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사과의 새 소설 <0 영 ZERO 영>! 0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제목이라니. 심호흡을 하고 집어든 이 책은 1인칭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자기고백으로 이루어져있다. 주인공은 세계를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양육강식의 논리로 이해한다. 그녀는 교묘하게 주변 사람들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다. 소설 속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독자에게로 돌아와서는 검은 속내를 있는 그대로 그러낸다.



이 소설의 무서운 점은 주인공의 고백을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왠지 그녀의 편에 서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정말 세계는 잡아먹는 이와 잡아먹히는 이로 이루어져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잡아먹는 쪽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주인공은 은근하고 교묘하게 자신의 쪽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파괴하는 것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말이다.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인공. 그녀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 남자친구, 제자 등 주변인물들을 타락시킨다. 이러한 속마음은 절규가 되어 터지는 ‘죽어! 죽어! 죽어!‘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에서야 드러난다. 그녀에게 식인 세계관이 생겨난 원인은 어린시절 독일에서 포식자 크리스티나를 만났던 경험과 세계를 공허함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선도 악도 교훈도 없는 세계‘, 그러니까 그녀는 제로의 세계에서는 역설적으로 파괴가 구원이라고 믿는 것이다.



소설 뒤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다행히 주인공에게 설득당할뻔한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빠져드는 김사과 소설의 매력. 뒷표지를 덮고 나니 결국 <0 영 ZERO 0>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뿐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독자에게 거꾸로 묻고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당신은 포식자의 길을 택한 주인공을 탓할 수 있겠느냐고.

​www.instagram.com/vivia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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