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한 마리는 기쁨 - 두 아버지와 나, 그리고 새
찰리 길모어 지음, 고정아 옮김 / 에포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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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 데이비드 길모어의 양아들, 찰리 길모어의 회고록 <까치 한 마리는 기쁨>. 이 책은 저자가 까치를 만난 이후 자기 인생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불안정한 사람이었던 생부 히스코트를 이해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항상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마침내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이야기. 그 중심에는 까치 한 마리가 있다.



왜 생부 히스코트는 그와 그의 어머니를 버렸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오래도록 천착해왔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갉아먹는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것이라면 피할 수 없으니 더더욱. 저자는 오래도록 답을 찾아 헤맸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자기 자신을 탓하고, 붕괴되고, 무너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니까 까치를 만난 뒤 히스코트 또한 갈까마귀를 길렀음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고해다. 저자는 까치를 만나면서 배우게 된 자연과 돌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둔 생부와 관련된 상처 또한 가감없이 풀어놓는다. 아주 면밀하게. 그는 상상 속 아버지가 되었다가, 노인이 된 아버지를 직접 만났다가, 끝끝내 현재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저자가 내면에서 온갖 혼란과 두려움을 끌어내고 또 펼쳐내는 이 과정은 어쩐지 기이하게 아름답다.



까치의 가르침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존재의 단순한 기쁨에 대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오직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 그러니 과거를 붙잡지 말고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갈 것. 우리의 과거가 우리를 규정한다는 건 그저 믿음일 뿐이다. 믿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믿음이 아니게 된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물론 그 전에 마음 속 의문에 치열하게 매달려보는 일도 필요하다. 바로 이 책 속 저자가 그러했듯이.



까치와의 우정을 다룬 자연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예상보다 더 다채롭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역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이의 글을 마다하기란 어렵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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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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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화학입니다.˝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 그녀는 꾸밈없는 사람이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믿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여성 화학자다. 그러니까 1955년에. 여성이 직업인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바로 그 시기에.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는 단연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에게 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화학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을 벗어던지고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로서 분자식을 설명해가며 요리를 하는 그녀는 괴짜같다가도 엄숙하고 진지한 전사같다. (<스토너>에서 1학년 대상 강의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려운 내용을 가르쳤던 스토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단호하고 우아하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바로 자기존중에서 나온다. 스스로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녀가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데뷔작 사상 최고가에 출판권이 팔렸으며, 브리 라슨 주연의 티비 시리즈로 제작 예정이라는 이 작품(드라마화되면 <와이 우먼 킬> 같은 분위기일지도). 왜 찬사가 쏟아지는지 읽어보니 알겠더라. 매력적인 주인공을 비롯해 마치 시트콤의 주인공같은 생동감 넘치는 조연들, 사회적 문제를 꼬집어내면서도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문장들, 탄탄한 에피소드들까지 재미있는 소설의 요소들은 전부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역시 현실적인 문제들을 녹여내고 있으면서도 명랑한 위트가 느껴진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작품.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2권, 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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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손수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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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멀리서 좋아하던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같이 맥주 마시자며 자취방에 초대해준 느낌. 가로등 켜진 한적한 골목길을 같이 걷는 느낌. 손수현 배우의 에세이 <쓸데 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를 읽는 건 그런 느낌이었다.



에세이의 매력은 곧 저자의 매력. 저자가 자기 자신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바로 그때 좋은 글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좋은 글이란 솔직한 글이다. 잘나면 잘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보여주는 글.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꽤 매력적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은 ‘3에게‘였다. 이 글에서 저자가 10년 전 사용했던 아이폰3을 꺼내 다시 작동해보는 이야기인데, 차-아-알칵 하는 느린 셔터음을 두고 ‘10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찍고, 조금 기다리니 현재를 찍는다‘고 표현한 것이 왜인지 계속 기억에 남는다. 10년 전을 돌아보며 지금은 그때보다 또렷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하는 문장도. 저자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을, 쓸데없었다 치부할 수도 있었던 순간을 선명하게 담아낸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너는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잖아.

종종 보는 저 문장, 잘 봐 봐. 완벽하게 이탈한 자동차 바퀴 같다.‘ (59p)



그런데 이 문장을 지나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하자, 쓸데없는 짓은 없으니까. 언제나 반전은 존재하고 모든 것에는 쓸모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저자의 단단하고 씩씩한 마음이 스며들게 된 모양이다. 환영!



+) 책 중간중간에 들어간 사진들도, 표지와 판형과 내지 구성도 무척 좋았다. 부담없이 펼치기 좋아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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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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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설. 책을 읽는 동안 우주를 탐험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 편의 연극 속에 들어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리처드 파워스의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아내의 죽음 이후 조금 특별한 아들 로빈과 살아나가는 우주생물학자 시오의 이야기이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주에 대한 이야기,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층위로 해석할 수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작품.

아홉 살 로빈은 살아있는 것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생명과의 감응도가 높은 아이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인식하고 괴로워하는 아이. 아버지 시오는 세상과 자꾸 부딪히는 로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며, 더 나아가 로빈의 시각에서 함께 세상을 보고자 한다. 시오와 로빈이 함께 조금씩 나아가는 이 과정이 무척 사려깊게 그려져있어 좋았다. 얼리사의 부재가 남긴 슬픔을 메워나간다는 면에서도, 생명에 대한 두 사람의 이해가 깊어진다는 면에서도. 특히 시오가 밤마다 들려주는 우주 행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있으리라는 기묘한 감각과 그로 인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면들이었는데, 마치 소설 속 소설을 읽는 듯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이야기였다. AI를 통해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는 기술로, 로빈은 이 기술을 통해 얼리사가 남긴 감정 지문을 학습한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했던 얼리사. 로빈은 그녀가 남긴 감정을 통해 생명이 가진 유기적인 연결성과 사랑을, 부드럽게 감정을 통합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모두가 다른 존재로 살면 어떤지 배워야 하는 거야.‘(241p) 하는 로빈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려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이의 존재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생명의 경이로움을 매 순간 느껴볼 수 있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18p)

이 문장을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도, 특별한 아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스러져가는 생명의 편에 서는 일도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해낸 시오의 편에서. 본문이 여러 층위로 해석될 수 있었던 것처럼, 소설의 결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이 아름다운 행성에는 생명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과 황홀함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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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아주아주 오래 하자 - 거친 세상에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삶의 기술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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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라는 퍼즐을 풀기 위해 늘 바둥거려.‘

위의 문장에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 어디를 펼쳐보아도 자신의 속마음을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되실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삶이라는 예술, 그것을 살아가는 기술을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보여주는 <샤워를 아주 아주 오래하자>. 간단 명료한 메시지와 따뜻한 그림이 포인트다. 마음 속 깊숙히 숨은 어린 마음을 일깨워주는 책.



책 앞 부분에는 ‘깨어있는 삶을 위한 선언‘ 아홉 가지가 소개되어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 경이로움에 눈을 뜨기 등등. ‘흥 나도 다 아는 것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페이지를 넘겼으나,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그림들이었다. 내 마음과, 주변의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과, 자연을 담아낸 그림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평화로워지던지. 한강 변에서 이 책을 펼쳐들고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야말로 이번 주 최고의 순간이었다. 맞다, 다 안다고 덮어두지 말고 호기심어린 자세로 삶을 맞이할 것! 그게 언제나 첫번째였지.



때로는 지치고, 고단하고, 외롭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상이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내 마음 속에는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어린 영혼이 있다는 것.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은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이토록 간단한 방식으로 통찰력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니.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놀랍다. <책 좀 빌려줄래?>에 이어, 이제는 믿고 읽는 그랜트 스나이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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