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2004년 작고하기 전까지 손꼽히는 미국의 지성인이었던 수전 손택. 문화 비평, 소설가, 연극 영화 연출 등을 넘나드는 그의 작업을 나는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그의 자기 연출적 면모를 알면서도. 다니엘 슈라이버의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은 그녀를 둘러싼 의견들 중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그간의 행적을 깔끔하게 따라간 평전이다. 수전 손택의 강점이었던 에세이의 특징과 문학에 대한 그의 동경, 냉소적이고 과장되었던 제스쳐까지 가감없이 서술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문장의 논조가 담담하고 정확하여 읽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수전 손택에 대한 균형잡힌 글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도 이 책은 좋은 선택일듯하다.비평 에세이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31살의 수전 손택. (그녀가 SNS 세대의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보았지만 곧 그만두었다.) 복잡하고도 매혹적인 인물. 매일 책과 영화와 연극과 전시 등 거의 모든 문화를 향유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 질병의 고통 앞에서도 삶을 향했던 ‘투사’였던 그녀. 모든 것에 동기부여가 되고 있지 않은 요즘, 매 순간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불태웠던 수전 손택의 일생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그리하여 이런 책을 만들고 나면 딱 천 마리의 학만 접어 선물한 듯한 기분이 든다.’(197p) 1000부 팔리는 책을 편집한 저자의 소외가 담겨있는 문장이다. 채널 예스 인터뷰에 실린 이 문장을 보고 서점에 달려가 책을 구매했다. 글항아리 이은혜 편집자의 ‘저자-편집자-독자’에 관한 책 <읽는 직업>이다.책 사이사이에는 저자가 편집자로 일하며 겪었던 만남과 고민과 즐거움과 기쁨이 스며들어있다. 독자로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편집자의 삶을 엿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책을 읽으며 ‘편집자는 생각보다 고된 직업이다’라는 생각과 ‘편집자는 생각보다 멋진 직업이다’라는 생각이 번갈아들었는데, 점점 후자에 마음이 기울게 되었다. 편집자인 저자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를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또한 독자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폭넓은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저자가 인문 분야의 서적을 주로 맡고 있기 때문에 책 속에 관련 서적들이 꽤 많이 언급된다. 좋다고 하는 책은 다 읽어야만 할 것같은 귀가 얇은 나는 이미 읽을 책 목록을 든든하게 채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속에서도 꽤 훌륭한 책 목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전시 콘서트 등등 온갖 문화생활 덕후인 나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 꼽자면 당연히 독서인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독서의 즐거움 알게되어서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되는거 말고 진짜 좋은 책들도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나부터 좋은 책 더 열심히 나누고 책도 많이 사서 여기저기 선물하는 사람 되어야지 화이팅..!www.instagram.com/vivian_books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다가 ‘올해의 발견’이라는 평을 봤다. 여기저기서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란 말이야? 좋고싫음은 주관적이지만 대체로 많은 이들이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시와 산책> 이야기다.책 곳곳에 고요한 별빛같은 문장들이 있다. 특히 행복과 꿈결, 침잠에 대한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산책하는 사람은 느리게 걷는 사람이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고 풀과 나무와 꽃과 고양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문장으로 빚어진다면, 글이 된다면, 책이 된다면. 그리고 시. 이 책에는 에밀리 디킨슨, 실비아 플라스, 페르난도 페소아, 파울 첼란, 릴케 등 사랑하는 시인들의 시들이 등장한다. 나는 좋아하는 시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나에게 시는 지나치게 내밀하게 느껴져서),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시 이야기를 하면 곧장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남몰래 그 사람의 내면을 엿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더욱이 산책하는 이가 고른 시라면.근래 마음이 소진되어 읽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과 긴 산책으로 조금은 위안이 된 것 같다. 오늘은 자기 전에 로베르트 발저와 에밀리 디킨슨을 읽어야겠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www.instagram.com/vivian_books
<작은 아씨들>과 꼭 함께 읽어야할 책. <작은 아씨들>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매들 이야기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네 자매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루이자 메이 올컷은 어떤 사람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루이자의 이야기를 평전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에서 만날 수 있다.루이자는 가난과 역경으로 가득했던 길고 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녀가 꿈과 희망과 다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간의 믿음과 화목함 덕분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견뎌나간다’(72p)고 믿는 루이자는 특유의 강인함으로 가족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썼던 사람. 그녀가 삶으로 보여준 그 굳은 신념에 여러번 감탄했다.<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루이자의 삶을 한 편의 소설처럼 유려하게 표현하면서도 자서전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꼼꼼하고 세밀하다. <작은 아씨들>의 팬이라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한 여성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www.instagram.com/vivian_books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서도 계속해서 읽기를 미뤄온 것은 왜일까. 아마도 저자의 전작(<폴링 인 폴>과 <참담한 빛>)이 나에게 먹먹함을, 빛이 바래다 못해 응고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편 ‘시간의 궤적’을 각별하게 읽었던 기억과 이번 책을 먼저 만나본 이들의 호평에 기대어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백수린 소설가의 <여름의 빌라>.한 문장 안에 얽힌 표현들이 아름다워 한참을 머무르다보니 다 읽기까지 몇 주나 걸렸다. 어떤 작품을 읽다가는 오랫동안 숨을 고르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을 읽다가는 ‘와 정말 좋다!’ 하는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따뜻한 햇볕이 스며드는 오후에 공기 중에 천천히 내려앉는 먼지들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소설집이었다. 아주 느린 곡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발레리나를 오랫동안 바라본 것도 같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시간의 궤적’,’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흑설탕 캔디’다. 특히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거대한 체념’이라는 표현 앞에서 도저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그 표현 덕분에 가끔 이 단편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허물어진 주택의 골조 사이사이를 거닐던 그녀의 모습을. www.instagram.com/vivian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