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읽는 리베카 솔닛. 이 책,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에서 솔닛은 그가 어떻게 자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동안 솔닛의 작품들을 충실하게 따라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전작들을 관통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글쓰기에 대한 솔닛의 신념, 걷고 경험하고 쓰면서 연대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젊은 날들, 유명세를 얻게 해준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의 탄생 비화까지 다양한 이야기들 또한 책 속에 실려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작가가 되는 일에는 어엿한 인간이 되는 일의 핵심이 담겨 있다.‘(178)는 것. 솔닛은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깊게 사유하고 멀리 내다보고 실제로 쓰는 일을 계속해왔다. 어쩌면 그동안 출간된 수십권의 책들은 그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매 순간 애써온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솔닛 자신의 성장 기록이자 어떻게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전부 아주 작은 책상에서 쓰여진 글들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 들었던 ‘문장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무래도 문장문장마다 배인 깊이 있는 사유, 진실성, 에너지야말로 내가 계속해서 솔닛의 책을 찾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은 나에게 무엇이었더라. 쟁취해야 할 무언가, 내 삶을 지탱해 준 무엇, 유일하게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것, 내 삶의 의미.‘



오우 진짜 재미있다. 흡입력있고 흥미진진하고. 몰입해서 한 번에 읽기 딱인 소설.



<백 오피스>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완벽하게 보여야만 하는 행사 뒷편의 아슬아슬함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에너지 그룹 태형의 대형 행사를 위해 모인 태형의 홍지영, 호텔 퀸스턴의 강혜원, 기획사의 임강이, 이들 세 여성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각자의 사정 탓에 긴장하며 서로를 탐색하다가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이는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대치상태인 것 같다가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한 호텔리어 강혜원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백오피스와 객실, 홀을 넘나들며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일처리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미처 챙기지 못하는 가족을 떠올리는 사람. 일의 의미에 대해, 일과 가족 사이에 낀 자기 자신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사람. 그럼에도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이러한 고민들이 무척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대기업의 관행 앞에서 정의를 고민하는 홍지영이나 회사의 존폐위기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임강이 등 책 속 다른 인물의 고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생생하고 탁월한 묘사의 힘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우라가 있는 것 같다.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그래서 일에 너무나 진심인 사람의 아우라가. 그리고 그 아우라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 그게 진짜 멋. 어쩐지 <백오피스> 속 세 여성에게는 그런 아우라가, 그런 멋이 느껴지는 듯하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원의 시간 속으로 - 지구의 숨겨진 시간을 찾아가는 한 지질학자의 사색과 기록
윌리엄 글래슬리 지음, 이지민 옮김, 좌용주 감수 / 더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질학자 윌리엄 글래스리의 <근원의 시간 속으로>. 저자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구의 거의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가진 그린란드 지역을 답사한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야생을 감각하며 그가 써내려간 사색의 기록이다.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야생의 장대함 앞에서는 어떠한 분별도 필요치 않다. 저자는 끝없는 야생을 홀로 걸으며 체험한 이러한 통찰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모든 존재는 동등하며 그것들은 각자의 속도로 자연히 변화한다. 전체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없으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인간 또한 그 장대함의 일부다. 시작도 끝도 한계도 없는 바로 그 야생의 풍경이랴말로 생의 본질이고 근원일 것이다. 지질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잘 모르는 분야라 기억 속에서 흩어졌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야생의 풍경과 사색의 기록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북극으로 떠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어디갔어, 버나뎃?>의 남극 기지가 떠올랐다. 영화 <와일드>와 <인 투 더 와일드>도. 언젠가 직접 야생의 웅장함 앞에 설 날을 기다리며, 야생이 사라지면 영혼의 집도 사라진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야생은 우리가 영혼이라 여기는 것의 태곳적 심장이다. 따라서 야생은 일종의 집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중략)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지구의 진화 방식을 둘러싼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를 마음껏 그리워하는 일, 그와 함께한 날들을 추억하는 일, 그의 빈자리를 향해 몰려오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 크리스티앙 보뱅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해 가을과 겨울, 작은 글의 정원을 가꾼다. 사랑과 자유와 지혜로 가득했던 여인 지슬렌을 향한 ‘그리움의 정원‘을.



이 책의 제목은 ‘그리움의 정원에서‘이지만 보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그는 지슬렌이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한다. 삶의 순간순간을 사랑으로 살아냈던 지슬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천재였는지 말이다. 보뱅은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빠져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슬픔조차 감싸안는 것이 ‘사랑‘임을 발견해낸다. 그러니까 보뱅은 모든 순간에, 심지어 사랑하는 이가 곁을 떠난 순간에도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의 본성은 사랑이기에, 슬픔과 그리움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깊이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삶을 사랑으로 살아냈던 지슬렌을 그리는 연서이자 삶을 향한 찬가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운 그대로 삶을 사랑하겠다는 투명한 다짐이다.



책 속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질투에 관한 구절이었다. 보뱅은 질투에 연루된 건 ‘불현듯 광기에 사로잡힌 한 사람‘일 뿐이며 그 안에서는 ‘오로지 나, 나, 나 기필코 나만을 외치는 소음과 분노에 찬 말‘만 소용돌이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질투란 사랑하는 이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욕망이 일으킨 고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질투에서 자유로지면 우리는 언제든 질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지위와 소유와 욕망 같은 건 전부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그냥 지금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 불평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그냥 웃으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날, 이 구절을 읽고 단숨에 고통에서 풀려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인식의 전환을 일으킨 책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게될 것 같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냥 쥐고 있었던 걸 놓으면 될 일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사랑이 있다. 언제나.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를 닮은 소녀
에릭 포스네스 한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사자를 닮은 소녀>. 말 그대로 사자를 닮은, 황금빛 털로 뒤덮인 채 태어난 소녀 에바의 이야기. 전형적인 성장소설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소설이다. 사실 우리 모두 남들과 ‘다른‘ 점 하나쯤은 있지 않나.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보통의 사람들과는 눈에 띌 만큼 ‘다른‘ 용모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곱절은 더 위험하고 고독해진 에바의 삶은 ‘다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준다.



전반부인 에바의 탄생기는 3인칭 시점으로, 후반부인 성장기는 1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에바가 과거를 회상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중반부부터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되어 살아온 에바. 반대로 밖에 나갈 때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화려한 옷을 걸치는 에바. 이처럼 아이러니로 가득한 생활 속에서 에바는 다른 청소년기 아이들과 다름없는 몸과 마음의 혼란을 겪어낸다. 자아상이 확립되는 바로 그 시기의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다뤄져 흥미롭다. 스스로와 타인과 세상을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를 반복하며 성장해나가는 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일인데도 에바는 너무나 처절하게 이 시기를 지난다.



사실은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다 읽고 나서도 감정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에바가 다음 행보로서 그녀 삶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기 직전에 상징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데,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으며 에바와 동질감을 쌓아왔던터라 그녀가 느꼈을 감정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 결말 역시 기존의 성장소설과는 달리 아주 놀랍고도 색다르구나 싶다. 그러니까 결말을 통해 내가 받은 느낌은, 적지 않은 시간 진행되는 연극을 아주 몰입해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대 위에 거울이 등장해 나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깨어남과 비슷했다.



노르웨이의 작가 에릭 포스네스 한센의 장편소설 <사자를 닮은 소녀>. 작년에 잔 출판사에서 출간된 로이 야콥센의 <보이지 않는 것들>도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이었는데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북유럽 작가와 작품들에게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냉엄하면서도 남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