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시마씨,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태양과 달, 교육이라는 우주에 두 개의 광원이 과연 필요할까?
학교, 공교육_ 그 성안에서만 비추고 있는 태양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어째서 태양만으로는 살 수 없을까를 깨닫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네, 바로 "사다리"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갈망의 사다리, 그것을 원천봉쇄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교육시스템이었습니다. "누구나" 공교육을 받을 수는 있되, 엘리트가 되는 것은, 단 10%면 충분하다,라는 그 지배적인 생각이 말입니다.

아니, 입시학원으로 방향을 바꾸는 건 타협이 아니야, 타협이지. 교육을 장사로만 생각하는 인간들하고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 상위 10%에서 이제는 1%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올라가기 위한, 전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습니다.누구나,라는 말은 허울만 좋을 뿐인 것을 눈치챘기에, 지아키는 일본의 문부성에 적대감을 늦추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도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어째서 의대냐,라고 하지만 그 자리가 보장해 주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소위 명문가를 지키는 것이 극성이고 정성이며 인성이 바로 서야 하고 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지배욕이라는 "본성"이라는 것이 정답일지도요.
한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은 내려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려 하고 최소한은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교육의 시작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지키기 위해 아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사실, 지아키의 학원은 그렇게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학교가 내팽겨쳐진 아이들 아니, 저 밑으로 떨어트릴 아이들을 그녀는 달밤에 울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달이 돼 태양은 너무 눈부셔선 그나마 그 밤, 마음 놓고 비춰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받았던 교육은, 아이러니하게도 패전 후 미국의 교육의 영향이었고
아직은 수준은 높았지만 커리큘럼과 토론을 하는 그런 것들이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토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아이가 그의 인생을 조금씩 볼 수 있는 생각을 기르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순수하게도요. 그것이 어머니 요시코의 눈에는 또 다르게도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다방에서 일을 했던 별 볼 일 없어, 명문가였던 지아키의 친가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도요.
만약, 명문가에서 지아키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그녀가 교육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면서 말이죠. 어쩌면 지아키는 여전히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명문가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곽미향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하지만,
그녀가 택한 방법은, 교육이었습니다. 굳이 태양이 아니라도 달로도 충분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력을 가질 때까지,라는 그 전제가요.
하지만, 지아키의 타협을 모르는 점, 문부성에 대한 불신이 그것들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어떤 시대의 어떤 저자도 하나같이 교육사정을 비판했다. (...)늘 어딘가가 이지러져 있는 초승달. 교육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이지러져 있다는 자각이 있기에 사람은 차자 차오르자 하고 연마를 거듭하는 지도 모른다, 하고 말이죠.
본문 520p, 오시마 고로고 출판 기념회에서
소설은, 점차 지아키와 오시마 고로의 사이에서 그 후대인 딸들 소위 아카사카가의 딸들의 이야기로 오면서 변하는 교육과정을 세대에 거쳐 담아내는가 하면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손자는 이치로 세대에까지 옵니다. 아마 이 문제는, 이 후에도 또 그 후에도 계속될 문제기도 하니까요.세대를 거쳐 그것은 기묘하게 지아키와 닮아있습니다만, 다른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걷게 되는 길은 그럼에도 또 "교육"이란 길이었습니다. 책은 일본소설의 미학이면서도 조금은 심심한 느낌도 있습니다. 각기 입체적인 인물이면서도, 다들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스카이 캐슬>과 같은 그런 입체적, 악인과 선인의 사이의 어느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면, 이쪽은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는 일본 특유의 잔잔함이 있었습니다
소설 <배를 엮다>가 원작인 영화 <행복한 사전>이 그랬으니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이 부러웠습니다. 저렇게 십여년의 세월, 사전편찬에만 쏟을 수 있는 환경들은요 하지만, 조금 심심했던 것 역시, 아마도 다들 "착한" 것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사전>과 <초승달>은 그럼에도 뚝심있는 것들을 밀어부쳐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보여준 것이 <행복한 사전>(배를 엮다)라면, 이 책, <초승달>은 심도있는 교육에 날을 세우고, 문부성과 사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는 지적하고 있고, 아직 나오지 않은 그리고앞으로도 ing중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끝을 맺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화두일 이 "교육"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공교육이라는 학교, 사학재단만이 "교육"이 아니라, 확실하게, 아니 이미 학교보다 더 크게 자리잡은 "사교육" 에 대해서도 우리도 깊이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