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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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신작 소설 <내가 있는 곳>. 저자가 두 권의 산문집에 이어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어로 쓴 작품이다. 사실 앞선 두 산문집과 비슷한 판형으로 출간되어 나는 당연히 이번 책도 산문집인줄 알았다. 장소에 따라 짤막하게 쓰여진 글의 구성 때문에 읽는 내내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옮긴이의 말에 이르러서야 이 책이 소설임을 알았다.

이 책에는 주인공의 이름도 나이도 사는 도시도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다. 화자는 1인칭 화법을 통해 간결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삶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숨기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담담하다.

작가가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썼기 때문일까. 다와다 요코의 <용의자의 야간열차>가 드문드문 생각났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모습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줌파 라히리가 그려내는 세계는 두가지다. 그 사이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혹은 속하려하지 않는 주인공들이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40대로 추정되는 독신 여성이지만 내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착각했듯 소설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이야기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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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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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로 잘 알려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 그녀의 소설은 <아메리카나> 이후 두번째로 읽는다. (<아메리카나>도 새롭게 커버를 단장해 출간되었다. 추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로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고 둘째로 표지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소설 속 배경은 나이지리아. 가톨릭이며 원칙주의자이자 자수성가형 재벌이고 엄격한 가부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 '킴벌리'의 성장 소설이다. 오빠 자자와 킴벌리는 은수카에 사는 고모를 방문하면서 점차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억압적이라는 것과 이제껏 겪어온 것과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인칭 소설인만큼 킴벌리의 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신부님을 통해 사랑에 대해 알게 되기도 하고.

친구에게 이 책을 읽고 있다며 표지를 보여줬더니 '우울할 것 같다'는 답을 받았다. 꽤 정확한 진단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억압적이고 우울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나이지리아라는 배경과 가끔씩 들어가있는 이보어가 낯설기도 했지만 이 소설 속 아버지가 너무나 경악스러울 정도로 억압적이어서 페이지를 넘기기가 곤혹스러웠다. 억압적이기만 하면 마음껏 미워할수라도 있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질게 상처를 주고 '다 너를 위해서다'라며 스스로 괴로워하는 장면은.. 묘하게 읽는 사람을 참담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또 소설적 배경이 한정적이어서 더욱 답답했다. 주인공 킴벌리는 집-고모네 집을 오가며 억압-자유를 이리저리 횡단하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킴벌리의 유년시절의 끝을 다룬 이야기이다보니 공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좁은 부분만을 오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게 내가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보라색 히비스커스>에 그려진 이야기가 어떤 곳에서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일 것이다. 오히려 소설보다 더 상황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더욱 참담해진다. 마음껏 증오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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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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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으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신의 아이>. 부모의 사랑도 호적도 없이 살아온 천재 소년 마치다 히로시가 주인공이다. 마치다는 '사람을 머리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한다'고 말하는 천재이지만 사람의 온기를 겪어본 적이 없기에 무슨 일에서건 냉담하다. 그런 그에게 엿보이는 유일한 인간적인 면이라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미노루를 챙기는 모습일 것이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자그마치 1000페이지나 되는 이 소설은 마치다의 성장과 그런 그를 이용해먹으려는 어두운 조직의 우생론자 무로이 진이 엮고 엮이는 이야기다. 흥미진진한 미스테리는 아니고 결국 '인간의 온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따뜻한 소설이랄까. 사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 같다. 마치다와 무로이 진의 접전이 본격적으로 그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치다가 사랑을 아는 인간으로 급성장하지도 않는다. 읽는 내내 미적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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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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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패리스가 세번째 작품 <브링 미 백>으로 다시 돌아왔다. <비하인드 도어>는 기대없이 읽었다가 결말이 예상치 못하게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브레이크 다운>은.. (생각이 안나서 직접 리뷰했던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아봤다.불과 작년인데 너무나 낯선 나 자신.. 제목: [책리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책들! 꿀잼보장!) 싱거웠지만 재미있었다. 그럼 <브링 미 백>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긴 했는데 아... 속아버린 느낌이다.

소설은 12년전 실종된 여자친구 레일라의 흔적을 핀이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현재 핀이 레일라의 언니인 엘렌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점! 작가가 전 작품들에서는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독자를 죄어들게 하는 '가스라이팅 심리 스릴러'를 구현해냈다면 <브링 미 백>에서는 실제 폭력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폭력 장면은 과거의 이야기로 잠깐 등장하며 역시 주된 내용은 편지과 화자의 교차를 통해 점차 드러나는 비밀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다. 질질 끄는 느낌. 결말의 반전도 놀랄만한 건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주인공들에게 매력이 없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은 핀은 물론이고 레일라나 엘렌 모두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혹은 별로 매력 포인트가 없던지. 그나마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해리인데 그는 극조연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우발적이더라도 폭력을 휘두르는 애인을 만나지 말자는 것. 그 외에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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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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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의 한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바늘 사용으로 집단 에이즈가 발병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은 매혈 운동의 주도자였던 딩후이의 열두살 아들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독이 든 토마토를 먹고 요절해 땅에 묻힌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으로 말이다.

딩씨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피를 팔았고 그로 인해 병에 걸려 죽어갔다. 사람이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옌렌커는 이 고통과 절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너도 나도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다. 딩후이의 아버지만이 매혈을 주도한 것에 대해 주요 인물인 딩후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딩후이는 폐허가 된 마을 속에서도 부를 축적해나간다. 다른 이들은 속절없이 죽어갈 뿐이다. 일개 개인의 사과와 책임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절망 뿐인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희망이라면 딩량과 링링의 애절한 사랑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죽었고 묘까지 도굴당했다. 끝이 없는 재난 속에서는 주동자를 가려내기가 불가능하며 여전히 죽음만 맴돌 뿐이다.

옌렌커는 이 소설을 쓰며 '체력이 아닌 생명을 소모했다'고 회고한다. 이 책 또한 역시 중국 당국의 검열을 거쳐 출판이 금지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일체의 논평과 광고까지도. '어떻게 상부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와서 살펴보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마을이 되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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