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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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가 돌아왔다. 신작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시작이 남달리 강렬하다. 10대 소녀 조반니가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추함과 사악함의 대명사인 빅토리아 고모를 닮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것. 뒤이어 그녀가 어른들의 위선을 하나둘 깨달으며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 나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조반니의 변덕스러운 심경에 대한 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통 폭풍과도 같은 사춘기를 지날 때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갑작스럽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후회할 것이 분명한 행동을 섣불리 하게 되는지. 저자는 1인칭 시점을 빌어 조반니의 꼬이고 꼬인 감정들과 부모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모나고 울퉁불퉁한 조반니의 성장기를 애틋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어른들을 절대적으로 여겼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들의 이중성과 기만을 알게되고, 점차 그들과 비슷한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이 조반니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앞선 페란테의 소설들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오히려 이 소설만의 매력적인 요소가 곳곳에 가득하다. 강렬한 매력으로 조반니를 압도하는 빅토리아 고모라는 캐릭터, 지식인 부모의 딸로 태어나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불안을 표현하는 조반니, 여러 사람을 넘나들며 때로는 사랑의 증표가 때로는 파국의 씨앗이 되는 팔찌까지. 더욱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조반니의 행동에 경탄과 안타까움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어, 어서 다음 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엘레나 페란테가 영원히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 한겨레에 실린 페란테의 서면 인터뷰가 정말 좋으니 이 책을 다 읽고 인터뷰도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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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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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 소설은 초등학생 영초롱이 제주 고고리섬의 고모와 잠시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영초롱의 유년시절과 함께 그려지는 제주의 풍경, 제주의 역사와 아픔, 제주 사람들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 판사가 된 그녀가 제주로 발령을 받으며 계속된다. 영초롱이 어린시절 친구인 복자와 재회하게 되는 것도 다시 제주로 온 다음의 이야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린시절 각자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단짝이 된 영초롱과 복자가 어른들의 일로 멀어지게 되는 장면이다. 제주 섬의 풍경과과 어우러지는 ‘어른같은 기만의 기술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 말이다. 제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잘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풍경과 인물들의 마음 묘사와 더불어 이 소설이 제주의 의료원에서 있었던 산재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만하다. 소설속에서는 이 사건이 어른이 된 영초롱과 복자가 다시 마음을 모으게 되는 계기, 그러니까 ‘나‘와 ‘너‘가 다시 ‘우리‘가 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이 사건을 빌어 회복의 시작을 힘주어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면 문장 문장이 그려내는 섬세하고도 정확한 위로에 매번 놀란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물들의 실패와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다정하게 살피며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문장들. 그중에서도 계속 기억나는 문장은, 저자가 고른 문장이기도 한 ‘실패를 미워했어‘다. 그러나 뒤이어 다짐해본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 하지 말자‘(243P, 작가의 말)고. 결국 이 소설은 최선의 사람이 되어보자는 다짐이기도 한 것 같다. 제주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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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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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뭐야. 내가 아는 피터 팬 아닌데? 처음 몇페이지를 읽고 당황했다. 극악무도한 독재자 피터라니.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피터는 잊어도 좋다. 네버랜드로의 두 번째 여행길, 팅커벨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잔혹동화에 더해 환상 미스테리를 겸지한 소설 <팅커벨 죽이기>를 읽었다.



<팅커벨 죽이기>는 <앨리스 죽이기>로 대표되는 ‘죽이기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피터 팬의 세계관과 네버랜드를 가져왔다. 시리즈의 전작들처럼 네버랜드와 현실의 이야기가 기묘하게 얽혀있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네버랜드의 등장인물들과 현실 속 인물들(아바타리)은 기억을 공유한다. 문제는 네버랜드의 등장인물이 죽으면 현실 속 아바타리도 죽는다는 것.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현실 속 인물들은 동창회 모임에 왔다가 폭설에 갇힌 상태다. 이들은 네버랜드와 현실 쌍방향에서 팅커벨을 죽인 범인을 밝혀내야만 한다.



잔인하고 기이하고 낯설고 충격적이었던 소설.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범인의 운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끝까지 읽고나니 피터 팬이 왜 그렇게 뒤틀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행복한 동화 피터 팬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다면 섣불리 집어들지 말 것. 이미 ‘죽이기 시리즈’의 팬이라면 각오하고 시작할 것!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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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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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전에는 그의 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나는 누군가가 공유한 그의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의 14페이지에 실린 글이다.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내 이야기인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투병 후 그의 글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삶으로 겪어낸 것을 써낸 글은 강력하다. 2018년 혈액암을 판정받고 지독한 투병생활을 거친 저자가 자신이 통과한 시간들에 대해서 글을 썼다.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외로움과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지는 말라고 말이다. 저자의 문장은 냉소적이나 냉혹하지는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분명한 위로가 느껴진다.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했다. 이 글들은 진짜다.



종류나 정도는 다를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특히 절망의 낭떠러지에 서 본 이들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고통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 먼저다. ‘과거는 변수일 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 같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불행을 다스린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261P)



힘내라는 말보다 이 말이 더 낫다. 살아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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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uchamps 아 무샹 -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보낸 45일
김모아 지음, 허남훈 사진 / hnh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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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글과 사진에 담긴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아주 잠깐 나만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 허남훈 감독과 김모아 작가가 45일간 프랑스 시골 마을 무샹에서 보낸 날들을 기록한 <아 무샹 À Mouchamps>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의 평온함, 다정하고 세심한 마음, 고민과 다짐, 그리고 사랑이 한 권의 책에 녹아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일상속에서의 사유를 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글과 사진들을 따라가다보니 마치 내가 무샹에 있는 것 같았다. 페이지마다 자주 멈춰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겪은 뒤 그것을 내보이는 용기에 대해서,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하는대로 살아지는 것에 대해서. 조급해질수록 멈춰야하고 불안해질수록 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마음만 조급해서 브레이크없이 내달리고 있었던 요즘, 잠시 멈추고 생각할 기회가 되어준 이 책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를 뒤흔든 것은 책 속에 담긴 다정하고 세심한 마음이다. 무샹 가족들로부터 두분에게, 두분으로부터 독자인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그 마음. ‘사소한 것 하나 없으니 정중하게 대해야지‘(155p). 나 또한 스치는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요즘과 같은 때일수록 일상 속에서 더욱 다정해지자고.



조급하고 고단했던 며칠동안 기대어 있었던 책들 중 한 권.



그리고 나는 두 분의 팬이 되었다.



(*작가님께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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