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콘티니가의 정원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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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안경>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는 조르조 바사니 작품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파시즘 말기인 1938년부터 1943년의 이탈리아를 작중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홀로코스트 문학으로도 종종 분류되곤 하는 작품이지만, 사회 정치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다. 오히려 주인공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예리하게 다뤄내는 쪽이다. 실제로 바사니는 작가라면 ‘시인’이 되어 ‘순수하고 시적으로 무심하게’ 상황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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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바사니 또한 보편적인 인간이 겪는 우울과 고독,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덕분에 사회고발적인 문학을 잘 읽지 못하는 나도 기꺼이 푹 빠져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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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대부분은 주인공이 핀치콘티니 가문과 조우하며 미콜을 만나 관계를 다져나가는 장면들로 꾸려진다. 하지만 정작 나는 후반부 장면들을 읽을 때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할 수 없어 답답했다. 주인공에게 공감이 안되니 더 이상의 사색이 불가능했음은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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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을 통해서야 더 깊이있는 독서가 가능한 작품임을 깨달아 아쉽다. 이를테면 정원과 미콜 캐릭터의 상징성 같은 것.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주인공이 마음에 안드는걸 어쩔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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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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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문장도, 저자의 생각도 정갈하고 단정하다. 큐레이터와 미술사학자로 유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낀 저자의 깨달음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시 같다. 흔히들 여백의 미라고 하는 것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저자의 깊은 사색에 나조차도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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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기계문명의 발달로 항상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사는 오늘날, 아름다움을 즐기고 사색하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생각한다. 나만의 취향을 가지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시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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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적 안목과 감수성의 계발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34p)’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여 성공할 것을 강요당하는 이 시대에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일은 사치로 치부당한다. 사회 경제적 여건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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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진다. 당장 드는 생각은 시간을 내서 국립중앙박물관부터 다시 찾아야겠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여건에 맞춰 꾸준히 안목을 기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현대예술을 전시하는 갤러리는 일부러라도 자주 찾아가는 편인데, 국립박물관은 중학생 때 이후 방문한 기억이 없다. 그 때는 지겹고 따분하기만 했는데 지금 보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조금씩이나마 성장하여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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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의 철학자 - 사르트르, 니체, 바르트
프랑수아 누델만 지음, 이미연 옮김 / 시간의흐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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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치든 술에 취하든, 열광하든 도피하든, 음악은 우리 안의 언어를 비워내고 내면을 자유롭게 해준다. 환시나 환청같은 장신 착란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음악은 나 자신이 개척한 삶의 항로를 유지하게 한다. 서사를 바꾸고 문법이 지닌 구속력을 느슨하게 풀어준다.(211-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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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다룰 줄 아는 악기 피아노. 중고등학생 시절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래도 굳이 기억을 끄집어내보면 피아노 연주를 그만두었던 것이 가장 아쉽다. 중학생때 개인교습을 그만두었고 고등학생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주말에 가끔씩 쭈뼛거리며 강당의 피아노를 두드려보는 정도였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차려보니 방 안의 피아노는 어디론가 치워져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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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인피아노학원에 등록했었는데 퀘퀘하고 답답한 공간에 숨이 막혀 두어차례 레슨을 받고 그만두었다. 음. 조금 더 넓은 집에 살게 된다면 피아노를 들여놓을 수 있을까? 연주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글쎄. 결국 그만큼 간절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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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전혀 짐작도 못했던 이 세명의 철학자 - 사르트르, 니체, 바르트 - 가 의외의 작곡가들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가였다니.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음악의 언어와 몸의 언어가 만나는 것이 연주라는 지점을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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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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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춥고 어둡고 적막한 우주에는 ‘사랑해’란 말을 전하는 방법이 많이 있단다. 반짝이는 저 별들만큼이나 많이.’(329p-‘상급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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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의 열 네편의 중단편 수록집. 깜짝 놀랐다. 열 네편 모두 다 재밌어서! 화려한 수상이력과 문이과를 넘나드는 작가의 이력에 반신반의하며 집어들었는데 작품들에 제대로 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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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종이 동물원’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집은 정말 한 작품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재미있는데- 소재면에서는 물론이고 이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문장과 살짝 가미된 아름다움과 감동까지 종합선물세트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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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작가가 중국계 미국인이기때문은 아니겠지만, 소설적 배경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를 주 무대로 하는 작품들이 있어 반갑고 흥미로웠고, 특히 한자를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파자점술사’등의 작품들에서는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으로서(..) 괜히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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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를 다룬 SF적 환상성이 가미된 작품들의 재미는 물론이고, 문화 대혁명이나 난징대학살 같은 쉽게 다루기 힘든 역사적 사건을 녹인 작품들의 무게감 또한 잘 다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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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단편 작품들과 요즘 주력하고 있다는 장편 또한 너무나 기대되는 작가! 개인적으로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을때만큼 정신없이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주저없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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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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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두번째 소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정말 대단하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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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란 내게는 아무래도 죽음인데 시집을 담당한 편집자에게는 어땠을까. 그에게도 죽음이었을까.”(316p). 글 속 화자가 쓰고 싶어 했던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제목이 바로 이 소설 자체의 제목이기도 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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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 연재된 이 두번째 소설은 광화문 시위-박근혜 탄핵 시기를 현재로 놓고 1987년의 6월 항쟁, 1996년의 연세대 항쟁, 2009년 용산참사와 2014년 세월호 사건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니체와 바르트와 츠바이크 등을 끌어온다. 이렇게 서술된 부분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신문기사 인용은 그 ‘객관성’에 독자를 놀라게 만들며 순간적인 거리감을 조성해낸다. 그리고 곧이어 이 세계의 참혹함을, 잔인함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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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라. 이 소설을. 보아라. 현실을.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혀온 그리고 외면되어온 이들의 역사도 뒤돌아보아라. 그리고 탈출할 수 없는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라. ‘묵자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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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말을 하야 할 것이며, 말하는 이들을 응원해야할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엄격한 처벌을, 피해자에게는 보호를.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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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모두에게 읽어보시라 권한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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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문학이란 무릇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힘을 얻어가는 것은 작가의 문장이 어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악물고 나아가야한다’는 느낌을 주어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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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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