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클라우드 5
유윤종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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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공연 실황을 반복해서 듣곤 했던 오페라가 한 편 있다. 바로 푸치니의 <나비 부인>이다. 그 이유인즉, 연극 뮤지컬을 좋아하는 나는 한동안 2012, 2014, 2015년 공연되었던 김광보 연출/데이비드 헨리 황 대본의 연극 <M.butterfly>에 미쳐있었는데, 이 연극이 바로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극 안에 오페라의 몇몇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오페라 선율이 장면 전환에도 자주 쓰였기 때문에, 연극<M.butterfly>가 보고 싶을 때마다 대신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들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푸치니>에서는 오페라의 절정을 향유했던 작곡가 푸치니의 삶이 그가 내보인 대표작품들을 중심으로 그려져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푸치니가 베르디를 잇는 차세대 작곡가로 선정되어 꽤 오랜 시간 리코르디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과 평상시에는 게으르다가 마감이 임박해서야 일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점(인간적!)이다. 특히 <라 보엠>을 작곡할 때 같은 시기 경쟁자 레온카발로 또한 같은 소재를 작업중이었다는 일화도 흥미로웠다. 어둡고 애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푸치니 공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책에 소개된 아리아들을 몇 곡 찾아 들었는데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는 몇 번을 돌려들었는지 모른다. (개정판이 나올때 <베토벤>편처럼 이 책에도 QR코드가 들어가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는걸 보면, 정말 푸치니가 대단한 작곡가는 맞구나 싶었다. 오페라의 시대는 저물었을지 몰라도 선율에 실린 감동은 영원하다. (물론 마리아 칼라스도 만세.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마스터 클래스>도 참 좋았었는데.)



그러나, <나비 부인>에서 그려진 초초상(일본인 여성)만 봐도 푸치니의 시선은 명백히 오리엔탈리즘적이며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사실 내가 연극 <M.butterfly>를 좋아하는 이유도 <나비 부인>의 오리엔탈리즘을 꼬집어 되비추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실린 대강의 줄거리들을 읽어보니 그의 다른 작품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게 내 생각이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희생하는 여성상하며! 아, 작품의 완성도나 서정성과는 별개로 내게는 소생 불가다. 책 속에 적혀있어 알게되었지만 화려한 여성 편력까지. 예술가와 예술은 동일시되어야하는가, 과거의 예술가들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둬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내게 있어서 현재진행형이지만, 어쨌든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다. 그의 오페라 속 아리아들이 애절하고 감미롭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아주 명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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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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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책. 노석미 화가의 에세이 <매우 초록>. 처음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단번에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표지 그림의 녹색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난다 출판사에서 나온 에세이라는 이유도 한몫했고. 그래서 서포터즈들에게 책을 보내주신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첫 번째로 골랐다.



이 책은 노석미 작가가 양평에 집을 짓고 살며 쓴 글들이 모인 에세이집이다. 중간중간에 그림 작품들이 들어가 있어 더욱 다채롭다. 글을 몇 편 읽고 문장이 참 단정하고 정갈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박하고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문장. 그래서 좋았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유머러스한 문장을 만나면 어쩐지 사노 요코의 글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치는 일들이 많은 요즘 따뜻한 차를 옆에 두고 <매우 초록>을 저녁마다 조금씩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내게 귀농이나 귀촌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다. 농사? 선인장도 죽이는 사람이 나다. 벌레? 잠자리도 손으로 못 잡는 사람이 나다. 그런 내게도 책을 읽으며 ‘도시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사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저자가 ‘노동의 대가가 바로 잠깐의 어떤 소유, 기쁨‘이라며 잠깐의 아름다움을 위해 목련 나무를 심었다는 일화와 목화를 심으며 ‘촉촉하고 산뜻하고 따스함‘을 느꼈다는 일화를 읽을 때였다. 나만의 정원을, 나만의 초록을 가꾸는 기쁨은 분명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런가 하면 ‘요즘 것들은 희생정신이 없어서 결혼을 안한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네 저도 희생정신이 없어요‘라고 대뜸 말했다던 일화에서는 육성으로 빵 터져서 한참 정신을 못 차렸다. 커플로 사는 이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지 않듯이 싱글로 사는 이들에게도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 공감, 대공감이다. 아무튼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빵 터지곤 해서 읽는 내내 기쁘고 즐거웠다.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음, 오늘 나의 노력 : 프리지아를 조금 사 왔는데 노란색이 이토록 다채로운 줄, 꽃향기가 이토록 달콤한 줄 새삼 느끼고 있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의 일상을 가꿔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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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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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집필한 바 있는 정재찬 교수의 신작이다. 마음, 공부, 열애, 노동 등 열 네가지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는 이번 책은 시를 중심으로 쓰여진 ‘교양 강의‘다. 시는 물론이고 알랭 드 보통, 롤랑 바르트와 같은 학자의 저서, ‘기생충‘과 같은 영화, 방탄소년단의 음악 등 다양한 소스들이 등장하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야말로 따뜻한 교양 강의. 독자들이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썼다는 저자의 말 그대로다. 누가 읽어도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특히 시를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부담없이 시를 만나기 좋은 책으로 권하고 싶다. 그 외에도 ‘힐링 감성 에세이‘는 읽고 싶지 않은데 책에서 위안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교육‘이었는데,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를 더 많이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최근 안나 윈투어의 인터뷰 영상에서도 ‘한가지를 잘 하는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듣고 바로 메모해두었었는데, 저자 또한 전문가보다는 아마추어(애호가)를 양성하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반가웠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끝없이 배우는 존재이니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클립을 본 적이 있는데 참 부드럽고 따뜻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둥글고, 부드럽고, 따뜻한 문장.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위로를 전하는 문장 말이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라는 부제에 더없이 공감한다. 결국 저자는 시와 다양한 소스들을 빌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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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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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을 처음 읽었던 날을 기억한다. 도서관에서 너덜너덜해진 책을 빌려 읽었는데 서문을 읽자마자 가지고 있던 노트를 펼쳐 이후 거의 대부분을 필사하며 읽었다. 개정판이 나왔을 때 기쁘게 구매했지만 필사했던 노트도 아직 가지고 있다. 그 때만큼 책에 깊이 몰입해서 읽고 옮겨 적었던 날은 아직까지 없었던 것 같다. 서문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문장을 머릿속에 새기며 이후 정희진의 글을 열심히 따라읽었다. 페미니즘 공부의 시작이기도 했고.

그리고 2020년에 만난 정희진의 글쓰기 첫번째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이 책을 한 번 읽은 것으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열심히 밑줄긋고 메모하며 읽었지만 영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계속 펼쳐보며 곱씹어야 할 것 같다. 배움, 깨달음, 인식의 확장.

이 책에는 한겨례에 연재되었던 서평글이 실려있는데, 전반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아우르며 근 몇 년간의 한국 정치, 세월호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글들이 가득하다. 저자의 글을 읽는 첫번째 이유가 그 사유의 폭을 뒤따라가며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함이라면 두번째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다. ‘나도 늘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르침대로 쓰지 못하고 성질대로 쓰다가 길을 잃는다‘(89p), ‘나는 한심하게도 특정한 종류의 인간형을 경멸하는데 열정을 쏟는 ‘뒤끝의 끝판왕‘이다.‘(145p)와 같은 ‘모르겠고 그냥 말해버리자 에잇‘류의 자기고백을 읽을 때면 쿡쿡 웃다가도 표현의 가식없음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벼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글들이라는 뜻이다. 아주 좋은 의미에서.

한 개인은 소수자성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에 예민한만큼 특권에도 예민해졌으면 좋겠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식인도 성인(聖人)도 아닌 일개 범인(凡人)에 불과하지만, 더 많이 배우고싶고 더 노력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정희진의 글을 읽으면 이 다짐을 계속 환기하게 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정희진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의 글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렇게 노력했으면 좋겠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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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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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약간)



2권도 정신없이 읽어치웠다.



모두의 예상대로 캐머런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기독교 캠프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약속‘은 동성애 매력 장애를 교정하기 위한 단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모두의 예상대로 캐머런은 이미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저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그저 저라고 생각할 뿐인걸요.˝) 성정체성이 교정하고 말고 교정되고 말고의 무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숨기는 일에 너무 지쳤기 때문이고, ‘선의‘로 무장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강제한 행동이었기 때문이고, 10대 소녀로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곳에서 캐머런은 제인과 애덤을 만난다. 그들과 헛간에서 몰래 대마초를 피우는 시간들 덕분에 캐머런은 지워져가는 자신을 붙잡는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하게 만드는‘(202p) 캠프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다. 제인과 애덤, 캐머런은 서로를 규정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관계다. 어쩌면 이들이 자기혐오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캐머런이 의구심을 가질지언정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는 인물인 것이 정말 좋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나에게 죄를 지었다고, 악마가 씌였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캐머런이 부모님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들은 그녀에게 크게 상흔을 입힐 만큼 영향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냉소로 무장하곤 하는 캐머런이지만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일 뿐임을 알고 있는 그 모습은 강인하고 아름답다.



캐머런의 반짝이는 10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녀의 여름. ˝네가 지금 누구든, 그냥 있는 그대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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