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흐, 하면 생각나는 건 바로 "해바라기"입니다. 왜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평생을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제대로 된" 사랑은 받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고갱, 태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해바라기의 꽃말이 "숭배, 기다림"입니다. 그런 꽃말들을 보고 있으면 묘합니다. 찬란한 태양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는, 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사랑을 숭배하면서 기다리는 것 같아선 아픈 꽃인 느낌이 제게는 강합니다. 결국 짝사랑이니까요
사랑만큼 돌려받고 싶은 감정은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이 빛나는 밤에>보단, 고갱의 <시지프스가 있는 밀밭>이 좋습니다. 밤보다, 밀은 <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을 빌려, 어린왕자의 머리빛을 생각나게 하죠.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지만 대신 평온한 느낌이라서 일 겁니다. 반 고흐 빈센트, 그가 조금은 그 마음을 내려놓길 바라고 있었나 봅니다.

이 슬픔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들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들이 우는지 혹은 웃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온몸을 통해서 말합니다. 지금, 좀 위로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 이들에게서 빈센트가 투영된 모습이 보일까요?
빈센트의 <해바라기>에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태양을 향해 온몸을 기울이지만, 결국 태양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해바라기처럼, 빈센트의 해바라기 그림에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한 번도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오랜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 65P
아마도, 작가의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그 느낌이 이 그림 두 장에서 더더욱 강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의 슬픔이 그렇게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러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던 고흐의 마음이 말입니다. 그렇게 정여울 작가가 빈센트 때문에 만났던 다른 이들과의 같이 여정을 함께 하듯, 저도 그렇게 빈센트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아가려 했습니다.
그의 슬픔이, 그의 아픔이, 그의 사랑이, 그 모든 것들을 보답받지 못한 채로 그래도 웃는 그를요.

어째서, 그는 내게 특별했을까 싶으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그의 그름에서 "책"을 읽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이웃님과의 대화 중, "고흐의 방"이 그 답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방이 유독 쓸쓸해 보였지만 그가 유일하게 책을 읽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 명암이 뚜렷했던 곳, 마치 그의 삶처럼 말입니다.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빈센트였으니까요. 그의 기행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말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직자도 되지 못했고, 예술가로서는 살아서 평가받지 못했으며 그 삶은 참 어두웠습니다. 쓸쓸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담배를 피는 해골"은 철저한 고독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라고 작가는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고독한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해바라기처럼요. 태양이 봐주지 않는다고 해바라기가 언제 그 사랑을 멈추던가요..?
그 사랑은, 어머니 그리고 고갱, 마지막 끈이었던 태오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태오의 결혼에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고 합니다.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사랑해주던 동생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해바라기처럼, 그렇게 모두를 짝사랑했지만 그의 갈구에 그래도 응해줬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동생인 태오였으니까요.
그가 태오에게 보낸 편지는 천여 통이 넘는다고 합니다. 보내지 못한 편지도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아플 때도 괴로울 때도 그리고 기쁠 때도 그는 태오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는 사랑에 감사하면서 받을수록 갈증이 일었을 겁니다. 처음부터 외면당했더라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가는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내서 더욱 완벽한 자아가 되어야 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하고,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극복해 가야 해. 태오에게 쓴 편지, 본문 199p

빈센트가 가장 슬픔을 느낄 때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여길 때였다. 본문 152p
그의 기행 중, 귀를 자른 그 사건은 어쩌면 빈센트의 슬픔이 극에 도달했을 때, 고갱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예전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랑했지만 돌아오지 않고 갈구하지만 대답이 없는 해바라기 같던 고흐였습니다. 이제는 아주 조금씩 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깊은 좌절감 또한 애잔한 슬픔과 함께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문 311p
하지만, 또 어떨까요?
그에게 만약 그런 좌절감과 사랑의 갈구가 없었더라도 지금의 그의 그림을 우리는 볼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표를 또 던져 봅니다. 아마도, 볼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의 그림에 대한 사랑은 깊어, 그는 분명 그림을 계속 그렸을 테니까요. 다만, 지금의 그림과는 아주 많이 다른 그림이었을 겁니다. 혹은 그저 알려지지 않은 화가로 남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젠 아주 잠시, 의자에 앉아서 그가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아님에도 그리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였다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함께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또한 긴 시간 동안, 그와 함께 걸으면서 쓸쓸함도 그리고 지금의 찬란함도 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쓸쓸했지만 그러기에 지금, 찬란할 수 있는 그의 그림자와 빛을, 빛과 그림자와 함께 했습니다.
