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일독 플러스 만화 성경 : 신약 성경일독 플러스 만화 성경
정동열 지음, 정해주 / 선한청지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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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더 알아가고 싶고 언제나 일독은 해야지 하면서도 믿음은 있으되 실천하지 않는 것만 같아, 쉽게라도 성경을, 그중 구약보다는 신약을 택했습니다. 물론, 어쩌면 그 바탕엔 신약이 좀 더 제게 가깝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 시작은 창대했으나 점점 작아지는 것 또한, 믿음인 것 같습니다만(...)

만화로 만난다고 해서 쉬울 것이란 선입견은 버렸습니다. 초반, 솔직히 이거 너무 만화 같게 그린 것 아닌가? 싶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진지함이 좀 없는 느낌이란 것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누군가 다가온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앙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겐 말입니다.

초반, 많이 알려진 그 예수님의 탄생 즉,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이란 것은, 어쩌면 그 속의 뜻을 살펴보란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말씀하신 "섬기러,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서 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관이 아닌, "일반인"의 집에서 태어났을 것이란 말씀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가 아니라 무조건적이 아닌 "것이다"라는 조심스러운 견해이기도 합니다.

그리 조심스러워선지, 저는 초중반까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닌, "메시아, 선지자"로 많이 그려져 아쉬웠습니다.만, 그건 그저 모태로부터 알아온 저의 입장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3위 일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저완 또 다른 것이니까요.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은 또 다를 뿐이란 것을요.

리고, 그의 이적들도 나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처음의 기적은 바로 그 유명한 "혼인잔치의 포도주"였습니다. 이것은 그저, 예수님의 기적이 이러했다,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새 술은 새 부대에"의 뜻도 담고 있다고요. 말하자면,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책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솔직히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초반은 어째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 보다, "메시아, 구원자, 선지자"로서의 묘사지? 하면서도 앞에서도 언급했듯, 보통의 사람들에게 친숙히 다가오기 위한 것이구나,라고 했다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명백짐에 그렇구나, 내 생각이 짧았구나, 했다가도 세례요한의 파트만 본다면, 어렵습니다. 세례요한이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책은 언급하고 있었지만, 저는 그게 와닿았지만 만약 신앙인이 아니라면 혹은 초심자라면 선뜻 이해가 갈까? 싶으니, 아니었습니

그가 예수님께 세례를 한 것도 나와있지만 충분한 설명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아마도 믿고 있는 사람과 초심자 그리고, 믿으려 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이겠으나 조금 그런 부분이 친절했다면 했습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제자들 즉, 로마서로 시작한 성경의 말씀은 그 당시의 상황도 알아야 하는데 굉장히 이 부분은 휙, 지나갔습니다.







되려,

이 소위 4복음서에 집중했더라면, 싶었습니다. 이 복음서에는 중복되는 내용도 많지만 예전부터 "누가복음에만 유일하게 기록돼 있다"라고 나와선 왜지? 했는데 무려 25개의 비유 중 19개는 누가복음서에만 있다고 했습니다. 각기 성격이 다른 복음서 라선 특히 누가복음음서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시간 순으로 가장 방대하게 기록하면서도 "이웃 사랑"의 측면에 비중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복음서들이 특징을 설명하신 걸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방대함이 아쉬웠습니다(사실 한 권으로 신약을 읽기는...)

각기, 제자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복음서의 특징을 되려 살짝 만화로 언급했다라면, 싶은 아쉬움이 있었고 뒤편, 제자들의 행적이 너무 생략되고 사람들은 너무나도 빨리 믿는 것은 둘째고 가벼운 느낌이라 이 또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그것을 흡수하기는 빠를 것이나 그 "배경"의 설명은 어려울 것인데, 싶어서 목사님께서 많이 힘드셨으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전달하고자 노력하셨구나, 싶었습니다.

신약 파트, 알고는 있었으나 많이 방대했습니다.

하지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꼭 전하고 싶어 하셨고 그림은 친근하게 다가와 어쩌면,

어른인 제겐 "진지성"은 없을지 몰라도 어린아이들에겐 훨씬 다가가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방대하다면 방대한 신약을 되도록 쉽게 알려주시려 노력하신 정해주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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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1cm -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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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많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많은 정의들 중 또 정답은 없고 또 오답 또한 드물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그래서 어쩌면 끝끝내 끝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또한 아주 명확한 정답 또한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 책, <너와 나의 1cm>는 쉽게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그 사랑이란 것에 대한 소우주 혹은 나의 소우주, 결국 너와 나,우리에 대한 세계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전작들처럼 곰군과 백곰 양이 여전히 귀엽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느낌이 살짝 동그랗다,라는 느낌을 줍니다.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또 그래서 따뜻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고, 그렇게 흘러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어느 순간의 위기에 대한 것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요.




랑이 있다면, 이면에는 이별이란 말이 있습니다.

김은주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라는 말은, 결국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한 "사랑이 끝났다"라는 말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분명 있겠죠. 하지만, 사랑은 결국 조금씩 변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붙잡고 있는 건, 아니라고요

물론, 그래서 그 말은 비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또 그 말로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어쩌면 거리를 두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위안은 네, 결국 상처로 돌아오고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인 것이지요.





사랑을 하면, 변하는 것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한눈에 보여 재미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왔을 때도 괜찮았지만 피곤했다면, 사랑을 하고,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렇게도 새롭고, 낭만적인 색깔을 가진 도시인 것을 알아버리는 것이 바로 그 힘이라고 하니까요. 그리하여, 사랑의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변함"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주 힘듭니다. 거의 기적에 가깝게요 하지만,

사랑은 그것을 가능케 하니까요. 바로 일러스트처럼 한 도시가 아주 변해버린 것처럼 그 자신도 조금씩 변해오고 있단 것을요.



사랑에 빠지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구름,

몇 광년 떨어진 별 혹은 이름 모를 들풀에게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너와 나를 연결시켜주지만,

우리와 미지의 세계를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본문 46p



사랑이 연결시켜 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세계에 함부로 침범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존중"이니까요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알기 보다는 적당한 균형의 거리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그 미지의 세계를 모두 다 알기를 원한다면, 더이상은 미지의 세계도 아니기도 하지요.





책의 챕터는 어느 날 문득, 으로 시작해 "그리고 해피AND"로 돼 있습니다.

처음은, 아주 달콤한 듯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의 쓴맛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할 수 있는 건 사랑 뒤에 오는 이별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일러스트들은 참 귀여웠습니다 <1m art>때도 그랬지만요

그리고, 삶은 계속 되죠. 그리고, 사랑의 마침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랑이니까요.


너로 인해,

내 세상은 1센티정도가 커진 것이 아니라 1센티나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계속 될 것입니다 바로,

해피and로 말입니다. 삶이, 예술이, 사랑이, 내가 그리고 네가 그렇게 "우리"의 1cm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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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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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하면 생각나는 건 바로 "해바라기"입니다. 왜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평생을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제대로 된" 사랑은 받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고갱, 태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해바라기의 꽃말이 "숭배, 기다림"입니다. 그런 꽃말들을 보고 있으면 묘합니다. 찬란한 태양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는,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사랑을 숭배하면서 기다리는 것 같아선 아픈 꽃인 느낌이 제게는 강합니다. 결국 짝사랑이니까요

사랑만큼 돌려받고 싶은 감정은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이 빛나는 밤에>보단, 고갱의 <시지프스가 있는 밀밭>이 좋습니다. 밤보다, 밀은 <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을 빌려, 어린왕자의 머리빛을 생각나게 하죠.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지만 대신 평온한 느낌이라서 일 겁니다. 반 고흐 빈센트, 그가 조금은 그 마음을 내려놓길 바라고 있었나 봅니다.





이 슬픔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들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들이 우는지 혹은 웃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온몸을 통해서 말합니다. 지금, 좀 위로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 이들에게서 빈센트가 투영된 모습이 보일까요?


빈센트의 <해바라기>에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태양을 향해 온몸을 기울이지만, 결국 태양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해바라기처럼, 빈센트의 해바라기 그림에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한 번도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오랜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 65P


아마도, 작가의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그 느낌이 이 그림 두 장에서 더더욱 강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의 슬픔이 그렇게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러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던 고흐의 마음이 말입니다. 그렇게 정여울 작가가 빈센트 때문에 만났던 다른 이들과의 같이 여정을 함께 하듯, 저도 그렇게 빈센트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아가려 했습니다.

그의 슬픔이, 그의 아픔이, 그의 사랑이, 그 모든 것들을 보답받지 못한 채로 그래도 웃는 그를요.



어째서, 그는 내게 특별했을까 싶으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그의 그름에서 "책"을 읽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이웃님과의 대화 중, "고흐의 방"이 그 답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방이 유독 쓸쓸해 보였지만 그가 유일하게 책을 읽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 명암이 뚜렷했던 곳, 마치 그의 삶처럼 말입니다.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빈센트였으니까요. 그의 기행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말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직자도 되지 못했고, 예술가로서는 살아서 평가받지 못했으며 그 삶은 참 어두웠습니다. 쓸쓸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담배를 피는 해골"은 철저한 고독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라고 작가는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고독한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해바라기처럼요. 태양이 봐주지 않는다고 해바라기가 언제 그 사랑을 멈추던가요..?

그 사랑은, 어머니 그리고 고갱, 마지막 끈이었던 태오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태오의 결혼에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고 합니다.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사랑해주던 동생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해바라기처럼, 그렇게 모두를 짝사랑했지만 그의 갈구에 그래도 응해줬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동생인 태오였으니까요.

그가 태오에게 보낸 편지는 천여 통이 넘는다고 합니다. 보내지 못한 편지도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아플 때도 괴로울 때도 그리고 기쁠 때도 그는 태오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는 사랑에 감사하면서 받을수록 갈증이 일었을 겁니다. 처음부터 외면당했더라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가는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내서 더욱 완벽한 자아가 되어야 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하고,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극복해 가야 해. 태오에게 쓴 편지, 본문 199p




빈센트가 가장 슬픔을 느낄 때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여길 때였다. 본문 152p


그의 기행 중, 귀를 자른 그 사건은 어쩌면 빈센트의 슬픔이 극에 도달했을 때, 고갱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예전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랑했지만 돌아오지 않고 갈구하지만 대답이 없는 해바라기 같던 고흐였습니다. 이제는 아주 조금씩 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깊은 좌절감 또한 애잔한 슬픔과 함께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문 311p


하지만, 또 어떨까요?

그에게 만약 그런 좌절감과 사랑의 갈구가 없었더라도 지금의 그의 그림을 우리는 볼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표를 또 던져 봅니다. 아마도, 볼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의 그림에 대한 사랑은 깊어, 그는 분명 그림을 계속 그렸을 테니까요. 다만, 지금의 그림과는 아주 많이 다른 그림이었을 겁니다. 혹은 그저 알려지지 않은 화가로 남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젠 아주 잠시, 의자에 앉아서 그가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아님에도 그리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였다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함께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또한 긴 시간 동안, 그와 함께 걸으면서 쓸쓸함도 그리고 지금의 찬란함도 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쓸쓸했지만 그러기에 지금, 찬란할 수 있는 그의 그림자와 빛을, 빛과 그림자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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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발견 - 미칠수록 행복해지는 12명의 취향저격자들
이봉호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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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있어,

사람들은그것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요. 또 그 순문학에서도, 장르문학에서도 많은 갈림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느 한쪽을 폄훼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젠 그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들을 존중하는 것, 그것은 또 내가 존중받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를, 어떤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또 어떤 사람들은 멜로를, 코믹을 그렇게 수많은 "선호하는" 장르가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요새의 사람들의 이 수많은 취향, 소위 말하는 "덕질"에 대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문화 중독자라 칭하는 저자인 이봉호 작가의 "책탐"에 대한 이야기부터, 달리기, 영화, 그리고 결국은 우리의 바뀌는 취향에 대해서 "수집하지 않을 권리"까지 13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할 때,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한다. 본문 32p


그리하여 들여다본, "타인의 욕망"이었나 봅니다. 공포 영화를 왜 보는가? 왜냐면, 저도 공포 호러, 이런 쪽의 영화를 좋아해선 그녀, 김수진씨가 궁금했습니다. 그러자,


그 어둠 속에 숨은 존재는 괴물도, 악마도, 좀비도 아닌 약하고 무력한 자신이다. 공포란 자신의 또 다른 이미지다.

관객은 인가니 매 순간 자행하는 실제 공포에 식상해하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이 벌이는 폭력과 차별에 지쳤다고. 그래서 관객은 좀비라는 상징에 빠져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무서운 공포를 보는 시간 中, 84p, 88p


어쩌면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는 그녀가 살짝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르기도 합니다. 물론, 저 말이 맞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저 "즐기기 위해서, 공포란 것이 주는 그 기묘한 쾌감" 때문이기도 했으니까요. 그 인간 군상들 속,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때만큼은 나를 벗어버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징가 인문학은, 일본이 참 부럽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늘 느끼듯 일본에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콘텐츠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한이 있다면 일본은 그 점에선 참 부러운 나라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로봇 태권V가 마징가제트의 표절이라고 해도 그저, 만화영화로만 치부하다는 것은 말입니다.

말하자면 일본이란 나라는 "취향"으로 발전한 소위 "덕후"들로 성장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결과, <트랜스포머>,<퍼시픽 림> 등 영화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말입니다. 그저 <로봇>에서 그칠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간중간, 내 관심사가 아니라도 공감되는 <마징가 인문학>의 경우도 있지만, 그 시작점 즉, "발견"이 어디서부터지? 라는 느낌이 없어선 그 마지막이 궁금하지 않은 파트도 분명 있었습니다. 또한, "무서운 영화를 보는 시간"의 경우 계속 "그녀" 김수진.. 이었으나 왜 남자가 표지에 있을까..?라는 느낌은 조금의 위화감은 들었습니다.






취향 존중,

취향 저격.


백인백색입니다. 백인 일색인 시대, 정말 재미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만해도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의 커피가 아메리카노였다고 내일도 전 아메리카노일까요? 아마도

내일의 커피는 조금은 단 라떼일지도 모르고, 오늘 늘 마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또 차가운 아메리카노로 변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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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의 마법
무라야마 사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직선과곡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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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백이란 숫자가 그렇게도 커 보일 수 없을 때, 그만큼 많은 물건을 파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호시노 백화점이 있습니다._ 그 백화점은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있어줄 것만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던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과거의 나라로 가버린다. 흐름은 급박하고 빨라서 일단 추억이 된 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본문 127p


시간이란, 그 "흐름"은 새로운 것들을 낡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멈추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제는,

화려했던 호시노 백화점보단, 지역의 작고 오래된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는 곳이 된 것도 인정하는 그런 곳이지만,

이곳을 그럼에도 찾는 사람들이 그리고, 찾지 않을 것 같은 꼬마들, 아이들조차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호시노 백화점엔 마법의 고양이가 산다. 눈은 오드아이이며 몸은 하얀 아기 고양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호시노 백화점은 "마법의 고양이"가 있단 소문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아주 오래전 이 백화점이 생긴지 얼마 안 돼서부터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마케팅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또 누군가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아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날 산타클로스가 와서 내게 "선물"을 주고 간다는 사실을 어쩌면 아직도 믿고 싶은 것이기 때문일지도요.



호시노 백화점은 흐름에 뒤처져 조만간 사라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푼이라도 절감해야 할 때인데, 이 백화점에 "새로운" 그 무언가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인포메이션으로도 충분한데도 채용된 "컨시어지"까지 말입니다. 고객들을 위해선 필요하지만, 굳이 지금 이 호시노 백화점에? 싶은 거죠. 하지만, 끝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각장은 종장까지 5개의 이야기면서도 결코 다섯 개만의 이야기는 또 아닙니다. 엘리베이터 걸인 아사노부터 시작해, 꿈의 신데렐라 구두를 놓쳤나 싶었더니 실은 아니었고 여름의 목마 속 남겨졌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던 사토 겐고의 안타까운 이야기의 결말이 있다면 마치 신데렐라 구두와 같지만 또 아닌 사오토메 이치카의 "진실과 마주한 나"의 이야기 등이 우리의 손에 잡힐 듯 아닐 듯 펼쳐집니다. 백화점은 그렇게 수많은 혹은 하나의 물건들을 우리에게 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창문으로만 바라보던 그 세상을 성냥팔이 소녀가 들어간 듯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사연은 살짝 입꼬리를 만들게 하는 초콜릿 선물 상자 혹은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습니다.

꿈처럼만 보였던 그 이야기가, 마법처럼 현실이 됐을 때 혹은 아련하게 따뜻하게 남게 될 때의, 그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초콜릿은 계속해서 먹으면 달죠. 이 소설은 처음 먹을 땐 그 맛이 여느 일본의 것과 다르지 않지만 어딘가 또 다른 듯했으나 마지막은 묘하게 단 맛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바로 일본 특유의 "담백한 힐링"이 마지막 종장에선 단맛이 저는 묘하게 쓴맛을 느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잘 먹고 있던 단 맛에 인위적인 느낌 아니, 알고 있는데 굳이 이 맛을 느껴야 할까?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단맛을 즐거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저는, 마지막 장은 굳이 이 새롭지 않은 맛을 넣어야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건, 먹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게 "마법"이니까요. 마법과 마술은 같지는 않지만, 신기하단 점에선 맥이 비슷한데 그 무대의 뒤를 다 보고 난 뒤의 느낌과 닮았던 것이랄까요..?




어른의 역할은 어린이를 억지로 꿈에서 깨우는 게 아니야. 마법을 꿈꿨던 시절은 나중에 분명 행복한 추억이 될 거야. 괴로운 일이 있을 때 기적을 믿었던 기억은 마음 속의 부적이 될 거야. 본문 26p, 아사나에게 유카리가.


마법이란 게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 지금도 전 잘 몰라요. 다만 그 한 장의 행운권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크리스마스에는 멋진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이 백화점에는 마법을 부리는 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는 건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본문 410p, 니시하라가 유코에게



우리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럼에도 아날로그라는 단어를 찾는 것은 어쩌면 그런 "마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이란 마법을요 하나쯤은 가지고 그래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무엇을 저 깊은 곳에 숨겨놓은 것 그것이 어쩌면 "마법의 고양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은 호시노 백화점이 문을 닫지 않도록, 잊을만 할 때쯤 또 그곳을 찾은 건 아닐까 싶습니다.

- 마법의 고양이가 진짜 있나요? 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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