가 구원이라고 믿는 것이다.



소설 뒤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다행히 주인공에게 설득당할뻔한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빠져드는 김사과 소설의 매력. 뒷표지를 덮고 나니 결국 <0 영 ZERO 0>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뿐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독자에게 거꾸로 묻고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당신은 포식자의 길을 택한 주인공을 탓할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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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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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느라 어제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게 한 바로 그 책,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둔지는 꽤 되었는데 시간적 배경이 배경인지라 감정적 타격이 있을까 걱정되어 미뤄두었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곧잘 하는 편이고, 특히 전중 혹은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대체로 읽는 동안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물론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적인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아예 관련 작품들을 통째로 피하는 편이다.) 그러다 읽을 책은 많은데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고르고 고르다 펼쳐들었다.



우려와는 달리 아주 몰입하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이 소설은 평범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로자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독일인이며 결혼한지 1년밖에 안 된 상태에서 남편이 전장에 자원해 홀로 남겨졌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시부모님의 집에 피신온 상황에서 그녀는 히틀러의 시식단으로 불려간다.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미리 먹으며 독성을 검사하는 일이다. 시식단 10명은 모두 여성으로, 히틀러의 열렬한 추종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음식이 주는 희열과 죽음의 공포가 매 순간 함께 경험한다.



이 소설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로자만 해도 계속해서 모순된 입장에 처한다. 히틀러의 시식단으로 일하는 것 자체도 그렇고 낯선 마을에서 동료 여자들과의 관계나, 남작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는 일이나, 심지어 사랑을 하는 일도 그렇다. 전쟁 상황에서 본능적인 생존욕구와 신념을 지키는 것 사이의 갈등은 로자같은 평범한 이들에게도 계속해서 주어지는 시련이다.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인간됨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여성들간의 관계가 기억에 남는다. 로자를 포함한 10명의 시식단 여자들은 서로를 경계하다가도 공모의식을 느끼고 연대한다. 그러다가도 누구는 누군가를 배반한다. (며칠 전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기 때문인지 여성간의 연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공상을 펼치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사랑. 참혹한 전쟁 중에도 누군가의 손길을, 함께있다는 감각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사람들. 정신없이 읽히는 소설이나 생각할 거리를 뭉터기로 던져준다.



실존 인물 마고 뵐크의 인터뷰를 계기로 쓰여진 책이라 더욱 놀랍다. 시식단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는 70여년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녀의 실제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고. 그와는 별개로 이 소설의 결말도 참 놀랍다.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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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스케치 -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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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미완성) 회고록. 파편화된 기억들의 조각. <지난날의 스케치>는 그녀가 로저 프레이의 전기를 쓰던 1939년 틈틈이 적어내려간 회고록으로 그녀의 어린시절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이복언니 스텔라의 죽음, 아버지와 이복형제의 폭정, 그리고 언니 바네사와 이 모든 것을 겪어야했던 상황 말이다.



울프의 글쓰기는 파편처럼 현재에서 시작되어(로저 프레이의 전기를 쓰다 막히는 순간으로부터) 밀물과 썰물처럼 과거로 흘러들어갔다가 나오기를 계속한다. 구체적인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장면도 있지만 관념적인 언어로 설명하며 넘어가는 장면도 있다. 읽기 어렵지는 않았으니 다만 그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통이 나이가 든 뒤에도 얼마나 생생하게 남아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미 <등대로>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써낸 뒤에 적어내려간 회고록이라, 글쓰기를 통해 얼마간 그 고통을 덜어낸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짧은 회고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아주 예민하고 섬세하게 순간의 느낌이나 감정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글로써 풀어나가는게 얼마간 성공했다는 점이다. 말로써 전달하기 어려운, 오로지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영적인 무언가를 언어화하는데 성공한 이들이 있다면 그 중 한명은 단연 버지니아 울프일테다. 그리하여 글 전체적으로나 울프가 묘사하는 그녀 자신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실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한 사람은 아주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오히려 고정된 어떤 한 모습만으로 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거짓에 가까우리라. 또한 기억은 원래 파편적이고 주관적이지 않은가.



˝I see myself as a fish in a stream; deflected; held in place but cannot describe the stream.˝_Virginia Woolf



+) 민음사 쏜살문고 여성문학 시리즈 디자인부터 작품선정까지 정말 마음에 든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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