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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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집에 들어왔는데 그만 누운 자리에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다 읽어버렸다.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책 읽는게 전부인데다 이 책은 겨우 200페이지 남짓한 소설이니 한자리에서 다 읽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책은 신형철 평론가가 남긴 추천사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하나만 보고 사서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얼마나 적확한지 알겠다. 1964년 아쿠카타와 수상작으로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전혀 올드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표현은 섬뜩할 정도로 예리해서 한참 들여다봤다. 또 어느 페이지는 인간의 감정을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게 포착해냈는지 절반 이상을 밑줄로 그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상당히 놀라운 작품이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나에게 인생의 책은 아니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인생의 무엇'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니까.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자꾸 이 책과 관련된 상념들이 머릿속을 떠다녀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거지. 아무래도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 책의 어떤 부분에서 읽어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어떤 장면 때문에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짚어낼 수는 있어도 정확히 '왜'인지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게 나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남의 언어로 표현된 문장을 읽으면서도, 이게 내 감정이다 싶으면서도, 그것을 내 언어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무력하고 공허하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기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나의 언어를 찾기 위함인데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려움이 나를 압도한다. 대체 언제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1]이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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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지컬 '레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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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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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 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근간 <뭉크 x 유성혜>. 이벤트에 당첨되어 <모차르트 x 김성현>편을 읽어본 뒤로 이 시리즈에 매료되어 하나씩 클리어하고 있다. <뭉크x유성혜>는 조금 나중에 읽어봐야지 싶었는데 자꾸 타임라인에 뜨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사버렸다.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국민화가 뭉크.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뭉크 하면 <절규>와 <키스> 정도밖에 아는게 없었다. 작품을 보면서 뭉크는 상당히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외롭고 고독한 이였겠구나하고 짐짓 추측해본 정도.

저자는 뭉크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작품 도난 같은 흥미로운 (그러나 아찔한!) 에피소드들도 중간중간에 들어가있고. 책 전반적으로는 뭉크라는 화가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졌다. 아마 저자가 뭉크의 세계를 제대로, 잘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뭉크가 같은 작품을 여러버전으로 그리기도 하고, 판화 작업도 많이 했다는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또 생애 마지막 30년을 도심과 떨어진 곳에서 혼자 고독을 자처하며 살았다는 것도. 그래서인지 그의 후기 자화상들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새로 단장한 뭉크박물관이 2020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하니 그즈음 북유럽 여행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그가 작업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여러 버전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더욱더 실물을 보고싶어졌다. 지금까지 읽은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들 중에 가장 해당 국가를 방문해보고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여행과 덕질(?)이 함께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이번에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훌륭함. 출간 예정인 작품들 책날개에 동그라미쳐놓고 기다리는 중인데 어서어서 나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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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굿리드 에디션_양세종) 비채 굿리드에디션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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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날 밤에 내 아버지 옆에서 이런 것을 배웠어요. 인생살이의 핵심과 시간의 숨결로 우리를 이끄는 길,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길이라는 것을요. 그날 활주로에서 내 안에도 그런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내 인생의 폐허에서 매일매일 그것을 파내는 것뿐이라는 사실도요.’(229p)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책인데 이시구로의 소설을 끝내자마자 이 소설도 빠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읽다보니 벌써 끝. 바로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여섯번째 소설 <이런 이야기>.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로 정평이 나있는 모양이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본 구병모 작가님의 추천으로 집어들게 되었다.

20세기 초 자동차 산업이 시작될 무렵의 이탈리아가 배경이다. 주인공 울티모는 자동차 정비소를 세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길’에 빠져들게 되고 이는 그의 삶 전반에 걸쳐 중요한 화두가 된다.

음악같은 소설이다.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저자가 음악가이기도 해서인지 소설 속 구성이 마치 느려졌다 빨라졌다, 이 박자에서 저 박자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울티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나 꽤 여러 챕터의 화자가 그의 주변인물로 설정되어 울티모에게 일어난 일들을 요리조리 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굳이 꼽자면 ‘길 위의 인생’이 이 소설의 테마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타의 일기와 회고, 울티모와의 인연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결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최근 관람한 영화 <콜드 워>에서의 두 주인공이 생각나기도 했고. 아무리 오래,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인연이 존재하기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 찾아보다가 알게된 뜻밖의 사실인데, <이런 이야기>는 김영사의 책과 굳피플엔터의 배우를 연결하는 굿리드 캠페인에서 양세종 배우가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고. 지난 1월 출간된 굿리드 에디션에는 양세종 배우의 사진이 표지로 꾸며져있다. 책의 수익금의 일부는 탄광촌 어린이와 청소년의 학습비로 지원된다니 참 좋은 캠페인이다. 더불어 책덕후로서는 양세종 배우가 더욱 궁금해지니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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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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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이건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이전까지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았더라도 두려워할게 없다는 건, 어린아이라 해도 알 거예요. 액슬과 전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소중한 거니까요.”(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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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2015년작. 5-6세기의 고대 잉글랜드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소설이다. 망각의 안개 때문에 과거를 잊은 노부부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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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서정적인 문장과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사실은 그래서 읽는 속도가 더뎠다. 평화롭고 차분한 상황에서라면 제법 즐기면서 읽었을 작품이지만, 안그래도 불안에 잠 못 이루는 요즘 읽기에는 다소 버거웠다. 하지만, 평소보다 한 권을 오래 붙잡고 있긴 했어도 결국 끝냈다. 이 책을 읽을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또한 나와 이 책의 인연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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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할 수 있을까?(이터널 선샤인), 아니 살아갈 수 있을까? 조금의 망각은 삶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완전한 망각이라면? 어차피 세상은 거지같고 인간은 악하니 과거따위 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거인’을 깨우느니 망각의 안개에 취하는 것이 더 견디기 쉬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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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슬이 베아트리스에게 계속 ‘공주’라고 부르는데 다정함이 종이를 뚫고 느껴질 정도였다..!🥰 (원작에서도 프린세스라고 부르는걸까? 찾아봐야지)정해지지 않은 결말이지만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소설이니까. 소설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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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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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중에도, 이날 이후 이어진 열세 번의 밤 동안에도,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살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4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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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의 첫번째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소설 그리고 1997년 부커상 수상작. 드디어 완독에 성공했다. 인도의 시골마을 아예메넴이 배경이며 암무와 그녀의 쌍둥이 아이들 에스타와 라헬이 중심인물이다. 영국에서 놀러온 사촌 소피 몰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을 둘러싸고 시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가촉민-불가촉민, 여성-남성, 영국-인도 등 다양한 대립쌍들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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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리뷰에서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쓴 것 같은 소설’이라는 평을 보았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아룬다티 로이만의 언어. 그녀가 5년동안 계속해서 엮어간 실들이 한 뭉치의 온전한 타래가 되었다.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지만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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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도 미래도 없으니 다만 ‘작은 것들’을 붙잡을 수밖에. 사랑할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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