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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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시마씨,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태양과 달, 교육이라는 우주에 두 개의 광원이 과연 필요할까?

본문 34p 오시마와 지아키



학교, 공교육_ 그 성안에서만 비추고 있는 태양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어째서 태양만으로는 살 수 없을까를 깨닫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네, 바로 "사다리"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갈망의 사다리, 그것을 원천봉쇄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교육시스템이었습니다. "누구나" 공교육을 받을 수는 있되, 엘리트가 되는 것은, 단 10%면 충분하다,라는 그 지배적인 생각이 말입니다.





아니, 입시학원으로 방향을 바꾸는 건 타협이 아니야, 타협이지. 교육을 장사로만 생각하는 인간들하고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뜻이야.

본문 157p 고로가, 지아키에게



그리고, 그 상위 10%에서 이제는 1%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올라가기 위한, 전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습니다.누구나,라는 말은 허울만 좋을 뿐인 것을 눈치챘기에, 지아키는 일본의 문부성에 적대감을 늦추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도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어째서 의대냐,라고 하지만 그 자리가 보장해 주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소위 명문가를 지키는 것이 극성이고 정성이며 인성이 바로 서야 하고 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지배욕이라는 "본성"이라는 것이 정답일지도요.


한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은 내려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려 하고 최소한은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교육의 시작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지키기 위해 아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사실, 지아키의 학원은 그렇게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학교가 내팽겨쳐진 아이들 아니, 저 밑으로 떨어트릴 아이들을 그녀는 달밤에 울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달이 돼 태양은 너무 눈부셔선 그나마 그 밤, 마음 놓고 비춰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받았던 교육은, 아이러니하게도 패전 후 미국의 교육의 영향이었고

아직은 수준은 높았지만 커리큘럼과 토론을 하는 그런 것들이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토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아이가 그의 인생을 조금씩 볼 수 있는 생각을 기르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순수하게도요. 그것이 어머니 요시코의 눈에는 또 다르게도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다방에서 일을 했던 별 볼 일 없어, 명문가였던 지아키의 친가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도요.


만약, 명문가에서 지아키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그녀가 교육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면서 말이죠. 어쩌면 지아키는 여전히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명문가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곽미향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하지만,

그녀가 택한 방법은, 교육이었습니다. 굳이 태양이 아니라도 달로도 충분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력을 가질 때까지,라는 그 전제가요.

하지만, 지아키의 타협을 모르는 점, 문부성에 대한 불신이 그것들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떤 시대의 어떤 저자도 하나같이 교육사정을 비판했다. (...)늘 어딘가가 이지러져 있는 초승달. 교육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이지러져 있다는 자각이 있기에 사람은 차자 차오르자 하고 연마를 거듭하는 지도 모른다, 하고 말이죠.

본문 520p, 오시마 고로고 출판 기념회에서



소설은, 점차 지아키와 오시마 고로의 사이에서 그 후대인 딸들 소위 아카사카가의 딸들의 이야기로 오면서 변하는 교육과정을 세대에 거쳐 담아내는가 하면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손자는 이치로 세대에까지 옵니다. 아마 이 문제는, 이 후에도 또 그 후에도 계속될 문제기도 하니까요.세대를 거쳐 그것은 기묘하게 지아키와 닮아있습니다만, 다른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걷게 되는 길은 그럼에도 또 "교육"이란 길이었습니다. 책은 일본소설의 미학이면서도 조금은 심심한 느낌도 있습니다. 각기 입체적인 인물이면서도, 다들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스카이 캐슬>과 같은 그런 입체적, 악인과 선인의 사이의 어느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면, 이쪽은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는 일본 특유의 잔잔함이 있었습니다


소설 <배를 엮다>가 원작인 영화 <행복한 사전>이 그랬으니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이 부러웠습니다. 저렇게 십여년의 세월, 사전편찬에만 쏟을 수 있는 환경들은요 하지만, 조금 심심했던 것 역시, 아마도 다들 "착한" 것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사전>과 <초승달>은 그럼에도 뚝심있는 것들을 밀어부쳐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보여준 것이 <행복한 사전>(배를 엮다)라면, 이 책, <초승달>은 심도있는 교육에 날을 세우고, 문부성과 사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는 지적하고 있고, 아직 나오지 않은 그리고앞으로도 ing중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끝을 맺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화두일 이 "교육"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공교육이라는 학교, 사학재단만이 "교육"이 아니라, 확실하게, 아니 이미 학교보다 더 크게 자리잡은 "사교육" 에 대해서도 우리도 깊이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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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 - 빈센트의 영혼의 초상화
랄프 스키 지음, 이예원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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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림, 하면 떠오르는 것들 인물들 특히 초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리진 않지만, 반 고흐의 경우는 그 스스로 그린 자화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그 자신의 그림을 남긴 화가는 드문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자화상부터 기억됐나 싶으니 제겐 그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겐 형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주 일찍 세상을 져 고흐에게로 온 이름, 바로 빈센트라는 이름은 원래 그의 죽은 형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 초반,

왜 성을 쓰지 않느냐고 친구들이 물어보자, 네덜란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성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략)


이런 구절이 나오면서 이 책에서도 본인이 원했던 이름인 빈센트를 대부분 쓰기로 하겠단 말에 왜 제가 철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이 이름이 어쩌면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정당하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그는 그렇게도 자신이라도 그 자신을 남기고자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을, 그리고 자화상을 그렸던 건 아닐까 싶어서 조금 저 밑에서 살짝 저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 고흐가 스스로 "누예넨의 최고의 작품이라 칭했던, 작품은 "감자 먹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참, 어둡다 싶은 순간 그들이 그렇게 어둡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그 어두운 분위기가 따뜻함으로 남았습니다.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보여지는 건 아마도 그 빛과 어두움이라던가 대비되면서도 명암이 살아있는 그림,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한사람 한 사람의 인물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 인물들이 그렇게 풍요롭지만은 않으나, 또 그 식탁이 빈곤까지는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도 있었습니다.

살짝, 어둡긴 하지만 이 느낌이 저도 싫지 않으니까요. 위의 그림 <파이프를 문 남자>가 기억에 남는 건, 아마 <감자 먹는 사람들>과 "명암의 뚜렷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트로니 기법..으로 지금의 캐리커처로 발전하기까지의 인물화라니 다시 보여지기도 했고요. <파이프를 문 청년>이란 그림도 있었는데 너무 쓸쓸해 보이더군요.




너무나 잘 알려진,

고갱과의 일화 후의 자화상입니다. 그가 고갱을 더 좋아했고 그로 말미암아 열등감이 있었다,라고 알려져 있긴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고갱과 자신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는 그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진위 여부가 어쨌든 그는 귀에 상처를 입고서도 작품 활동은 계속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분명 같은 1월인데도, 둘은 같은 듯하지만, 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파이프를 문 쪽보단, 아래 오른쪽의 자화상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파이프를 문 쪽은 아직은,이라면 붕대를 감고 있는 저 자화상은 또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상처가 나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그리면서 어쩌면 그 스스로의 길을 또 묻고, 서 있고 걷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자화상을 보면서, 저렇게 쾌활한 느낌이 있었던가? 하는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영향이라고는 하는데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던 의사 가셰의 초상과 아들린의 초상은,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의 내면이 투영돼 있다고나 할까요? 저는, 의사 가셰의 경우는 <드러내 놓은 불안감>이라고 느꼈으나 아들린의 초상에서는, 그 불안감을 감추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아들린 라부가 저 초상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단 말에 뭔가를 들킨 느낌이라서 싫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끝내는 좋아하고 인정했다지만, 처음 보는 순간, 저 손과 눈빛의 공허함 웃음기가 많이 사라져 있는 느낌들이요.

그의 초상 중 웃는 초상은 드물지만 그래도, 어딘가 있고 모두가 그가 그려준 초상을 만족해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의사 펠릭스 레이의 경우 그의 모친이 그 그림을 닭장 속에 집어던졌다,라고 하니 지금쯤은 후회하지 않으실까 싶더군요(가격이 얼마..)





마치, 광대와 같은 얼굴.

웃고 있으되 웃고 있지 않으며 울고 있으되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남자.

꽃을 물었기에 저 꽃이 떨어질까 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그 기묘한 표정의 남자.

이 그림이 와닿았던 건, 아마도 반 고흐의 얼굴이 여기서 보였을 것입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빈세트 반 고흐,의 자화상은 책에 많았고

소용돌이 가운데서 _ 혹은 점묘법으로, 혹은 일본의 영향인 스리모노 등등으로의 그림이 있었지만, 제겐 왜 이 그림이 마지막으로 와닿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울지도 웃지도.. 가, 그의 생이 내 생이면서도 또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가야 하는 그런 것들로 스스로가 옥죄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표정도 정답일 수 없는, 그이지 않나,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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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음악 100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100
진규영 엮음 / 미래타임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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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클래식이라 불리는 오페라는, 음악이 살아남기 위한 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아코포 페리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를 거치면서, 지금의 오페라라는 형식이 있는 것이고요. 원래 "극"이란 것이 인간의 것이긴 했지만, 음악이 살아남기 위해서 조금 더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지금의 고전, 클래식이 아닌 바로 "대중에게 어필" 하고, 또 왕궁에서 우아하게 또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초반, "세속음악"이라는 것은 그저 말 그대로 통속적인 것이 아니라 "미사외의 모든 음악"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음악가들은 제겐 참 생소한 이름이 많았습니다만, 바로크로 들어오자 조금씩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재미있던 음악가는 장 밥티스트 릘리였습니다. 그는 스스로가 자신이 귀족이라고는 했으나, 실상 방앗간 집 아들이라고 했고 그가 만든 오페라 <서민 귀족>과 뭔가 공통점이 있어서 묘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악기에 상당히 능했던 것을 보면 음악적으로 천재는 맞는 것 같습니다.


주로 음악가들의 출신은 귀족은 거의 드물고 거의가 음악가 집안이거나 혹은 의사 겸 이발사거나 그다지 유복한 편이 아닌 평범하거나 가난하거나 라면 그래서 조금 특별한 느낌의 음악가는 비발디였습니다. 전, 이 그저 <사계>만 알고 있었는데 이 비발디는 바로 "사제"였습니다. 아, 하는 순간 그가 제자였던 안나 지로라는 여성과 불륜 관계(..)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단 점에서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음악가들이 대를 잇거나 혹은 귀족들이 없는 반면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할아버지가 네덜란드의 플랑드르의 귀족 출신이라서 다른 음악가들관 다른 대접을 받았다는 것에 조금 씁쓸했으나, 그는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는 왕후들의 행렬에서 먼저 인사하기를 기다렸다가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 후대 음악가들 및 예술가들의 인식을 바꿔 놓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는데, 그가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싶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첫사랑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주 나왔습니다만 정작 모차르트 편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음악가들은 공주나 황후의 지원이나 혹은 그들의 스승이기도 했고요. 특히, 모차르트와 죽음에 대해 너무나 <아마데우스>에 뇌리가 박혔다지만 살리에리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을까? 싶으면, 확실히 모차르트의 재능은 있었으나, 글쎄요.. 싶은 것이긴 했습니다. 되려 클루크와의 대결이 더 재미있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클루크는 헨델조차 그를 경계대상으로 삼았다고 하고 모차르트와의 피아노 대결에서 빛났다니, 한번 .. 싶었습니다

어쨌든 모차르트의 죽음보다, 어쨌든 그의 묘지가 살리에리를 포함 일부만 참석하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졌으나, 그의 유해가 묻힌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에서 지금도 그의 묘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러한 것들의 그의 죽음을 더 미스터리하게 만들고 드라마가 만들어지는가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이든의 사후, 그의 얼굴 도난 사건 등도 참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악성 베토벤은 귀 때문이라기보단 매독(...)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해,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에 1784년 12월에 가입했다고 나와 있어서 이런 것들에 좀 더 놀라긴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베를리오즈의 여성 관계가 있는가 하면, 보통의 천재 음악가들이 가지는 그 드라마틱한 인생 속, 예외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필릭스 멘델스존이었습니다. <멘델스존의 생애는 참으로 행복한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 행복한 결혼과 물질적으로 풍부한 생활, 좋은 벗들과의 교류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본문 309p)




아쉬운 것들은 바로 또 여성 음악가들이었습니다. 파리넬리로 유명한 카스트라토가 생긴 이유가 바로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라는 이유에 한숨이 폭 쉬어졌는데 조금은 대조적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멘델스존의 누나와 슈만의 부인이었습니다. 파니 멘델스존의 경우는 그녀의 재능을 접은 반면에 슈만의 부인이었던 클라라 조제핀 바크 슈만의 경우는, 날개를 활짝 편 경우였습니다.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작곡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인 것이죠. 하지만 슈만과 브람스가 사제 간이었는데 거기서 묘한 줄타기를 했었던 느낌이었는데 책에서는 "플라토닉"으로만 나왔습니다(슈만은 정신병은 그저 단순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당시 사교계에서 조르드 상드는 많은 음악가들과의 접촉이 있었나 봅니다. 쇼팽과의 사랑 역시 그랬는데, 그녀가 소설 <루크레치아 플로리아나>에서 병약한 왕자, 그리고 부유한 여배우와의 관계를 썼는데 그게 자신들과 관계와 닮아 있어서 쇼팽이 화를 내면서 결별하고 말았다고 하고요 이 외에도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리스트의 경우의 유부녀들(백작부인, 공작부인)과 열애를 했으나 정작 매번 결혼 앞에선 무너져, 다시는 "결혼을 전제로 한 열애"보단 쉽게 연애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만, 책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전 이 책에서 "대중에게 가까이 오는 클래식"을 바랬습니다만, 초반의 흥미로움은 "대위법"에서 응? 하고 있었으나, 그럴 수도 있지 했으나 그렇게까지 <비하인드스토리>는 없었습니다. 되려, 시대별의 음악가들의 생애의 나열이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알지 못하는 천재가 있었구나! 도 한두 번이지 제 무지가 자꾸 드러나니 불편해지기 시작했으며, 푸치니와 카르멘에 대해 요새 너무 "음악곡" 같다, 라고 하셨는데 오페라와 그 "음악곡"의 차이가 뒤편에 있나 싶었더니 없었습니다.

음악곡이란, 뮤지컬에 가깝더군요 읽어보니까요. 그랬다면 이해가 좀 더 빠르지 않았을까 싶었고, 푸치니의 <라 보엠>이 다른 이의 이름... 해서 표절이라도 당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유명했던 소설을 오페라화했고, 초반의 반응 보다 결국 푸치니에게 관객이 돌아왔다,라는 것이었죠. 너무나 당연한 사실 아닌가요? 1년 차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택하는 것은 관객이니까요. 조금 새로운 것이 아주 잘 알려진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성정체성이었달까요..?

좀 부러웠던 건 <나비부인>의 일본이었습니다. <인상주의>에서 일본이 조금 소개되고 중국도 살짝 나오는데 뭔가, 그건 참 부러웠습니다.




요약.

저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초반은 몰라도 룰루랄라 읽어갔으나 무려 600페이지.. 동안 그게 지속될 순 없었습니다. 물론, 쭉 지루하지만은 않았으나, 그럼에도 이건 그냥 생애의 나열인지 딱히 몇몇 이야기 외에, 표지가 말하던 "숨겨진 이야기" 라든가, 진실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음악과 함께는 했으되, 지적이고 우아한 시간보단 제 무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음악을 잘 아시는 분들이 보면 오, 그랬나 하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어려운 서양음악, 더 어려워져선 대위법부터 찾아봐야 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초반은 분명 괜찮았는데, 초중반부 터 삐꺽거렸습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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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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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유전자로 작성된 디폴트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가능성이라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본문 361p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감정들도 실상은 "뇌"에 의해서라고 많이들 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뇌의 호르몬의 장난이라는 것 역시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한눈에 반한다,라는 것 역시 내 심장이 뛰어서가 아니라 단지 뇌에 의해서...라는 것이 얼마나 비낭만적인 것인가, 싶으나 인간의 호기심은 어쩌면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또 알듯 모를 듯한 그 심리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해 그저 "유전자"인 dna가 전부인 것 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사람들의 기묘한 심리를 말이다.

책은, 그래서 chapter 01부터 시작해 06인 "미래를 내다보는 뇌"로 구성돼 있었다.



사실, chapter01인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나>편에서는 그렇게 특이하다,라는 것은 없었다. 중매결혼과 연애결혼의 이야기라든가 인간이 자신에게는 왜 관대한가? 그리고 플라세보효과까지 나와선 그렇게 흥미롭진 못했다 하지만 통계상으로 결혼에 대한 것이, 뇌와 연결돼 있구나,라고 넘어갔다면 실험 08인 "왜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 얕보는가?"라는 "우리 자신에게 왜 관대한가?"와 전혀 다른 맥락이라서 흥미 있는 부분이었다.

말하자면, 어째서 우린 고대인들이 피라미드를 만들고 저런 건축물들을 어찌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 우리처럼 인간이고 뇌가 있었는데 단지 "고대인"을 "문명인"이 아니라고 치부하고 있었단 사실에 스스로 오, 맞아! 했던 것들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chapter02부터는 조금씩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멍 때리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도 있었지만 예전의 "자면서도 공부가 된다"라는 부분이 예전에 아니라면서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단 부분은 이 뇌과학 역시 가설, 증명의 또다시 삭제됐다가도 올라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단, 이 경우는 "논램수면"일 경우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완전히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단 조건부인 것이지도 하다. 또한 커피를 마시면 기억력이 향상된다, 라면서도 이 부분 역시 아직까지는 논란 중이라고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걷기"였다. 우리는 모든 우리의 신체 즉, 호르몬까지 제어하는 뇌가 감정까지 컨트롤하고 있기에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걷기"는 뇌가 아니라 "다리"가 한다,라는 것이다. 정말? 싶은 느낌이었다.


chapter04는 소제목인 "뇌와 함께 사람과 함께" 그대로였다. 내게는 실험 24번이 특이했다. 너무 평범한 듯하지만, "함께 공부하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였는데 솔직히, 공부할 때 함께면 더 산만해지기에 그룹스터디는 안 했고 해야 할 경우에 한해서만 했던 내겐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 외에 실험 28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뇌제어를 할 수 있다,라고 해선 뭘까 했는데 이 뇌제어의 전제 조건은 "자제심이 강하고, 감정 억제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경우"라는 조건이 있었다면 "누구나"는 빼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모든 이가 아닌 특별한 혹은 그냥 "인간의 뇌제어는 가능하다"라고 썼더라면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깜짝 놀란 건 바로 실험 29였다.


유전자의 작용을 억제해 수컷을 암컷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 조작 시술을 받은 수컷 쥐는 유두와 자궁이 생겼고, 성별이 뒤바뀐 상태로 새끼까지 출산했다.

본문 197p






chapter 04는 불행과 기쁨, 또한 타인에 대한 불행에서 인간이 느끼는 쾌감이 있는 반면 공감, 동정과 같은 "이타적"인 감정 역시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한다. 서로의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또한 통증과 쾌감(특히나 "학습된 마조히즘")에 대한 설명들과 있었다.

특히, 우리들에게 왜 "왕따"가 발생하는가?라는 문제(한국 팀의 발표였다)에 대해선, "왕따는 이유가 없다"라는 것에 인간이 원하는 것은 "희생되는 그 무엇" 이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이타적인 감정을 가지면서도,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 그 무언가를 강요하는 기묘한 야누스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chapter05에서 눈길을 끈 것은,

"톰소플라마스"라는 조헌병약인데, 이 약을 고양이에게 투입하자 인간을 따른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걸 웃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 실험을 한 이유가 "궁극의 숙주는 고양이"라는 것에서 아이러니면서도 참 잔인하다, 싶었다. 결국 인간을 위해서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 조금 무거운 마음이 될 즘, 뚱보균과 날씬한 균에서는 이게 가능한 것일까? 싶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실험이었다. 게다가, 죽음의 순간의 뇌는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또 묘하게 무거웠다면 스마트폰이 변기의 손잡이의 세균보다 18배나 많은 양의 세균이 있다는 것에 가만히 내 스마트폰을 멀리 치우기도 했다. 우리의 신체 중 손이 가장 더럽다는 것은 모두 안다. 그래서 그 손으로 키보드며, 가장 필요하면서도 더러운(?!) 돈을 만지면서 화장실 변기를 휴지로 잡고 가급적 밖에서 가길 두려워했는데, 알면서도 활자화로 된 과학자의 힘이 큰 건 어떤 뇌과학이며 심리일까? 싶어지기도 했다


chapter06은 어찌 보면 무서웠다 "신에 대한 도전" 이랄 수도 있고,

어딘가 두려운 느낌이었으며 이런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내용들이 많았다. 인간에 대한 신비가 많이 깨어지고 있지만, 풀리지 않았거나 자연의 그대로는 또 그대로 남겨두면 어떨까 싶은 부분들까지 나와선 솔직히 이 파트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자꾸만 이래도 될까? 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책은, 초중반 우리들이 많이 알고 있는 사실들로 나열한다. 그래서 에이, 하고 있었는데 중후반부터는 흥미로워지지만 사실 그때부터 전문용어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쯤부터는 물론 "객관적 사실"이었으나, "주관적"인 작가의 생각이 많아졌다. 작가 스스로도 전문용어가 많아질 것이다,라는 실험도 있었다.

심리 실험이라기보단, "뇌과학"에 더 많은 초점이라서, 뇌에 이렇게 기인해서 인간의 행동이 이렇다,라는 것이지 "심리"를 굳이 넣었어야 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있었지만 "심리가 움직여지는 것" 역시 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가 궁금하다면 살짝 들춰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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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여기 층계참의 어딘가쯤에서 서성이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곳이지만 어째 참으로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목표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탈락의 고배를 마셔 이곳의 학생들 역시 자신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하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이곳의 학교를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동경까진 아니라도 부러워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와 비슷하게 절대 실패치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계단에서 구를 일은 없을 거라 믿었는데 순간 굴러 겨울의 학교라 느끼는 아이도, 에이스란 꼭대기에서 조금만 더,였는데 알면서도 설마란 생각과에 무리를 하면서 삐끗한 다리 때문에 굴러서 온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게 신설된 이 "메이센 여자 고등학교"에 온 이유는 각기 그렇게도 다릅니다.


그들에게 이 학교는 "터널"이었습니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터널. 아니, 누군가에겐 또 아니었을지도요. 그런데, 그 어둡기만 할 것 같던 터널의 입구에서 놀랍니다. 네, 처음은 그저 어둡기만 했는데, 덜컥, 겁이 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일곱 빛깔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각자의 색으로요. 화음이 도로 시작해서 도로 끝나 결국은 여섯이면서 일곱이듯 그렇게 묘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처음 터널의 앞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미래의 우리 자신을 떠올리는 거야. 우리 노래를 들어주는 건 미래의 우리 자신이야. 지금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마돈나>예요, 하고 보여주자

본문 347, 고리에



내 노래가 대단한 건 아니다. 내 노래로 누군가의 어딘가를 울린다, 누군가의 어딘가에 울리는 데가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가슴이 떨려온다. 기쁘다든가, 즐겁다든가, 슬프다든가, 외롭다든가, 수많은 감정을 우리 모두는 품고 있다. 노래로 함께 나눌 수 있다.

본문 251p, 마카모토 레이



시작은 깜깜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그 터널이 그렇게 안은 아름다운지 몰랐던 아이들은. 어째서일까 하니, 두려움이 앞선 것입니다.

- 이제 끝났어,라고 생각하니 그 터널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요. 아마, 끝이라는 그 생각, 사실은 아직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음에도 그때는 그런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기에 그럴 수밖에요. 하나의 허들에서 넘어지면, 끝이고 한 번의 박자에서 틀리면 끝인 그런 시간들이요.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그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그게 그렇게 여겨지던 순간이니까요. 그녀들, 마돈나들에게 진실이, 진심이 아닌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카모토 레이의 좌절로 시작된 이 소설은 제겐 "기쁨의 노래"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학창시절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그런 고민, 혹은 비슷한 고민들을 가진 소녀들의 이야기는 의외로 묘하게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뭐랄까, 그때의 동질감 같은 것이랄까요..? 작년 서점대상을 차지한 츠지무라 미즈키의 거울 속 외딴 방 이 좀 무거운 느낌이었다면, 조금은 그 무거운 마음을 살짝 덜어내면서도 가벼이 다루지 않았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그 간질간질한 느낌, 소위 중2병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뒷면의 "서툴지만 가장 찬란한" 그 소녀들의 이야기들 살짝 보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었을지도요. 똑같진 않더라도 그 시절 그랬지,라는 그 미묘한 동질감으로 말입니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레이를 중심으로 모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또 그녀들만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순간이었습니다. 정작 합창대회에선 아니었던 그 노래는 어느 순간에 아주 아름답게 들립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한 번 더 듣기 위해 아니, 합창하기 위한 그녀들(?!)의 고군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자, 정말 캄캄하기만 했던 그 터널의 빛은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조금은 해결됐지만, 완벽한 해결이란 결국 없지만 이제 손을 잡을 줄 알게 됐고, 기어이 작지만 목소리가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레이가 어려워서.. 라기보단, 자신이 아픔의 곡인 <아름다운 마돈나>를 뽑을 줄도 몰랐지만 그 노래가 그렇게나 아름다운 줄, 또 다른 즐거움을 줄지 몰랐을 겁니다.




이제, 고작 1막이 시작된 것일 뿐입니다.

소녀들은 그저 한숨을 내리쉬며 <내 인생은 내리막길, 끝났어>라는 생각에서 한 뼘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어떤 형태로도 또 성장할 것입니다. 터널도, 층계참도 결국 나아가야 하고 내려가든 올라가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든 혹은 혼자서든 말이죠. 이들의 변화가 참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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